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 근본주의자 박노자

억스리 2012. 4. 13. 10:23

[출처] http://blog.naver.com/lipidcho/120157333934

 


다소 컬트적인 영화 '노인을 위한 국가는 없다'와 비슷한 제목인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는 박노자의 최신작이다. 그는 생물학적인 '한국인'보다 훨씬 한국에 대해 잘알고 있으며 또한 그의 생물학적인 조국인 러시아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은 덕분으로 서양지성사에 대해 달통해 있어 그런 바탕에서 나오는 방대한 지식에 늘 경탄하고는 한다. 더구나 사회를 보는 시각이 현실에 타협하는 절충주의적 시각과는 거리가 먼  대단히 '근본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날카롭고 전복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에 그의 목표는 국가이다. 대개의 경우 보수주의자이던 진보주의자이던간에 국가는 일단 인정해 놓고 들어간다. 현재 국가는 개판이지만 정권을 인수해서 잘 고쳐쓰면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런 것 같다. 시장자유주의자인 선대인 등이나 제도학파인 장하준 등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가의 순기능을 인정하고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한 정부, 선한 국가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박노자는 '국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사상적 스펙트럼에서 볼 때 박노자는 아마 사민주의 또는 공산주의로 많이 기울어져있는 것 같다. 박노자에 의하면 현대의 '국가'는 자본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체제이다. 국가는 모든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자들의 부의 유지와 갈등 조정을 위해 탄생한 '사무총국'이다. 따라서 국가는 그 기능을 유지하는데 있어 필연적으로 폭력적이다. 그 부에서 소외된 대다수의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순응시키려면 폭력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하워드 진의 표현을 따라 한다면 국가는 아주 소수의 자산 권력자와 그들이 던져주는 부스러기에 만족하는 테크노크라트(관료, 지식인 등등)인 간수가 대부분의 사람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기구이다. 

따라서 박노자는 심상정이나 노회찬 같은 사민주의자들이 국가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국가의 권력 쟁탈전에 참여한(선거)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고 한다. 왜냐면 국가는 누가 통치하던 간에 본질적으로 계급독재인 자본주의의 통치기구이며 대다수 대중의 행복과는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박노자는 국가의 정체와 더불어 국가의 필연적 폭력성에 촛점을 맞추며 어떻게 국가가 그 계급적 목적에 맞게 국민을 폭력적으로 지배했으며 그 폭력을 국민의 마음에 내면화했는가를 탐구한다.

국가에 의한 소외된 계층과 타자에 대한 합법적인 폭력과 살인을 고찰하며, 대부분 무산자에게 군복을 입혀 자행하는 전쟁에 대해 비판하며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고 말한다. 국가의 폭력성에 어떻게 종교가 포섭되며 또 어떻게 적극적으로 종교가 그 폭력을 정당화했는가에 대해 역사적인 고찰을 한다. 국가의 성원은 어떻게 타인에 대한 합법적인 살해에 길들여지며 어떻게 타자를 악마화하여 살인을 정당화하는가에 대해 세계대전, 중동전, 베트남전의 예를 들며 실감나게 설명한다. 마지막 장에서 이런 국가에 의한 폭력을 부정하려는 여러가지 실패한, 또는 부분적으로 성공한 사례(여호와의 증인, 퀘이커)를 열거하면서 우리가 가야할 사회는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읽고나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세계화된 세상에서 국가의 역할을 원천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가? 박노자도 지적했다시피 초기의 소비에트는 사회주의 이상에 접근하려고 노력한 사회였으나 주변국들의 방해로 내전에 휩싸였고 그 결과 다시 징병제가 만들어졌고 소비에트는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또 하나의 군국이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국가없는 사회는 마치 공기없는 지구를 상상하는 것 보다 힘들다. 그래서 박노자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어쩌라구. 

박노자의 시각은 대단히 솔직하고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불편한 진실'도 자꾸 들으면 아주 익숙해진다. 무정부적 기독교 평화주의자인 톨스토이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는 그의 시각은 어떻게 보면 대안이 없는 원리적이고 근본적인 분석이라 그 시각이 어떤 자극이나 참고점은 될 수 있을지언정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려운 공허한 울림이다. 말하자면 권력 밖에서 사회를 질타하는 선지자나 예언자의 발언을 될 수 있으나 하나 하나의 행보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 현실사회운동이나 정치의 면에서는 조심스럽다. 그래서 그의 글은 대단히 힘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공허하다. 그의 모든 저작을 거의 다 읽으면서 느끼는 그의 한계이다. 아울러 이 책을 펴낸 신문사의 한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