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억스리 2012. 4. 9. 10:25

[출처] http://blog.naver.com/lipidcho/120156977836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로 만났다'는 다소 긴 제목의 책은 왜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일해도 가난하고 부자는 계속 부자가 되는가라는 소박한(?) 의문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아이리쉬계 영국인인 Conor Wood는 어느날 기차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커피잔에 세겨진 공정무역재단의 로고와 '제 3세계 생산자와 공정한 거래를 약속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보게된다. 소위 윤리적 소비라는 것인데 저자는 이 윤리적 소비가 정말 그들이 약속한 대로 제 3세계에 있는 가난한 생산자들에게 더 공정한지 더 잘살게 해주는 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로 부터 6개월 후 카메룬의 해안가에서 이 의문은 더 깊어지는데 앞바다에 싱싱한 물고기가 지천으로 널려있음에도 어부들은 멀리 떨어진 모로코에서 수입하는 마른 생선을 먹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사실에 저자는 충격을 받는다. 저자는 이런 두가지 화두 1. 왜 가난한 사람은 뼈 빠지게 일해도 계속 가난한가? 2. 여러 가지 재단이 인증하고 그런 인증을 화려하게 붙인 상품이 정말로 그 생산부터 유통까지의 단계가 윤리적인가? 를 붙들고 세계 각지로 탐사여행을 시작하고 그 결과가 바로 이책이다. 결론 부터 말하면 가난한 사람이 계속 가난한 이유에 대해서는 별 답이 없다. 어차피 탐사기행문이라 깊이있는 고찰은 무리인 것 같고 발로 얻은 생생한 지식과 거기서 얻어진 산 지식과 전복적인 시각이 더 값지다. 

'윤리적인' 바닷가재를 취급한다는 미국 최대의 해산물 레스토랑의 유통경로를 역추적하여 니카라과의 어느 해안에 도착한 저자는 바닷가재의 채취과정이 다이버들에게 지나치게 위험하고 많은 사람이 그 일로 인해 평생불구가 되거나 사망한다는 것을 알게되어 '윤리적'이라는 로고에 대해 회의적이 된다. 

다시 무대를 런던으로 옮겨 소위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 인증에 얽힌 복잡한 비지니스를 추적하면서 공정무역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라는 것을 알게된다. 대기업과 그 대기업에 인증을 주는 단체에 대한 통찰이 재미있다. 세계 최대의 초컬렛 업체 마르스에 카카오 등의 원료를 공급하는 영국의 캐드베리에 대한 일화는 공정무역 비지니스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휴대폰이나 노트북 같은 복잡한 제품은 그 생산과 유통 경로가 너무나 복잡해서 하나의 계통으로 추적하기 곤란한데 저자는 세계의 공장 중국으로 눈길을 옮긴다. 애플, 노키아, 소니, 델, HP,  microsoft, 닌텐도 등의 제품을 조립하는 폭스콘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한달 동안 무려 16명의 노동자들이 자살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대략 20세 미만의 청소년들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 회사는 철저한 노동통제와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데 수익율이 낮은 것을 싼 인건비와 대량생산으로 만회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수익률은 27%인데 폭스콘의 수익률은 4%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건비는 싸게 하고 가급적 단위 시간당 생산은 많이 해야 하므로 노동자에게는 지옥이다. 저자가 보기에 중국은 겉으로는 공산주의국가이지만 관료, 사업가, 개인 가릴 것 없이 뼈속 까지 자본주의자이다. 대다수의 중국인에게는 윤리 등의 것은 지옥에나 줘도 될 개념이므로 저자는 이들이 두렵다고 한다. 자국민의 착취는 물론이고 막강한 경제력으로 제3세계에 대한 비윤리적 착취에 꺼릴 것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그를 중국의 이웃나라인 라오스로 가게 한다. 중국의 운남성과 면해있는 라오스의 북부지역인 루앙 남타는 현재 중국인으로 붐비는데 중국정부가 고무나무재배를 위해 이 지역을 임대했기 때문이다. 지역에 대한 지속가능한 발전 계획없이 양국 정부간의 거래에 의한 개발이라 지역의 풍부한 열대우림은 황폐화되고 오로지 고무나무 단일수종만 재배하고 있다. 토착 소수민족은 땅에 대한 소유개념이 없는지라 몇 푼 돈에 쫓겨나 중국인 회사의 값싼 노동자로 전락했다. 그러나 저자는 판에 박힌 '아 옛날이여'와 같은 유행가와는 거리를 둔 균형을 유지한다. 경제적으로는 못살았지만 심성이 고운 옛날이 좋았어 등의 순전히 잘 사는 문명인의 시각은 문화적 오리엔탈리즘이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기회로 바꾼 원주민을 소개한다. 고무산업으로 인해 새로 생긴 기회를 본인은 물론 지역주민 들의 빈곤탈출과 미래를 위해 잘 이용한 분창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데 새겨 둘 것이 많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개발 자체가 아니라 그 개발이 지역주민과는 아무 상관없이 이루어져 그 지역의 황폐화와 빈곤의 심화를 유발하는 것이다. 

개발은 잘 이용하면 그 지역의 빈곤탈출과 복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자는 그런 예를 탄자니아의 커피와 코트디부와르의 면화 산업에서 찾는다. 대기업이던 NGO든 UN이든 비슷한 점이 있는데, 그 것은 현지사정에 기반을 둔 착실하고 지속가능한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시적이고 일시적이고 현지 사정과는 전혀 무관한 책상물림적인 사업을 한다는 데 있다. 설사 그것이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현지 사정을 주의깊게 살피고 생각하고 고찰하고 행하는, 영민함, 참을성, 끈기, 창의력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우리를 지옥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악의에 찬 악인이 아니라 선의로 충만한 경솔한 의인일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런 영민함, 끈기, 창의력 등이 결합되어 지역주민과 기업이 모두 이익을 보는 놀라운 예을 탄자니아와 코트디부와르에서 보게된다. 
아마 이 책을 쓰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긍정적인 면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두 사례에서 '윤리적인' 생산과 유통이 대기업이 마지 못해 해야하는 이익이 조금 떨어지는 어떤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진정으로 쌍방이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저자는 본 것 같다. 지역주민은 이런 연결을 통해 문맹을 퇴치하고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의욕을 높여 궁극적으로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대기업은 안정적이고 품질 좋은 원료를 확보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이런 관계를 장기적으로 총체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좋은 제품을 생산하여 좋은 값에 팔 수 있다. '올람' 이라는 면화생산 기업의 예를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언급할 것은 이런 좋은 관계를 굳이 공정무역이라는 인증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생산자에 들어갈 비용이 쓸데 없이 인증비와 인증단체의 유지비용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우리가 생산자에게 정당한 이익이 돌아가기 위해 탄자니아 가서 커피 마시고 면화생산지 가서 직접 확인해야 하나? 저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다. 그러면 일반 소비자인 우리는 어떻게 '소비'해야 세상을 조금 더 정의롭게 바꿀 수 있을까? 저자는 나름대로 8가지를 제시한다.

1.좋은 일을 하는 것 보다 나쁜 일을 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이 더럽게 번 돈의 일부를 홍보적 목적으로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어떤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 차라리 그런 나쁜 돈을 벌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늘 빌게이츠를 보면 이런 생각이 난다. 막대한 돈을 기부하는데, 그 번 돈이 사실은 폭리에 가까우므로 차라리 마소가 그렇게 돈 벌지 말고 기부도 안하는 것이 낫다. 마소의 독점으로 인해 발생한 세상의 불이익의 그들이 낸 돈 보다 훨씬 많다고 보기 때문에. 통쾌하게도(?) 지금 이 글을 역시 그렇게 윤리적이지 않은 회사가 만든 맥북 프로로 쓴다.

2.홍보를 목적으로 좋은 일을 하지 말라

3. 대중을 속일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기업에 대한 채찍)

4. 선행은 언제나 보상을 받는다(기업에 대한 당근)

5. 밑바닥 부터 시작해 땀 흘려 노력하라(계획에 대한 고려)

6. 중국을 경계하라
 생산국가나 생산지에 대해 윤리적인 방식을 따르라고 강요해도 중국이 중간에 들어와 그 제제를 무시하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어떤 제제도 헛수고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이다.

7.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 한다.
회사의 책임회피에 대한 경계인데 하청회사라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라는 변명 등이다.

8. 대기업은 스스로 착해지지 않는다.

뭔가 잔뜩 기대했는데 읽고 나면 좀 힘빠지는 처방이다.  좀 나이브하다. 사실 현실이 너무 복잡해서 책 한권으로, 몇 마디로 단순하게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도 이제 윤리적인 소비에 관심을 가져할 시대가 왔다. 밥상에 올라온 음식들이 어떤 경로로 우리에게 왔는지, 우리가 입고 쓰는 옷과 물건이 혹시는 가난한 나라의 소년과 소녀의 피땀을 짜서 만든 피 묻은 것이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이런 성찰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며 지금 어딘 가에서 부모의 따뜻한 사랑 대신 감독관의 날카로운 눈초리 밑에서 흙을 파는 16세 소년, 소녀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피 묻은' 제품을 거부할 때 이윤에 의해서 움직이는 대기업의 행동의 변화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몹시 자기패배적이고 경멸적인 단어이지만 이런 약한 소비자가 움직여야만 세상이 변한다(저자의 시야로서는 무리지만 사실 이런 일의 진정한 대안은 지역생산 -지역거래라고 본다).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던 이런 관점을 상기하고 자극하는 의미에서 좋은 자극이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깊은 성창을 얻고 싶은 사람에게는 좀 싱거울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