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고민하는 힘> 강상중 도쿄대 교수

억스리 2009. 4. 22. 13:02

강상중, 우울한 시대에 속삭이듯 말 걸기

[화제의 책] 강상중 도쿄대 교수 <고민하는 힘>

 

'이상한 외국인(怪しげな外國人)'

어쩌면 '수상한 외국인'으로 번역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2006년, 작가이자 현 도쿄 도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이 책의 저자 강상중을 가리켜 한 말이다.

이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 우익 인사는 당시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2016년 올림픽 유치를 강상중이 비판하자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와 같이 말했는데, 이 유명한 일화는 강상중이라는 지식인이 일본 사회에서 가지는 영향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세계화의 원근법>등을 통해 일본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제를 세계화의 맥락에서 고찰해온 연구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 강상중 도쿄대 교수가 일본 사회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해 온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의 강상중을 단지 '한국 국적을 가진 최초의 도쿄대 교수' 등과 같은 판에 박힌 수식어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일본 전쟁사의 '이물질'로 일본인의 역사에서 가장자리로 쫓겨난 재일 한국인의 역사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저자는 '건방진'(이시하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외국인 학자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자주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비치는 대중 영합적인 지식인일 수도 있으며, 일본인보다 더 진지하게 일본 사회의 현실을 고민하는 일본의 대표적 지성일 수도 있다.

▲ <고민하는 힘>(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사계절 펴냄) ⓒ프레시안
그런 맥락에서 일본에서 2008년 출간되어 100만 부에 가까운 판매를 기록 중인 <고민하는 힘>(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사계절 펴냄)은 그러한 다양한 시선 속에서 맺어 온 저자와 일본 사회와의 아주 특별하고 오래된 관계를 잘 보여주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서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우울한 청춘 시절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늘 속삭이듯 말을 걸어주었다고 말한다. 사실 저자의 그간 활동들을 살펴보면 100년 전을 살았던 독일의 사회학자와 일본의 문학가가 이 한 권의 책에 동시에 등장하는 것이 그리 뜬금없는 일은 아니다.

<막스 베버와 근대> 등의 저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자신의 학문적 사고와 가치관의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막스 베버의 저작을 통해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읽어내고자 했고, NHK 방송 등을 통해 이미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나쓰메 소세키의 고전들을 재해석함으로써 그것들이 현재의 일본 사회에 던지는 성찰적 의미들을 꾸준히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는 <고민하는 힘>을 통해 스스로 일본 사회의 '우울한 시대'에 속삭이듯 말을 걸고 있다. 사실 이 또한 갑작스러운 작업은 아니다. 이미 자전(自傳) <재일 강상중>을 통해 '재일(在日) 2세'로서의 자신의 삶을 고백한 저자는 <애국의 작법>, <일본 서바이벌> 등과 같은 대중적 인문서와 각종 칼럼 등을 통해 '자유롭지만 숨 막히는 이 나라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함께 고민할 것을 제안해왔다.

<고민하는 힘>에서 '아리랑을 부르시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로 서두를 여는 것이나, 자주 '한국'을 거론하는 것이 일본의 독자들에게 생소하지 않은 것도 그 같이 오랜 시간에 걸친 '말 걸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고민하는 힘>을 통해 일본 사회의 가장 깊숙한 곳에 퇴적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등등.

마치 어느 종교 입문서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러한 질문들은 시종일관 자기고백적 형태로 던져지며 결코 공허하지 않은 설득력을 가진다.

"사춘기 때 나는 이 물음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안락하고 즐거운 일이 없을까 궁리하며 눈을 굴리면서 바깥 세계만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딜 가든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28쪽)

이렇게 시작되는 그의 질문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나 '자아는 타자와의 상호 인정에 의한 산물이기 때문에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를 타자에 대해 던질 필요가 있다'는 그의 답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막스 베버와 미셸 푸코, 에드워드 사이드를 통해 '타자'에 관해 고찰한 저작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저자의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 강상중 도쿄대 교수.

이러한 저자와 일본 독자들과의 소통은 일본 사회에 대한 부드럽지만 통렬한 비판에 기초하고 있다.

진지함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분위기(1장), 돈을 위해 돈이 도는 현실(2장), 지성이 결여된 지식의 폭발(3장), 젊음만을 귀하다고 여기는 가치관(4장), 개인의 과잉이 가져온 무력함의 확산(5장), 일하는 인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교육제도(6장), 사랑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부재(7장), 안정적 법과 질서가 무력해지는 위기적 상황의 일상화(8장), 지혜로운 어른세대의 부재(9장) 등.

저자는 시종일관 '세계화'와 '자본주의'라는 키워드를 관통시키는 가운데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지금 무엇을 고민해야할 것인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설사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해도 끝까지 그 질문들을 던져버리지 말 것을, 과거 고도성장기에 대한 향수에 젖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현실을 도피하지 말 것을, 적당함을 버리고 치열하게 고민해서 결국엔 뚫고 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그것을 일본을 변화하게 할 '새로운 파괴력'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고민하는 힘>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되어야 하는 이유가 단지 이 책이 한국 국적을 가진 교수가 쓴 일본의 베스트셀러여서는 아닐 것이다.

진짜 이유는 책 속에서 '일본'이라고 써진 부분을 모조리 '한국'으로 바꾸어도 읽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한국 사회 또한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위기에 따른 고용불안과 빈부격차의 심화, 정치의 무능과 리더의 부재, 사회적 불안과 불만의 확산 등 지금의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는 여러 모로 닮아있다. 내가 누구인지, 과연 돈이 전부인지, 왜 일하는지, 심지어 사랑이 무엇인지 등과 같은 이러한 질문을 놓고 '먹고 살기에도 힘든 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그저 과거의 압축성장기를 향수하거나 눈앞의 수치와 결과에 급급하기보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미래를 바꿀 만큼의 '새로운 파괴력'을 준비할 때라는 것을 저자는 속삭이듯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