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아직 읽지 못한 책 - 앙드레 고르 -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억스리 2012. 12. 24. 09:46

[출처] http://blog.naver.com/lipidcho/120176454046


앙드레 고르( Andre Gorz)는 2007년에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정성껏 간호하다 아내가 죽은 후 스스로 자살한 특이한 이력의 사회학자로 흔히 '순결한 영혼'이라고 숭앙받는 사람이다. 

 

그의 저서는 프랑스어 자체로도 아주 어려워서 한국어로 많이 번역되어 있지 않다. 그의 예언적 비전 대로 2008년 서브프라임 크라이시스가 세계를 강타했을 때 때 늦게 다시 각광받는 사람이 되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도 그의 저서가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었다. '에콜로지카'라는 제목이었는데 당시 얼마나 신선하고 감동을 받았는지 무려 6번을 통독했었다(서평은 여기를 보세요.http://blog.naver.com/lipidcho/120130116225). 그의 명작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 번역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5년이 지나서야 소리 소문 없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좋은 서적을 많이 내던 '생각의 나무' 출판사도 심한 불경기를 견딜 수 없었는지 문을 닫고야 말았는데 겨우 수소문 해서 그 출판사의 거의 마지막 책인 '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고르는 후기 산업사회에 이르러 맑스가 규정했던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애초에도 프롤레타리아는 개념속에서만 존재하는 관념이었지만 모두가 임시 노동자로 존재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더욱 더 하나의 계급, 하나의 이익으로 묶을 수 있는 그런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일컬어 비계급적 존재이다. 80년대 운동권에서 낭만적으로 짝사랑했던 민중이 실체적 존재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비계급화된 노동자 집단은 균질하거나 단일한 계급이 아니고 오히려 자분에 의해 지배당하고, 이 체제를 유지하는 톱니바퀴이며 사회변혁의 원동력이 될 수 없다고 그는 지적했다. 비계급화된 임시, 계약 노동자는 자율성과 개인의 공간을 중요시 하는데 이런 힘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역동성이라고 고르는 지적한다.

 

이런 그의 생각이 논리적이고 광범위하게 전개된 책이 바로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다. 무척 읽고 싶은 책이지만 금년 6월 부터 내년 6월까지 경전과 전공서적 외에는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온 터이라 읽지는 못하고 책의 두툼하고 엠보싱이 약간 있는 촉감의 표지를 만지작 만지작 하고 있다. 

 

책을 안 보니 머리가 무척 가벼워져 생각이 단순해져 좋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많은 쓸데 없는 지식으로 머리를 꽉꽉 채웠는지 모르겠다. 지식의 바벨탑을 쌓는 작업은 잠시 즐겁겠지만 일종의 유희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아마 전과 같이 많은 책은 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와중에서도 읽어야 할 고전인데 요즘 처럼 계급이 해체되고 이념이 와해되고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대두될 때 꼭 참고로 해야 할 책같다. 특히 아직도 80년대 프래임으로 진영논리에 꽉 갇혀 보수대 진보, 절대악 대 모든 가치의 담지자로 세상을 나누어 보는 소위 '진보' 진영은 꼭 읽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