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 에릭 라이너트

억스리 2012. 4. 9. 10:23

[출처] http://blog.naver.com/lipidcho/120152737321

 


오랜만에 경제학 분야에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는 경제학의  반골 노벨상이라고 하는 뮈르달 상을 수상한 책이다. 에릭 라이너트 라는 경제학과 역사에 대해 거의 르네상스인적인 방대하고 풍부한 지식을 갖춘 경제학자가 아니면 쓸 수 없었을 책이다. 장하준의 저작 중 많이 인용되는 저자로서 오래전 부터 궁금했는데 마침 번역판이 나왔다.

현대 세계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빈국과 부국의 격차가 벌어졌다.  저자는 도데체 이런 일이 어떤 기전으로 인해 발생했으며 어떻게 하면 빈국이 현재의 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일반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저자는 풍부한 사료와 자료를 동원하여 현재의 주류경제학이 의도적으로 탈락시키고 감추어 온 다른 전통의 경제학을 복원하는데 바로 이런 '다른 전통'의 경제학과 정책으로 인해 현재의 부국이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논증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현재의 경제학이론이 바탕이 된 자유무역, 세계화로는 역사적으로 어떤 나라도 부유해진 적이 없다.  오히려  현재의 선진국이 금지하고 있는 보호무역과 정책을 통해 과거의 보통국가가 선진국이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장하준식으로 말하면 선진국 후예들의 의도적 기억상실과 사다리 걷어차기이다.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 부터 보호무역을 통해 자국의 산업을 강화한 후 힘이 생기자 나중에 자유무역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는데 후발 국가들이 따라 오지 못하게 하려는 고의적인 정책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으로 미국은 1950년대 까지도 자유무역과는 반대인 국내산업보호와 관세에 의한 차별정책을 시행한 나라이다. 

이 책의 핵심어는 수확체증과 수확체감이다. 수확체감은 어떤 재화를 생산하는데 그 재화를 많이 생산하면 할 수록 단위 생산당 비용이 더 증가하는 경우를 의미하며 양모, 광물, 석유 등의 원자재 생산에 해당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자연을 수탈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결국 해당국가의 자연의 황폐화와 임금의 하락과 인구이동에 의한 인구감소로 인해 국가가 원시화된다. 반대로 수확체증은 재화를 생산하면 할 수록 단위생산당 비용이 적게 드는 경우를 말하는데 제조업과 지식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는 돈이 엄청 들지만 어느 이상만 팔려나가면 한 카피당 1달라의 비용도 들지 않으며 그 때부턴 나머지는 다 이익이다. 제약산업도 마찬가지의 예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수확체증의 원리를 따르는 산업을 많이 유치해야 하는데 결국 산업화가 없이는 부유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저자는 풍부한 사료를 제시하면서 제조업이 발달하면 제조업에 종사하지 않는 농업이나 어업등의 일차산업 종사자나 이발사 등의 3차 산업 종사자들의 임금도 덩달아 올라가는다는 사실과 그 기전을 설명한다. 나이지리아의 버스운전사와 스칸디나비아의 버스운전사가 그 기술과 가치는 비슷하지만 임금은 몇십배 차이가 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수확체증은 부유한 나라가 되는 가장 필수적인 원리이다.

수확체증은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술의 혁신, 기업가 정신, 어느 정도 구매력이 있는 규모의 인구와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Jobs가 방글라데시에서 창업했다면 지금의 애플이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자국에서 수확체증의 원리를 따르는 산업이 융성하게 하려면   이런 유치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정책적인 드라이브가 필요한데 이 것이 바로 보호무역이다. 17세기에는 영국의 모직산업이 첨단 산업이었다. 당시 영국왕인 헨리7세는 현명하게도 수확체감의 원리를 따르는 원자재 산업인 양모에 대해서는 무거운 수출관세를 매겨 억제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수확체증의 원리를 따르는 모직산업에 대해서는 장려금을 지급하여 경제의 불평등 발전을 이루었다. 반대의 예는 스페인이었다. 당시 식민지인 남미에서는 엄청난 양의 은과 금이 들어왔는데 그걸 가공해서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만들 생각을 안하고 원자재 수출만으로 짭짭한 재미를 본 스페인은 수확체감을 겪으면서 몰락한다. 

현재의 모든 부국은 예외없이 수확체증 산업을 보호하고 수확체감 산업은 빈국에게 넘겼다. 과거에는 그 빈국이 식민지였다. 모든 유럽제국은 식민지에 대해 오로지 원자재만을 생산하게 하고 제조업은 억제했다. 결국 식민지의 영원한 빈국화 계획이었다. 현재에는 신생 독립국들과 일부 아시아지역이 이런 원자재 생산을 위한 식민지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강요를 결연히 거부하고 독립한 나라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건국초기 농경국가의 길을 갈 것인지 산업국가의 길을 갈 것인지 무척 갈등이 있었고 남북전쟁 역시 이런 세력간의 폭력적 대결이었다. 미국 역시 막대한 장려금과 관세장벽을 통해 국내의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했으며 20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자신이 생기면서 태도를 확 바꾸어 자유무역 신봉자가 되었다.

극적인 역사적 사례는 종전 후 독일이다. 2차세계대전 후 미국은 독일의 전쟁의지를 완전히 꺽어버리기 위해 독일을 탈산업화하고 탈근대화하기 위해 미국의 재무부 장관의 이름을 딴 '모겐소 플랜'을 시행한다.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은 엄청난 빈곤과 불안정에 시달리게 된다. 미국의 조사관으로 온 전 대통령 후버는  " 이 계획이 실행되려면 독일 인구 중 2500만명을 다 죽이거나 다른 나라로 이주시켜야 한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제출한다. 탈산업화는 빈곤과 인구감소를 필연적으로 유발한다. 미국은 태도를 바꾸어 독일과 일본을 재산업화하기로 결정하는데 제조업을 육성하여 결국 현재와 같은 독일과 일본이 탄생하게 된다. 또 다른 예가 있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후 몽고는 세계화의 물결에 급격히 휩쓸리는데 당시 정부는 세계화 기관의 강권에 의해, 비교우위설에 따라, 자신들이 비교우위에 있다고 평가된 원자재산업만 남겨두고 거의 모든 제조업은 포기하게 되는데 그 결과 엄청난 실업, 빈곡, 식량부족과 인구감소에 시달리게 된다. 인구는 수확체감이 있는 지역에서 수확체증이 있는 곳을 이동할 수 밖에 없는데 심하게 되면 현재의 남미의 자그마한 나라 처럼 국민국가를 이루기 힘들 정도로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게 된다.

이런 역사적 사례에 의하면 현재의 빈국이 빈곤을 벗어나려면 수확체증의 산업을 유치하고 수확체감의 원자재산업을 축소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에 의한 자유무역 신봉자인 선진국의 원조기관 당국자와 경제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고의적으로 또는 지적 불성실 등의 원인에 의해 인정하지 않는다. 완전한 자유시장이 되면 요소가격의 균일화에 의해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꿈속의 이론만 되뇌이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여러가지 제도가 빈국의 발목을 잡는다. 특허권과 지적재산권 등이 가장 대표적이다. 원조조건 또한 황당한데 그 나라가 산업화를 하면 안되고 특화된 작물만 키우게 하고 관세를 메겨도 안되고.. 등등의 조건으로 빈국을 영원히 빈국으로 묶어두는 정책이다.  빈국을 근본적으로 잘 살게 하는 정책은 그 나라를 산업화시키는 것인데 선진국 경제학자들의 근시안적인 임시변통의 경제학은 빈국의 고통만 잠시 없애는 땜빵식 정책만을 구사한다. 고의적일 수도 있고 의도되지 않은 악행일 수도 있다. 이런 규제와 정책을 요리조리 피해서 산업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 중국, 인도라고 한다. 

답은 다 나왔다. 왜 이 세계가 이렇게 빈부의 격차가 커졌는가? 자유무역이 빈곤의 만병통치학이라는 오류를 가진 현대의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폐해이다. 잃어버린 대륙의 경제학 - 혁신, 사업가 정신, 제조업, 수확체증-의 전통을 되살려 주류 경제학의 주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천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자국내에 수확체증의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 자신들은 그렇게 해놓고 이제는 후발주자들의 발전을 막는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는 선진국들의 방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게 숙제이다.

장점이 많은 이 책도 역시 한계는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 처럼 저자 또한 자원이 무한하다고 보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자원이 유한하며 무절제한 개발로 인한 환경의 문제 등 지속 가능한 경제체제에 대한 고민이 없고 산업화, 제조업 등을 유일한 대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면에서는 저자 역시 자본주의의 충실한 반대자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외에는 뚜렷한 대안도 없고 만능을 요구할 수는 없으니 이런 면에서는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면서 읽는 것이 좋겠다.


사료와 사례가 풍부하고 따라서 그 주장 역시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경제학책이라기 보다는 아주 재미있는 역사책을 읽는 기분이다. 장하준의 책이 너무 좋았다거나 지금 횡행하는 금융자본주의의 경제학이 왠지 사기 같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아주 좋은 책이다. 필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