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영웅시대의 빛과 그늘 1 - 삼국지 매니아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

억스리 2014. 7. 28. 09:49

[출처] http://blog.naver.com/hong8706/220073375835



간혹 "왜 사학과를 갔어요?"라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친한 사이이고 또 격의 없는 사이라면,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하지만.. 잘 모르는 사이에 이런 질문 받으면 "제가 삼국지 매니아라서 말입니다"라고 딱 한 마디로 끝냅니다. ​물론 이 말 뒤에 수 백단어가 뒤 따를 수 있지만, 사실 다 사족이죠. 제가 역사에 빠져든 것은 결국 '삼국지' 때문이었습니다. 삼국지 읽은 후의 좌절, 혹은 읽을게 없다는 초조함 속에서 읽기 시작한게 "소설 도꾸가와 이에야스"이구요. 그리고 이걸 다 읽은 후, 당시 "후대망"이라고 발간된 3부작의 일본 근현대사를 다룬 소설들을 다 읽었습니다. "언덕 위의 구름"의 주인공들도 좋았지만, 저는 역시 메이지 유신의 주역, 사까모토 료마에게 빠져들었습니다. 

 

대체 왜 그들은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들은 사람들을 모으고 또 대중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왜 우리는 그러지 못했는가? 뭐, 끝 없는 고민을 했죠. 그리고, 한국사를 파고 들기 시작했습니다. 예. 절망했습니다. 징비록을 읽으면서 탄금대에서 신립 장군이 패하자.. 백성들을 버리고 비오는 밤 궁궐을 버리고 북으로 도망간 선조. 그리고 평양성까지 함락 당하자 의주 넘어 중국으로 도망가려는 그와, 그를 막으려는 신하들의 설득. 왜군을 기적적으로 물리친 명장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 모양일까? 우리 한국민족은 정말 안되는 민족이 아닐까? 

 

일본의 지배를 받고 식민지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왜 지금(1970년대 중후반)은 이렇게 잘 살게 되었을까? 그건 다 박정희 대통령의 영도력 때문이고, 우리는 모두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뭐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 데모하는 형들을 엄청 싫어 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이런 인물이 어디있는데, 왜 그를 그렇게 미워하냐는 거죠. 또 정치하다보면 당연히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지 않느냐?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ㅎ

 

예. 봐주세요. 초딩 때 가진 생각입니다. ^^;;;

 

암튼.. 결국 저는 영웅사관에 빠져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인물'이 나지 않아서 이렇게 된거다. 나두 커서 '인물'이 되어 세상을 바꿔 놓겠다. 뭐 그런 생각을 가지며 꾸준히 성장했죠. 물론 대학가서 엄청 생각이 변했습니다. 맑스의 유물사관, 일본의 강좌학파, 그리고 미국 돕/스위지 논쟁 등 어마어마한 책을 읽었죠. 그리고 영웅사관에 대해 흥미를 잃었습니다. 이른바 '민중사관'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민중, 민초가 역사의 주인이지 '영웅'들은 세상을 바꾼게 아니라 지배자들만 교체했을 뿐이다. 뭐 이런 식의 생각을 가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민중이나 남한의 민중이나 모두 다 자발성을 가진, 모두 훌륭한 사람들인데.. 북한은 왜 그 모양 그꼴이 되었냐? 이 의문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씨 일가의 지배가 70년째 이어지는 동안, 그 사회는 왜 그모양 그꼴로 살아가느냐? 특히 90년대의 고난의 행군이후 먹는 문제도 해결이 불가능해졌는데, 25년째 저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예. 행동경제학에 답이 있죠. 맑시즘 마냥 '세뇌'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전체주의적 사회가 왜 형성되며, 또 조선 말기에 왜 그렇게 나라가 망하던 말든 주자학에 빠져 있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그게 생존에 유리하면, 그리고 더 나아가 '인물'을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교육적으로 제거해나가면 그렇게 되는 법입니다. 참고로 제가 인상적으로 읽었던 '영장류 게임'에 마피아 사회가 된 이탈리아 이야기가 자세히 나옵니다(책 110~113페이지).  


추천은 이탈리아 족벌주의의 핵심 도구이다. 보다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이번에도 우리는 '콘코르소' '바로네' 같은 이탈리아어 단어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콘코르소는 공립대학에서 대학생의 대학원 진학을 위해, 또는 신임 연구원이나 교수의 임용을 위해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전국적인 경쟁시험제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네'는 학생 입학, 교수 임용, 연구 기금 등의 문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학의 교수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중략)

1980년까지 이탈리아의 대학에서는 오직 한 가지 학위만을 수여했다. '로레아'라고 불린 이 학위는 학사와 석사를 합한 것과 같았다. 박사과정은 그 이후에 도입되었는데, 이 과정에 들어가려면 콘코르소라는 경쟁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이 시험에서는 응시생들의 대학 성적과 그동안의 연구 업적을 평가했고, 그 밖에 구두시험과 필기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 이 경쟁은 조작된 것이었다. 바로네(=권위 있는 교수)들은 매년 자신의 박사과정에 들어올 학생 수가 누가 콘코르소를 통과할지를 서로 담합했다. 그래서 학생들의 지원서가 접수되기도 전에 바로네들은 벌써 누가 합격할지를 결정해 놓을 정도였다. (중략)

학생들의 입학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가족이었다. 바로네들은 자기 자식이나 친척을 자신이 운영하는 박사과정에 입학시키거나 다른 바로네에게 추천했다. 바로네들은 자기 제자들에게도 입학의 문을 열어주었다. (중략) 입학지원서를 제출했으나 위의 범주에 들지 못한 학생들은 학문적 자질과 무관하게 입학이 거부되었다. 
이 책의 필자가 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지가 잘 나와 있네요. 물론 이 제도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것입니다. 일단 이 제도에 진입한 박사 과정의 졸업자들은 충성의 대가로 영구적인 자리를 얻기까지 지도교수의 그늘 아래에서 몇 년을 보내야만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 많은 성적 그리고 물적 거래가 벌어집니다. 베룰루스코니 같은 인간이 총리의 자리를 수십년간 차지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알 수 있죠. 그는 이런 사회 시스템에 '최적화'된 인물이거든요.

 

이런 사회에서 적극적인 인간, 혁신을 주도하는 인간, 그리고 대중과 떨어지려는 인간이 우세해질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사회의 '우점종'이 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조선시대 말, 그리고 지금 북한이 이탈리아 남부보다 더 심화된 상태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 사회에서 변화가 나타나려면 결국 지배층이 흔들리지 않는 한 어렵습니다. 조선 말 동학 농민전쟁도 결국은 개항이후 전통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지배층이 친일파와 친청파로 갈려 갈등을 빚었기에 발생할 수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사족이 너무 길었네용. 

 

오늘 소개하는 책 "영웅시대의 빛과 그늘"은 저 같은 흘러간 삼국지 팬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 왜 그렇게 삼국지는 인기 있는가? 그리고 제갈량은 왜 그렇게 잊혀 지지 않는가? 그게 다 시대의 요구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책 93~94페이지).  


우리가 이렇게 제갈량에게 매료된 것은 사실 송 나라 이후 역사가나 소설가들에게 의한 과대포장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물론 제갈량의 군사전략가로서의 탁월한 능력, 혹은 흔히 평가되듯 "하 은 주 삼대 이후 가장 위대한 재상"으로서의 면모가 사실과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국에서 열기를 더하는 제갈량 고향 논쟁은 허상을 쫓고 있다는 것이다. 제갈량의 고향을 둘러싼 논쟁이 붙은 이유는 원나라 때였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북방 이민족의 침략으로 화북 땅을 빼앗기고 강남 지방으로 피신했던 남송의 입장이 촉나라와 비슷해진 것을 계기로 주희를 비롯한 학자들이 촉한을 존숭하고 제갈량을 유가 이상 정치의 모럴인 왕도를 실행한 하 은 주 삼대의 명재상 강태공과 비교하는 과정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ㅎㅎㅎ 이래서 이 책이 좋습니다. 이제 어떤 철학, 어떤 이론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믿는 초딩이 아니다 보니.. 제갈량 그리고 삼국지에 대한 열광적인 관심에 대해 솔직히 이해가 안되었는데.. 이게 다 시대의 흐름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것을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래서 공부는 끝이 없다는 거 다시 한번 느낍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인생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