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억스리 2020. 2. 10. 19:06

[출처] https://blog.naver.com/m3rcury/220874877002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작가
 
후루이치 노리토시
 
출판
 
민음사
 
발매
 
2015.03.12.

 

 *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행복한 젊은이로 산다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은 거품경제의 불황에 빠져들었고 젊은 세대들을 걱정하는 ‘젊은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1년 ‘일본 국민 생활 만족도 조사’결과 20대의 75%가 ‘지금 나는 행복하다’라고 응답해 일본 열도는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부조리한 사회, 워킹푸어, 젊은이들에게 불리한 산업구조까지  

이러한 일본의 부조리한 사회에서 어째서 20대의 젊은이들은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행복한 젊은이들과 대면한다.



*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책 주제도 주제지만, 오찬호 작가가 책의 해제를 썼기 때문이다.

'행복한 젊은이들이 일본에 존재하는 이유는 그나마 자신을 사회적 관계 내의 '피해자'로서 볼 줄 알기 때문이고, 이것이 두 나라의 결정적 차이'라는 그의 해제는 책의 본문에 들어가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실 해제만 읽고도 이미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작가여서 그런지 가독성이 굉장히 좋고,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쉽게 읽힌다.

또한 학계의 다른 학자들 (나이가 본인의 두배, 세배는 되는)의 말도 안되는논의를 신랄하게 비꼬고, 반박하는 것이 굉장히 통쾌했다.

이렇게 일반화할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주관적인 논의도 꽤 있고, 같은 논의가 일본을 떠나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지점도 있지만, 진지하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문제로서 현재 20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1​.

'젊은이'라는 단어

p.76

세대론이 사회에서 유행하게 되는 때는 계급론이 현실성을 잃었을 때다.

세대론은 모든 변수를 무시하고 어떤 연령에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일괄해 명명해 버리기 때문이다.

p.287

'세대'라는 변수로 사회를 바라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간과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책의 본격적인 논의는 흔히 '우리 때는 안 그랬다'는 말로 시작되는 세대별 담론에 있어서 '젊은이'라는 구별점이 과연 유효한지 살펴본다. 

내게 있어서도 젊은이라는 단어의 쓰임새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젊은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시작됐던 예전보다 더 이질성을 많이 띄는 20대 인구를 나이라는 변수 하나만으로 묶는다는건 정말 문제가 있다. 또한 그렇게 세대를 뭉뚱그려 묶으면서 비단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들의 문제점을 너무 섬세하지 못하게 후려쳤다는 것도 문제다.

p.284

의회제 민주주의를 채택한 일본에서 사회 문제를 세대 문제로 처리해 버리는 한, 젊은 층에게는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20대의 비율만 보자면 그 윗세대의 비율보다 현저히 낮고 (14%), 젊은 층 인구가 상대적으로 높은 도시일수록 투표율도 낮게 나타나기 때문.

 

​세대적인 구분은 많은 사회의 문제점들을 너무나 편리하게 그 세대에게만 고유한 문제점으로 돌려버린다. 결국 사회가 낳은 문제점이 어느 특정 세대의 문제점1, 특정 개인의 문제1로 환원되고, 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 역시 특정 개인, 특정 세대의 몫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2​.

일본의 내셔널리즘

젊은이들이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일본'을 외치고 있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 열정의 실체는 애국심이라기 보다는 에너지의 발산, 무언가 해야될 것 같은 조급함의 발산이었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마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결국에는 전후 최고조의 내셔널리즘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인터뷰이들은 자신들이 극우파가 아닌, 일반 시민임을 끝없이 강조했고, 시위와 애국행진이라는 행위 그리고 행위를 함께하는 동집단 구성원들을 향해 굉장한 소속감과 애착을 보였지만 결국은 자신들이 외치고 있는 정치적 주장보다는 지금하고 있는 행위, 지금 연결되있는 사람들에 몰두하고 있었다.

또한 설문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사회를 바꾼다.'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는 많지만,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가장 확실하고 손쉽게 관철할 수 있는 투표에 있어서의 참여율은 또 저조하다.

20대의 투표율은 우리나라에서도 부끄러울 만큼 저조한데,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가 정말 궁금하다.

일본의 20대들은 투표를 하지 않으면 비록 시위의 정치적 본질은 매우 희석됐지만 시위라도 나가지 우리나라는...?

투표도 안하는데 시위에 참여할리가 없지. ​

 

 

 

 

3.

책을 읽는 내내 일본 사회를 바탕으로 전개한 이 논지를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의 변형은 어떻게 일어날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우리나라가 겹쳐 보이는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

p.189

근대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의 결합은 '부국강병을 이루어 전쟁에서 이기겠다.' 혹은 '경제 성장을 달성해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로 만들겠다.'라는, 명확하게 이해하기 쉬운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시대에는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그 덕분에 일본의 인프라가 정비되었고, 지금 정도로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다.

환상적인 공동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것에는 수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경제에 떠밀려 겉모습만 번지르르해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p.291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겉보기에 참으로 풍요로워 보인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풍요로움과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젊은이의 빈곤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젊은이들에게 현재의 문제라기보다는 앞으로 나타나게 될 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젊은 층일수록 같은 세대에 속한 사람들 간의 격차는 적다.

20대의 경우에는 정사원이든, 프리터이든, 급여 격차가 그리 크게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연공서열 사회에서 연차와 경력이 쌓임에 따라 위기 대처 능력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나중에 다시 연공서열 사회의 정규직으로 프리터가 들어가는 것도 절대 녹록치 않다.​


p.294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에서는 일단 '좋은 학교', '좋은 회사'라는 궤도에서 내려와 버리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아무리 위로 올라가려고 노력해도, 마땅한 학력이 없거나 프리터로 일해 온 사람에게는 좀처럼 '좋은 회사'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른바 '경력 사다리'가 없는 것이다.


 

당장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나라에서도 씁쓸함을 느낄 수 있는 논의들이다. 

 

 

 

 

4.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p.135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고도성장기나 거품경제 시기에 젊은이들의 '생활 만족도'가 낮게 나타났던 이유가 설명된다.

말하자면, 그 시기의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믿었다.

더불어 자신들의 생활도 점차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품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은 불행하지만, 언젠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소박하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인간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의 행복, 나의 비젼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어느 정도 체념하고 포기하기 때문에 얻어진 행복이긴 하지만 그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서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분명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고, 내 스스로 힘으로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잡고 있는 행복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보다 낮기 때문일 수도 있다.

Y언니는 내가 욕심만 부린다면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은데 그러질 않는게 신기하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내가 세운 내 행복의 기준은 세상의 것에 욕심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욕심내지 않을 것이고...

말끝을 흐리며 자신 없어지는건 스스로도 세상의 쓴 맛을 덜 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니 그냥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절망의 나라에서 왜 젊은이들이 행복했는지 저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 끝에 얻은 명쾌한 답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동의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혹시 누군가가 비관론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너무 비참하게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5.

p.278

현재 일본의 연금 보험과 의료 보험은 유럽에 비해 손색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고령화로 인해 연금과 의료비를 산출하는 대국민 소득 비율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 대책과 주택 대책 등 현역 세대를 위한 생활 보장은 여전히 19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말하자면 고령자에게는 유럽 수준의 혜택, 현역 세대에게는 미비한 보장인 셈이다.

 

 

가뜩이나 모두가 힘든 시기인만큼 우리만 힘들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이성적인 사회학도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도 생각했고.

하지만 저자의 논지에 설득당해서 지금 당장 우리가 힘든 것 보다 앞으로 더 힘들 모습이 그려지면서 부아가 치밀었다.

한뜩 그런 감정이 고양됐다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친구와 얘기하면서 감정이 길을 잃고 말았다.

그 친구는 노인 복지에 굉장히 관심을 갖고 있고 그쪽으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사회복지학, 그것도 노인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해주면서 현대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모든 약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축소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 하나 편리하자고 한껏 흥분해선 젊은이들을 이 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감정을 쏟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심지어 사회적인 보장이 탄탄하다고 하는 노인들도 결국은 피해자였다.

​명백한 가해자는 없이 피해자들만 속출하고 있는 사회다.

나는 '행복의 나라' 맥도날드에서 해피밀을 사먹지 않고도 행복한, 행복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더 생각이 많아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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