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억스리 2016. 6. 17. 00:37

[출처] http://m.blog.yes24.com/bitemoon/post/3017047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작가
토머스 드 퀸시
출판
시공사
발매
2010.08.24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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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이 상비약으로 팔리던 시절이 끝난 지 오래, 아마도 난 죽을 때까지 아편이 주는 고통, 허무, 낭패와 기쁨, 만족, 희열을 느낄 기회가 없을 것이다. 죽기 직전에야 독한 진통제로 잠시 맛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내가 모르는 세계이다. 악마의 약, 마약으로 불리는 것들이 가진 유혹의 강도는, 마약중독자들의 피폐한 삶을 공익방송 다큐로 보면서도 좀처럼 고개를 돌리기가 쉽지 않다. 토머스 드 퀸시의 수필집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사회가 금기시하는 아편 중독의 세계를 제3자의 선입견을 담지 않은 순수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고백록이다.

 

아편에 수반되는 자비로운 감정의 확대는 결코 열병의 발작이 아니라, 원래 공정하고 선량했던 마음의 충동들과 싸우고 그것을 혼란시킨 뿌리 깊은 고통이 제거되면 마음이 자연히 되돌아가는 그 상태로 건강하게 회복되는 것이다. 90쪽

 

그의 생생한 고백을 들어보면, 아편을 경계하라는 주제를 책 전반에 걸쳐 근거에 깔아두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와 거리가 먼 진술이 등장한다. 그는 아편보다 감정을 맥없이 풀어버리는 술을 더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드 퀸시가 아편을 복용할 당시, 영국에서 감기약처럼 약국에서 팔았다는 전제를 고려하더라도 아편이 일상을 지배하는 세상이라니. 아편중독자들로 득시글거리는 매춘가가 먼저 떠오르지만, 드 퀸시가 아편을 처음 복용했던 19세기 초반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Age)가 막 시작될 즈음으로 산업혁명과 자유무역으로 세계 지배를 예고했던 시절이다.

 

다만 동시대 소설인 찰스 디킨즈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알 수 있듯이 산업사회로의 전환은 농민계급의 몰락으로 명과 암이 뚜렷한 시기이기는 하다. 드 퀸시는 청소년기 기숙학교에서 도망친 뒤 극빈하게 지내는 내내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평생을 따라다닌 지독한 위장병을 앓았고, 이외에도 이런저런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74세까지 살았다. 아편중독자로 반평생이상을 살았으면서도 동시대 작가들 가운데 가장 오래 산 셈이다. 그가 당시 민중의 삶과 괴리된 채로 쾌락을 즐긴 중산층으로만 볼 수는 없다. 호황을 맞은 직물 상인 집안이기는 했으나 아버지의 이른 죽음 이후, 퀸시 집안은 내내 넉넉하지 않았다. 청소년기 창녀 앤과의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드 퀸시는 당시 계급상승에 안달이 난 중류층이 아니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이런저런 형태로 동정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그 당시 나는 오히려 그들이 낙에 공감하는 것으로 내 관심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 그들은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을 때도 있었지만, 얼굴 표정이나 말로 인내와 희망과 평온함을 표현할 때가 훨씬 많았다. 일반적으로 보면, 적어도 이 점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 훨씬 철학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100~101쪽

 

낭만주의자로 그의 삶과 고백이 곧 아편중동을 사소한 문제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물론 아니다. 이 책은 책날개에서 소개하듯이 자신의 삶에 걸쳐 수십 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탐닉에 대한 기록, 그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야기이다. 19세기 영국 문화를 보는 사료로 수필집의 가치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시공사 판은 꼼꼼하게 주석을 달아 놓아 당시 시대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어렵지 않게 읽힌다.

 

다소 자극적으로도 보이는 제목처럼 아편 때문에 벌어질법한 파란만장한 삶을 기대했다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언론을 비롯해 영화, 소설 등 재구성한 상품으로 만나는 대중 장르 물에서 봤던 관련 사건사고 등은 일체 벌어지지 않는다. 그는 아편을 즐기고 글을 쓰면서 여생을 보낸 어쩌면 유일무이한 시절을 누린 행복한 작가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아편에 대해 일방적 정보뿐인 시대에, 아편을 다룬 보고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하자면 그 감흥을 공유할 길이 없으니 지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탐닉 보고서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심정이 과연 행복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책이 세계문학으로 엮여서 나왔다면 그 이유가 탁월한 문체-소설가 김석희의 번역도 나쁘지 않지만 원문으로 보지 않는 이상 역시 의미 없는-외에도 아편을 비롯한 중독자들이 나락으로 바로 추락하지 않도록, 적어도 떨어질지언정 천천히 돌아가는 지침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마약, 섹스 등 쾌락으로의 질주가 아니더라도 사회나 스스로 한계를 정한 틀 밖으로 나아갈 힘을 북돋는다. 사회가 금기하는 것들을 갈망하거나 익히 중독된 이들에게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유를 담은 이 책은 얇지만 지루한 19세기 수필집이 아닌 육화하여 인간들과 함께 했던 신, 예수의 일대기를 다룬 4복음서와 다르지 않다.

 

영국 소설가 로버트 스티븐슨이 뮤지컬 원작으로 유명한 중편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을 쓸 당시 병원에서 마약성분인 LSD가 든 맥각으로 치료를 받는 와중이었다. 프로이드가 심리학 저서를 발표하기 전, 이미 인간의 선과 악, 이중성을 다룬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을 출간한 1886년 역시 빅토리아 시대였다. 스티븐슨 외에도 당시 많은 작가들이 어떤 경로로든 마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스티븐슨 역시 드 퀸시의 수필집에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비록 드 퀸시는 변명이든 뭐든 아래와 같이 진술하지만 말이다.

 

의사들은 내 감정에 대한 공연한 배려나 고려 때문에 내 송장을 확보하고 싶다는 뜻을 표명하기를 주저하지 말기 바란다. 장담하거니와, 내 몸뚱이처럼 비정상적인 육체를 ‘실물 실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나에게 큰 명예가 될 것이다. 이 생에서 그렇게 많은 고통을 나에게 안겨준 내 몸뚱이가 죽은 뒤에 그런 앙갚음과 모욕을 당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을 줄 것이다. 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