문화/책

게릴라들 - 총을 든 사제

억스리 2012. 11. 29. 17:54

[출처] http://ourrealstory.tistory.com/136

 
















(우리가 예전에 독서모임을 했던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을 다시 보았다.)


‘니카라과’
이름이 잘 외어지지 않는다. 니라콰이, 니콰라이, 니카라가...
마치 통성명을 하고 술도 한 잔 나눈 사람을 다음에 봤는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미안하다. 니카라과. 이 나라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 이 만화 때문에.

강렬한 색감의 이 만화는 뜨거운 태양이 지나가고 난 직후의 남미의 저녁과도 같다. 한낮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아 아직 지열이 올라오는 시간, 그렇지만 눈을 부시게 하는 태양빛은 없어서 너도나도 광장으로 뛰쳐나오는 시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웃고 울고 싸우고 사랑을 하고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 사이를 마냥 뛰어다니는 시간. 이 만화는, 그러한 소박한 시간마저 빼앗긴 니카라과의 민중들이 자신들의 자유과 권리를 찾기 위해 혁명을 일으키는 이야기이다.

이 만화는 니카라과의 1979년 산디스티나 혁명을, 가브리엘이라는 젊은 사제의 변화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사실 남미에서 카톨릭이란 참 모순적인 존재이다. 카톨릭은 남미를 ‘발견’하고 침략하고 억압하고 수탈한 그 서양인들이 들고 들어온 종교이다. 그들은 남미의 모든 종교와 문화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유일신을 섬기도록 강제했다. 그런 카톨릭이 남미에 들어온 지 수백 년, 이 책에 나오는 신부 루벤은 니카라과의 혁명을 위해 투신한다.

고위층의 자제로 곱게 자라 모범생 같은 사제가 될 전도유망한 가브리엘은, 우연히 루벤이 담임 신부로 있는 성당에 벽화를 그려주러 왔다가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다. 자신이 믿어 왔던 모든 가치가 전복되는 경험,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게 되는 경험을 비로소 하게 된 것이다.

잔학한 폭력과 고문 앞에 무릎을 꿇고 루벤 신부와 그의 친구들의 정체를 말하고 만 가브리엘은 그 수치심을 씻기 위해서 게릴라들이 있는 정글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가브리엘은 사제가 아닌 전사로 다시 태어난다. 물론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간 것만은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사제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죄책감과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다. 다른 게릴라들은, 어떤 이는 배고픔에, 어떤 이는 고질병에, 또 어떤 이들은 사랑과 배신에 힘겨워한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열정과 혁명에 대한 의지를 꿰뚫어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기록한다.

만화는 소모사 일가를 축출하고 혁명에 성공한 니카라과의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전하면서 끝난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이 만화의 해피엔딩이 그 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니카라과 혁명정부는 1979년 혁명 이후에도 미국과 우파의 끈질긴 방해로 인해 정국 안정과 경제 회복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선거를 통해' 우파에 정권을 내놓게 된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되는 걸까? 신자유주의 정권 아래에서 신음하던 인민들은 2008년 다시 좌파정권이 들어서도록 했다.
이후 니카라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