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왜 지금 지리학인가

억스리 2016. 8. 3. 17:30

[출처] http://blog.naver.com/hong8706/220775390201






이 책은 저 같은 지리 덕후, 역사광에게는 아주 강추할만합니다. 그러나 이쪽에 관심 없는 분들에게는 지루한 책일 수 있습니다. 일단, 다루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요. 각국의 역사와 지리적 연관 등을 주루륵 나열하기 땜에, 배경 지식이 없는 분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그러나 지도를 좋아하고, 심지어 사회과부도의 지도를 스케치북에 따서 그려본 경험 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워낙 내용이 다양해서,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만 '기억용'으로 인용해보겠습니다(책 180~181 페이지).


그린란드의 빙핵(Ice core)이나 대서양 해저의 진흙 퇴적물 등 여러 곳에서 나온 물리적 증거와, 플라이스토세의 빙하가 지나난 자리에 깨지고 부서진 암석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얼핏 플라이스토세의 기온이 놀랄 만큼 규칙적으로 오르내린 것 같다. (중략) 42만 5천 년이 넘는 지난 플라이스토세 시기 동안 총 네 번의 빙하기와 네 번의 간빙기가 있었으며, 그 중 마지막 간빙기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홀로세다.


좀 더 최근의 분석에 따르면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첫째로 빙하기-간빙기 주기의 양상이 약 42만 5천년 전에 바뀐 듯 보인다. 그전까지는 한 주기가 4~5만 년 안팎이었는데 이때부터 평균 약 10만 년 주기로 변화한 것이다.


둘째로,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위스콘신 빙하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만 년 전이었던, 에미안 간빙기 끝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위스콘신 빙하기는 내내 춥기만 했던 균일한 시기가 아니었다. 사실 이 시기에는 다시 몇 차례의 짤막한 간빙기와 좀 더 긴 (비교적) 온화한 휴지기가 있어서, 수천년 동안 고위도 지방에 서식지가 형석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이처럼 더워졌다 추워졌다, 온화해졌다 시원해졌다 하는 변화가 아주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잦았으며, 그때마다 동식물은 물론 호미닌과 인류 또한 상당수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제가 예전에 읽었던 책(얼음의 나이)의 내용과 많이 겹치고, 또 최신의 연구 성과가 인용되어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기후변화가 인류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요? 이 부분을 조금 더 인용해보겠습니다(책 181~182 페이지).


초기 인류가 현재 서남아시아 지방에 도달하자마자 기온이 지독히 떨어지면서 위스콘신 빙하기가 시작되었다. 이 초기의 이주가 남긴 흔적은 유골 뿐이었다. 그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이 살고 있는) 유럽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 다음번에 인류는 홍해의 반대편에 놓인 다른 출구를 통해서 아프리카를 벗어나려 시도했다. 약 8만 5천년 전의 일이다. 위스콘신 빙하기에 대량의 물이 얼음으로 바뀌었으므로 홍해의 수위는 오늘나에 비해 100~200미터 낮았다. 홍해가 인도양과 이어지는 길목에 형성 바브알-만디브 사주가 징검다리 역할을 한 덕분에 우리의 조상들은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그들은 먼저 아라비아 반도의 해안을 따라 이동한 다음 페르시아 만을 돌아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들어갔으며, 뉴기니를 거쳐 호주에 다달았다.


이 과정에서 현생 인류는 그들보다 앞서 유라시아로 들어간 호미닌(네안데르탈인, 데니소비아인, 그리고 호빗 등)과 만났다. 그리고 호미닌은 지략이 풍부한 이 새로운 이주자의 적수가 못 되었다.





제가 이 책을 왜 좋아하는지 아시겠죠? 기후와 인간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겠습니다(책 183~184 페이지).

사실 인류가 유럽으로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 반도와 남아시아로 향하는 움직임이 별안간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약 7만 3천 5백년 전의 일이다. (중략)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행성 전체의 인류를 거의 다 쓸어버린 대재앙이 벌어졌다.

수마트라 섬에서 오늘날 토바라고 이름 붙은 화산이, 단순히 분출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폭파되었다. 이 폭발은 수백만 톤의 잔해를 지구 궤-도로 날려 보냈고, 그로 인해 태양빛이 가려졌으며, 지구 상당 부분이 장기간 암흑 속으로 들어가면서 기후가 바뀌었다.


설상가상으로 토바 산이 폭발한 시기 또한 최악이었다. 당시는 위스콘신 빙하기가 한참 위력을 떨칠 때였으므로 지구상에서 거주가 가능한 지역은 이미 제한되어 있었기에, 상당수 인류가 죽음을 맞이했다. 인류학자들은 이 사건이 인류의 진화에서 '병목 현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이 한순간에 대단히 많은 유전적 다양성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토바 화산이 폭발했던 자리에는 길이 90킬로미터, 너비 50킬로비터 크기의 칼데라 호(백두산 천지 스타일의 호수)가 위치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처음 출현한 이래 인류의 생존이 직면했던 최대의 위험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