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쟈칼의 날 (The Day of the Jackal, 1971)

억스리 2008. 12. 23. 09:33

(한 권의 좋은 소설이 백 권의 경제학 교과서보다 낫습니다.

미국 국민들이 공황을 극복하게 한 것은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아니라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였답니다...)

 


내가 최고로 손꼽는 정치테러소설은 Frederick Forsyth 작 "쟈칼의 날"이다.

처음으로 영어원문을 밤새며 읽었던 책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Forsyth 의 다른 베스트셀러 작품들처럼 영화화가 되기도 했다.

첫째는 Fred Zinnemann 감독과 Edward Fox 주연의,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박진감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The Day of the Jackal (1973) 이고,

둘째는 Michael Caton-Jones 감독의 The Jackal (1997) 인데,

Richard Gere, Bruce Willis 등 잘 팔리는 헐리우드 배우들이 나오긴 했지만

돈내고 보기엔 아까워 죽을 지경의 완전 삼류영화이다.

Forsyth 는 영국의 국민배우 Michael Caine 의 절친한 친구라고도 한다.

(유명한 007 제임스 본드 Sir Thomas Sean Connery 는 비록 영국 귀족의 작위를

받았지만 스코틀랜드 사람이니, 그를 영국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실례일터.)


"쟈칼의 날"은 영국인 살인청부업자의 프랑스 대통령 드골 암살 음모를 다뤘다.

총에 대해 좀 배웠고, 도피생활이나 문서위조 같은 것을 좀 해봐야 했던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실감나게 다가오는 드릴러이다.

살상율을 높이기 위한 수은탄의 사용, 과장되지 않은 최적의 저격거리,

그리고 성공적인 도피 루트 선정 등의 테크닉은 가히 스나이퍼의 교과서로

쓰일 수 있을 정도이다.

 

영웅 아닌 영웅으로서의 "고독한 범죄자"의 눈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이,

물론 문학성이나 영상성의 수준은 비교가 될 수 없겠지만,

Alain Delon 주연 Rene Clement 감독의 명화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

1960 에 견줄만도 하다. 게다가 상당히 희화적인 반전도 있다.

 

완벽한 프로페셔널 킬러 쟈칼이 마지막 순간 기념식장에서 드골 암살에

실패하는 원인은 단 하나, 앵글로색슨인 그가 라틴인의 관습

- 즉 두 뺨에 입맞춤하는 인사를 하느라 드골 대통령이 머리를 기울이는

 바람에 총알이 빗나감 - 을 몰랐다는 것이었다...

 


암살을 다룬 영화 중에 또 내게 깊은 인상을 준 것으로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Clint Eastwood 감독 주연과 John Malkovich 가 출연한 In the Line of Fire, 1993 가 있다.

 

"쟈칼의 날"과 같은 클래식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그래도 "살인기계"의

외적인 평범함과 그러나 그 내부의 치밀한 논리, 목표에의 집착, 자기포기,

또 상대방 적에 대한 프로페셔널적 존중과 경외 등의 정신세계를 성격배우

Malkovich 가 잘 표현한 것 같다.

 

 


한편 James Woods 와 Brian Dennehy 주연의 Best Seller, 1987 라는 영화는

텔레비젼용 심심풀이 땅콩에 불과하지만, 그런대로 살인청부업자의 프로필과

테크닉이 잘 묘사되어 있다.

 

무엇보다 여기에는 이 영화의 수준에 맞지 않게 위대한 "민주사회의 진리"가

주장되고 있음이 놀랍기만 하다. 그것은 바로

"아무나 누구든지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

 Everyone can kill anyone at any time at all times 는 것이다.

정치테러소설은 이 진리에 입각하여 가장 보잘 것 없는 모든 독자를 가장

포악한 독재자에게 죽음을 주는 최후의 심판관이 되게 한다.


아무리 강대한 국가, 완벽한 경호망에 둘러쌓인 권력자라 해도

이 진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동물로서의 인간 하나는 동물로서의 다른 인간 하나를 죽일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힘과 지혜를 자연의 법칙에 의하여 누구나 부여받고 있다.

 

가령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가 어느 날 갑자기 희대의 살인마가 될 수도 있듯이,

비록 최고 통치자이지만 일개 미약한 시민에 의해서도 언제라도 암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함부로 감히 독재의 망동을 하지 못하고,

항상 시민 개개인을 경외하며 존중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픽션은 암살의 가능성이 단순히 폭력을 불러 일으킨다는

유치한 논리가 아니라, 오히려 상호파괴라는 힘의 균형에 따른 평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Homo homini lupus.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 라는 철학자 Thomas Hobbes 의

주장도 아마 원초적 상호파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닐지.

그러므로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약자가 어떠한 강자도 죽여버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폭력이다.

 

약자와 강자의 구별은 사회적 관계 내에서만 가능하다.

원초적 폭력은 자연적 존재의 파괴일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 즉 구체제의 부정이다.

알카에다 전사들이 불과 연필깍는 칼 한자루로 세계 최강 최대 최고의 도시를

일순간에 파괴했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위대한 승리일 뿐 아니라 정치사상적으로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약자가 스스로 갖고 있는 최후의 파괴력에 대한 역사적 자각이다.


* * *


암살의 해부학의 관점에서, 시국이 시국인 만큼, 당연히 조선 총독

쓰키야마 아키히로의 암살 실현성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대다수에 의해 반대되고, 더구나 상당수 국민에 의해 본능적으로 증오받고 있는

아키히로의 경우에, 그가 현재와 같은 혐오적인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는 우를 범한다면

분명히 우발적인 살해기도가 나타날 것이다.

 

사실 약간의 조직과 보급 그리고 충분한 동기를 가진 인원이 있다면

쥐잡기 정도의 암살은 기술적으로 크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물론 케네디의 경우처럼 내부 경호원까지를 포함한 비밀경찰 여러 명이

공개 사형집행식으로 public execution 하는 암살이 아니라,

한 명 스나이퍼에 의한 근거리 저격이나, 카미가제에 의한

단거리 저격 또는 자살폭탄이 될 것이다.

 

아키히로의 선진국 열등의식 약점이 해외언론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외국기자 카메라맨을 가장한 근/단거리 저격이나 부비트랩의 사용이 효과적이다.


프로페셔널 스나이퍼에 의한 깨끗하고 정밀한 사형집행은 기술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법이지만, 그것은 구테타의 한 과정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암살과 동시에 전반적 정권장악이 성공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대안세력의 정책과 조직이 선행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반면, 시민의 사회적 불안과 정신적 좌절이 급격히 증가하고, 현대 사회의

추상적 미학적 폭력성 속에서 매스 메디어가 부추기는 나르시즘은

카미가제 자원병을 많이 배출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마츄어들의 정신병리적 행동에 의한 아키히로의 제거는

정치적인 변화를 부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아키히로를 괴뢰로 내세운

수구매판집단의 아예 전면적인 권력장악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키히로가 거짓 복음을 믿는 사교 집단들의 광란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볼 때,

아키히로의 엉뚱한 "예수화" 시도까지도 사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마우스를 뒤에서 컨트롤하는 집단은 내심 그리되기를 음흉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 시국을 타개할 가장 좋은 방법은,

아키히로가 국민의 무서움을 스스로 알고 물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광신적인 아집과 그를 둘러싼 자들의 탐욕은 그들을 이성의 영역으로

돌리지 못하고 있다. 미친 자들과 어찌 논리로 대화하며 설득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미친 자들일 뿐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1%의 수구매판세력을 핵심으로 10%도 안되는

비이성적 동조세력이 90%의 부를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빨아먹으려

집단적으로 발악하며, 저울의 균형을 잃게 하고 있는 듯 하다.

 

균형이 무너지면 당연히 그네들도 같이 추락할 그렇게

자명한 귀결도 인지하지 못하는 듯 하다.

그래서 더욱 더 쯔께다시 아키히로의 제거가 우리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정말 기다려지는 희소식이 될 것이다.

그 날은 바로 대한민국의 희망이 열리는 날이리라.

 

 

제 글을 걱정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건강하세요.

 

언제나 희망은 있거든요.

 

Noblesse...

노블레스란 거는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서도 비굴하지 않는 거랍니다.  

 


만델라의 프로세스: 데모 -> 파업 -> 사보타쥐 -> 테러 -> 카오스


우리는 지금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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