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정신차려 대한민국

억스리 2012. 4. 16. 13:49

[출처] http://blog.naver.com/lipidcho/120157473457

 


80년대 초반에 대학에 다닐 때는 독재 정권 치하여서 여러 종류의 금서가 많았다.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와 막스의 자본론은 대표적인 금서였고 합법적인 출판물인 마르쿠제의 '혁명이냐 개혁이냐'는 '개혁'에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를 쳐놓아야 불시에 당하는 가방수색 때 안잡혀간다는 우슷개 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당시 러시아에 대한 책은 별로 없었는데 '러시아 지성사'와 '러시아 혁명사'가 대표적인 저작이었다. 전자는 토스토예프스키 평전으로도 유명한 러시아의 니콜라이 베르자예프의 저작이었고 후자는 당시는 학자였던 김학민의 저작이었다. '러시아 혁명사'는 책속에서의 인물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생생하고 내용이 재미있어서 '무협지'같다는 중평이 있었다. 칭찬의 의미도 있지만 문체와 내용이 시원시원(?)하고 활달한 면도 있었다.

'정신차려 대한민국'은 '문제는 경제다', '시장은 정의로운가',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다 갈아서 저자의 시각과 독특한 직설적인 필체로 써내려간 '무협지'와 같은 책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현재 경북대학교 사회학 교수로 있다고 한다. 사회학자라서 그런지 경제학자의 글과 사뭇 다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 한국사회가 커다란 위기에 있다고 전제하고 그 위기의 외부적 원인과 내부적 원인을 열거하며 재앙을 막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1부에서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라는 세계적 위기에 대한 저자의 원인분석과 전망을 제시한다. 2부는 한국사회에 대한 것으로 부동산거품, 화폐방화벽,  파생상품투기, 등록금문제, 월세문제 및 복지논쟁에 대한 자신의 분석과 주장을 전개한다. 

저자에 의하면 2008년 발 세계금융위기는 미국정부보다 막강한 연준과 골드만 삭스 등의 악당같은 금융세력이 협잡하여 미국사회의 가장 약자를 등쳐 먹다 터져나온 재앙이며 유럽의 위기 역시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가난한 사람에게서 발생한 불량채권을 위험율을 희석시켜 섞어버린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전세계에 뿌렸는데 따라서 그 위기가 세계적이 되어버렸다. 유럽의 위기도 성격은 비슷하다. 그리스의 예를 들면서 경제약체인 그리스가 원래는 EU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안되었음에도 골드만 삭스의 분식회계 기법으로 화폐조작을 거쳐 EU에 들어갔는데 이게 재앙의 시작이라고 한다. 자국 화폐를 포기하고 유로를 쓰게 됨으로써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게 되는데 이럴 경우 그냥 앉아서 당하게 된다. 유럽의 중요 금융조직은 거의 골드만 삭스 출신으로 채워져 있고 그리스 정부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현재 그리스의 수상도 그 곳 출신이며 그리스 재정의 취약점을 누구보다도 더 잘 파악하고 있는 것도 골드만 삭스라고 한다. 골드만 삭스는 그리스가 부도 나는데 뱃팅한 금융상품에 큰 돈을 걸고 있다고 하는데 아주 악의적인 기업이라고 저자는 분노한다. 이렇게 세계 금융은 헤지펀드, 신용평가사, 대형금융사의 악질 삼각편대에 포획되어 있으며 이들에 의해 위기가 발생한다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중국도 피난처가 될 수 없는데 다 알다시피 중국의 성장은 세계화에 힘입어 다른 대륙의 호황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재 자료를 보아도 중국의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으며 공식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경기 후퇴에 따른 부동산 거품의 붕괴와 은행의 손해를 막대한 구제금융으로 메워나가고 있다고 한다. 

결국 전 세계적인 통화의 양적팽창과 재정적자에 의해 돈이 엄청 풀렸는데 이는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위기가 올 수 밖에 없다. 저자가 특히 걱정하는 것은 식량 가격의 폭등과 무기화이다. 나도 이 부분이 가장 걱정스럽다. 그런 상황에 FTA로 농업을 포기했으니 장래가 걱정된다. 실업은 증가하고 소위 선진 민주사회를 떠받들고 있는 안전신화는 곧 깨질 것이며 소요와 폭동과 독재의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걱정한다. 저자가 인용한 통계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미국의 실업율인데 대졸자의 실업율이 85%여서 졸업과 동시에 귀향하는 사람이 많고 25세미만의 실업율이 54%라고 한다.

2부에서 저자는 한국의 상황에 눈을 돌린다. 저자가 보기엔 한국은 김영삼 정권 때 부터 깜도 되지 않는데 세계화의 물결에 편승하면서 나랏문을 활짝 열어 재껴 금융자본에 그대로 노출되어 IMF를 겪었다. 지금도 세계화가 대세인 것 처럼 개방을 하는데 FTA가 그 결정판이다. 저자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FTA를 반대하는데 특히 식량주권이 문제라는 것은 나와 동일한 시각이다. 어차피 미국의 빗장이 열려도 우리가 팔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데 우리가 피해보는 것은 너무나 많다. 착한 FTA가 어디있고  나쁜 FTA가 어디 있는가? 나는 지금도 노무현 정권이 이 일을 시작한 진짜 이유를 모르겠다. 

저자는 부동산 거품, 등록금 문제, 월세제도의 고착화, 가계부채 그리고 복지논쟁을 다루는데 비슷한 성향의 저자와 대개 비슷한 의견을 보인다. 

일반적인 시각과 달리 월세는 선진화된 제도가 아니라 전세야 말로 가장 진보된 제도라는 의견을 갖는데 약자 보호적인 면에서는 맞다. 그러나 전세의 유래가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전세자금을 레버리지로 투자이익을 얻는 것이었는데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 당연히 전세라는 것이 없어질 것 같은데 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누가 전세를 내놓고 어떻게 국가가 강제할 수 있는지.

대학등록금에 대한 통계는 굉창히 충격적인데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한다. 놀라운 통계이다. 과연 정말일까하는 의문이 든다.  미국에서는 등록금을 벌기 위한 원조교제가 실재로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이 나라에서도 등록금 투쟁이 생길만 한다. 저자는 등록금을 무조건 내려야 한다고 하는데 국가가 돈을 내주어선 안된다고 한다. 대학등록음을 복지혜택으로 주는 대기업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것이며 국민의 혈세로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대학에 반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주면 결국 세금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여전히 앉아서 돈을 편하게 벌게 된다. 대학이 돈 값에 비해 교육의 질이 많이 떨어지는데 등록금 인하의 표적은 대학당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나 역시 동의한다. 

복지에 대해 저자는 전면적 복지는 위험하다고 한다. 쉽게 공짜로 주어지는 무료혜택은 남용을 방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짜라고 생각되어지는 서비스는 남용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정도의 생산력으로는 그 걸 지탱할 수 없다. 사실은 다 본인들 주머니에서 나간 돈인데 당장 자기 돈 안나간다고 마구 쓰게 된다. 과거에 정부가 파스를 노인들에게 보험급여로 처방하게 했는데 그 수에 제한이 없어서 여러 병원 돌아다니며 마구 처방받아 쌓아 놓고 쓰다가 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다시 다른데다 파는 경우가 많아 파스 자체를 처방에서 삭제한 적이 있다. 6세 미만의 소아의 입원비를 전부 보험급여로 했다가 과도한 소아입원으로 인해 재정이 힘들어지자 1년만에 원상복귀 되기도 했다. 자기 돈이 안들기 때문에 입원 결정을 쉽게 했기 때문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고 공짜면 물이라고 배부르게 먹게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념과 상관없이 현실적으로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 

저자는 미국의 의료개혁법의 허실을 파헤치면서 그 제도 역시 미국의 보험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폭로하는데 이 건 정말 의외의 주장이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해가 가는데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강제로 들게하는 게 국가의 보험이 아니라 사보험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자료가 거기로 넘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반대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인데 저자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너무 놀라운 반전이어서 확인이 필요하다. 그 결과 저자는 한국의 의료체계가 미국보다 훨씬 저비용 고품질이고 선진적이라고 평하고 놀랍게도 한국의 의사 덕이 크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국 의사보다 덜 벌고 더 고달프겠지만 의료민영화 같은 것에 찬성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고생을 인정해줘서 고맙기는 한데 약간 핀트를 잘못 잡았다. 한국 의사 중에 의료민영화를 찬성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마 자본이 많은 대학병원급의 소원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소원은 지금의 의료체계를 구축하는데 지나친 저수가구조로 인해 한국의사의 강요된 희생이 컸다는 것을 인정하고 예측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정책을 만들어 냈으면 한다. 노령화와 정부재정의 규모와 복지수요의 폭발로 인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기 무척 힘들것이긴 해도.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세계화의 물결이 유일한 길이 아니니 잘 판단해서 가야 하며 미국의 정치, 교육, 의료, 복지가 사실은 그리 훌륭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미국이 우리의 모델은 아니다. 2012년은 금융위기의 여파로 무척 힘든 시기가 될 것인데 그에 대비하여 정부는 방화벽을 구축해야 하며 기업과 금융은 파생상품같은 폭탄을 다루지 말아야 하며(우리나라가 거래량이 2위라고 한다! 어쩌려구!!), 가계는 더 이상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지 말고 투기적 부동산 투자를 하지 말아야 하며, 부채를 빨리 줄여야 한다.

좀, 여러 문제 연구소 같은 느낌이 든다. 책 표지에 명기된 한국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외부위협과 내부요인 35가지가 도대체 뭔지 책을 다 읽고 나도 모르겠다. 저자는 현재의 위기를 극명한 선악 구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해결 역시 주로 당사자들의 각성과 인정과 양보에 호소한다. 현상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의 설명은 쉽게 가해자가 보여 후련하기는 하지만 현상의 진실에 접근하기는 힘들다. 세상에는 100% 나쁜 놈도 없고 100% 좋은 분도 없기 때문이다. 악이 어찌 그들만의 전유물이며 어찌 우리만이 모든 선함을 전유하겠는가. 그러나 의제와 대상을 선명하게 폭로하고 문제점을 드러내는 점에서는 이런 형식의 글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 독자의 현명한 취사선택이 필요한 책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