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periskop.info/111?category=8
유용한 정보를 모으자면 당연히 많은 시간과 열정, 수고가 따른다. 그러나 역시 뭐니뭐니해도 돈이 만만치 않게 든다. 홈지기야 직장 도서관이 어느 정도는 해결해 준다지만, 그래도 이 책 저 책 사다 보면 婦納金 맞추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가끔 부업 삼아 여기저기 기고문을 써서 메꾸는 수밖에. 다행히 이번 주에는 H경제신문에 서평을 하나 싣게 되었다 — 리처드 오글(Richard Ogle)이 1년 전쯤 내놓은 『Smart World: Breakthrough Creativity and the New Science of Ideas (스마트 월드: 혁신적 창조성과 아이디어의 新과학)』에 대한 서평이다. 따끈따끈한 번역서를 받아들고 신문 주말판의 서평 섹션을 채우기 위해 황급히 써내려간 원고는 이렇다:
언제나 한정된 분량의 신문 지면에 꽉 맞춰 넣으려면 군더더기는 다 빼고, 적당히 좋은 말 많이 골라 써야 된다는 제약이 있으니 그 점 이해 바란다.
이 책은 올해 출판계에서 계속 공략하고 있는 주요 키워드인 "창조" 유행의 맥락에서 번역·출간된 책이다. 창조경영을 외치던 회장님께서는 잠수 중이시지만, 창조성과 거리가 먼 대통령이 앉아 있어서 그런지 현장에서 느끼는 목마름은 더한 것 같다. 경제상황은 좋지 않고, 예전처럼 잘나가는 선진국을 열심히 벤치마킹하여 모방하고 각종 요소투입을 늘려 추격하는 식으로는 어림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너나할 것 없이 새로운 활로를 찾겠다고 혁신에 이어 창조까지 외치고 있다. 여기에 국내외 수많은 지식인들이 듣기 좋게 갖가지로 창조의 본성을 해석하고 포장하여 책으로, 강연으로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각계 경영자들을 가만히 관찰하다보면 여전히 이에 대한 인식이 피상적이거나 아예 잘못된 분들도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라면 이른바 '천재론' — 한 사람의 천재가 x명을 먹여 살린다 — 의 허상이 아닐까 싶다. 본질이 곡해된 측면도 있지만, 저 말은 천재가 창조적 드라이브를 걸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기에 '묻어 가면' 먹고 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대기업 임원들은 최고의 인재를 찾겠다고 미국의 유명 대학을 쏘다니며 유학생들에게 공짜밥을 먹여 주는 일에 많은 시간과 돈을 쏟는다. 그런데 정작 가까이에 있는 임직원들을 다독이고 그들의 창조성을 끌어내는 데는 인색하다. 힘들게 유능한 사람들을 채용해와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허드렛일만 시키다가 얼마 안 있어 사표 쓰게 만든다. 그리고는 또 낚아올 사람이 없는지 나가서 출장비와 사이닝 보너스만 축낸다. 이런 식이다 보니 창조는 그저 밖으로 황금알 낳는 닭이 어디 없나 찾아다니고, 안으로 공돌이를 더 효과적으로 쥐어짜는 방법 고민하는 식으로 전락해버렸다.
한국처럼 인구 5천만 명이나 되는 경제 구조에서 이런 인식은 치명적이다.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는 사회 인력들이 새로운 용처를 찾지 못하고 계속 생계형 자영업으로 밀려가는 구조적 악순환이 벌어진지는 이미 오래다. 그저 소수의 잘 나가는 기업들로부터의 적하효과(tricke-down effect)나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성장에 솔깃해서 MB 뽑아놓고, 바구니 달랑 짜서 만나(manna)가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모습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천재성, 창조성에 대한 재인식이 무엇보다 긴요하지 않나 싶다. 지난 번에 말콤 글래드웰의 뉴요커 誌 기사 「In the Air: Who says big ideas are rare?」를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도 글래드웰은 '대박 아이디어가 결코 드물지 않다', 즉 위대한 진보가 천재의 전유물이 아님을 꿰뚫어 보고 있다. 시대를 이끌어온 지적인 발전은 기존에 쌓여 있는 수많은 지식과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한다. 역사 속의 위대한 발명가들 가운데, 그들 누군가 한 명이 없었다고 세계가 퇴보의 늪에서 헤매고 있기라도 할까? 천재는 태초의 광막한 공간에서 뚝딱 세상을 만들어내는 (허구의) 조물주가 아니다. 주변 세계에 있는 지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형태로 체계화시키는 효율이 뛰어난, 진화의 연쇄고리를 자극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지적 능력의 한계에 갇혀서는 제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창조성에는 한계에 부딪히는 법이다. 오히려 끊임없이 외부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접촉하며 이들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더 큰 성과를 내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다. 홈지기도 별 성과랄 것은 없지만, 포럼을 운영하던 시절부터 블로깅을 하고 있는 요즘까지 이러한 다이내믹스의 덕을 톡톡히 보아왔음을 느낀다. 포럼에서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자연스레 더 많은 자료를 찾고 스스로도 공부하기 마련이다. 그런 과정에서 논의에 참여하는 다른 뛰어난 분들의 아이디어와 지적 자극이 없었다면 그만한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 『스마트 월드』의 표현대로라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아이디어 공간의 네트워크 속에서 소통하며 시너지를 끌어내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웠다고 할까.
그러나 『스마트 월드』가 이러한 창조성의 외생적 요인만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해외 서평들을 보노라면, 크게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를 번드르하게 포장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언어가 달랐다 뿐이지 이러한 창조의 속성은 여러 군데서 이미 이야기되던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홈지기의 글에 솔깃하여 이 책을 읽어보시는 분들 가운데서도, 제법 많은 수가 이런 의구심과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까 한다.
『스마트 월드』의 가치 포인트는 이를 최근의 네트워크 이론과 뇌과학, 복잡성 과학의 틀에서 이해하고 한데 묶어내려는 시도라는 점에 찾아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아이디어의 속성처럼, 하늘 아래 없던 이야기가 터져나온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과학적 지식들과 창조적 경험의 접목으로서의 가치다. 그런만큼 이 책은 창조성의 속성을 담아내는데 이용한 최근의 과학적 논의들을 함께 알아갈 때 훨씬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책이다. 일상에서 느껴왔던 사실이 일견 다른 분야에서 발전된 과학적 체계와 맞닿아 있음은 아드레날린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런 자극 하나하나가 결국 자기가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까지 지적인 호기심을 뻗고, '스마트 월드'와의 링크를 더 확장시켜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 (홈지기도 다음 번에는 이를 좀 더 포괄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추천 독서 목록을 한 번 만들어보든지 하겠다.)
결국 기업 현장이건, 교육 현장이건 평범해'보이는' 사람들에게 이런 소통의 능력을 함양시키는 데 더 많은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고 본다. 'copy & paste + 감정 배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보된 기술이 제공해주는 공간을 자신의 아이디어 네트워크로 활용하는 능력 말이다. 스스로가 그런 네트워크에 속에서 의미 있는 링크를 많이 맺고, 자신의 노력을 더해나가는 선순환이 활발히 벌어질 때, 그토록 우리를 짓누르는 '성장'의 활로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