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역사란 무엇인가

억스리 2014. 3. 13. 12:23

[출처] http://azuremyst.tistory.com/61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H.카 (베이직북스)

 

 

■ '변호인'에 등장한 '역사란 무엇인가?'

 

 영화 '변호인'에 내가 읽은 책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그것도 읽으면 빨갱이로 잡혀가는 '불온서적'으로. 왜죠? 내 기억으로는 여기에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었는데? 더구나 이게 실화라니. -저자 에드워드가 영국의 외교관이며 책 내용이 공산주의와는 관련이 없음을, 영국 대사관에서 확인받은 내용까지 실화라고 한다!-  문제가 되는 껀덕지-윗분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가 대체 뭐였을까 하는 호기심에 다시 살펴보았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는 내용에서 잠깐 언급된 독재정치, "역사적 관찰을 바탕으로 독재정치의 수명이 짧다는 확신을 계속 지니는 정치학자는 독재자의 몰락을 돕게 될지도 모른다. - 109p" 가 문제였을까? "모든 사회는 사회적 투쟁의 무대이며, 기성 권위에 반발하고 있는 개인도, 그 권위를 지지하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그 사회의 산물이자 반영인 것이다. - 80p" 같은 내용이 대중을 자극해 반란 분자로 만들거라 여긴걸까? 그게 아니면 책에 인용된 "우연은 발전의 일반적 경향의 한 부분이 되고, 다른 형태의 우연에 의해서 상쇄된다. 구절의 주인이 마르크스라는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정말 저자 에드워드가 소련 대사관에서 일했던 이력을 오해한게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이유의 전부였던 것?

 

 아무리 꼬아 보려고 해도 문제삼을 만한 내용이 하나도 없는데.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어떤 사상을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게 아니니까. 단순히 역사라는 학문에 대한 연구 결과물일 뿐. 때문에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등의 어떠한 가치 판단도 들어있지 않다. 역사 서적이라기보다는 과학 서적에 가까울지도. 결론은 그냥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엉뚱한 책을 트집잡은 것. 아무쪼록 다시는 이런 가슴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 그래서,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라는 말은 전에도 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국사 1단원에서. 이 유명한 구절의 출처가 바로 이 책이었다니!

 

 역사에 대한 견해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일차원적인 의견이 '역사가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 개인적인 가치관을 반영하지 말고, 오로지 사건을 객관적으로 나열만 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나열할 사건을 선별하는 것만으로도 중립성이 파괴되는게 문제다어떤 일본인 역사가가 일제강점기 정신대 문제만 쏙 빼놓고 나머지는 전부 사실대로 나열했다 치자. 왜 정신대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냐고 물으면, '별로 중요한 사건이 아닌 것 같아서요.' 라고 말할거다. 그럼 그 역사가는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흑역사를 감추기 위한 의도로 그 내용을 빼버렸든, 아니면 정말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해서 빼버렸든 우리 입장에서는 다분히 편파적인 역사다. 정말로 중립적인 역사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철수가 똥 싼 내용까지 다 적어야 마땅하고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역사가의 가치관으로 편집된 결과물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모든 역사는 다 편파적이므로 역사가의 말은 아무 것도 믿어선 안 되는 걸까? 에드워드는 이에 대한 답을 다음 비유로 대신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산의 모양이 달라 보인다고 해서 산은 원래 객관적으로 형태가 없다든가, 무한한 형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역사는 역사가가 살고 있는 시대와, 그 시대와의 상호작용으로 생겨난 개인적 가치관의 영향을 받는다. 만약 지금이 독재자가 활개를 치고 다니는 시대라면 역사가는 히틀러나 스탈린 시대의 역사를 미화하여 서술할 것이다. 특정 사건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운동이 될 수도, 폭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역사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역사가 쓰여진 시점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같은 사건이라도 한 사람만의 설명만 듣고 끝내기 보다는, 여러 사람의 설명을 들어 어디까지가 비교적 객관적인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의견인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명성황후도 누군가에게는 조선의 국모, 비련의 여주인공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뒈져 마땅한 우라질 계집으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듯.

 

 

■ 반복될 듯 반복되지 않을 듯.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어떤 한 나라가 멸망하는 조건은 항상 비슷비슷했다. 지배층의 무능함, 부정부패, 불안정한 민심, 새로운 사상의 도래, 그리고 모든 것을 뒤엎을 능력이 있는 급진적 인물과 세력의 등장.

 

 하지만 어떤 때는 이 조건이 전부 발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이제는 누구라도 저 조건들의 결과가 정권 교체임을 잘 알고 있기에, 낌새가 보이면 새로운 사상의 억압과, 떠오르는 신진 세력에 대한 중상모략 등의 노력(?)으로 '반복되어 나타날 그 역사'를 저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역사가 심판할 거라며 흐름-누군가가 조작했을지도 모르는-에 그대로 몸을 맡기지 말고,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그 흐름에 참여해야 한다. 그 어떤 역사도 저절로, 우연히, 아무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역사는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 주체는 특정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나 먹고 살기 바빠서 돌아가는 사회에 전혀 관심 갖지 않았고, 깨어 있는 누군가가 알아서 다 해결해 주겠거니 했는데, 이 책, 그리고 영화 '변호인'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야겠다. 

 

 

역사란 무엇인가 - 8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까치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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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p ○ 여론에 영향력을 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편리한 사실을 선택하여 배열하는 것임을 오늘날의 저널리스트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 어떤 사실에 어떤 순서, 어떤 문맥으로 발언을 허용하느냐 하는 것도 역사가의 소임이다. ~ 카이사르가 루비콘이라는 조그만 강을 건넌 것이 역사상의 사실이라는 것은 역사가들이 자의로 정한 것이며, 그 전이나 후에 무수한 사람들이 그 강을 건넌 것은 전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것이다.

 

32p ○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선언했다. 이 말은 본래 역사란 현재의 눈을 통해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보는 것에 성립하는 것이다.

 

34p ○ 언제나 기록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굴절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책을 읽을 때 최우선 관심사는 그 책이 나타내는 사실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

 

56p ○ 역사가는 역사의 일부이다. 역사가가 서 있는 행렬 속의 지점이 과거에 대한 그의 시각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 정의는 역사가가 취급하는 시대가 자신의 시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도 똑같이 통용되는 것이다.

 

77p ○ 보통의 경우 역사가는 불만을 품은 어느 농부나 어느 마을에 관해서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수천 마을의 수백만 명의 농부가 불만을 품으면 이것은 어떤 역사가도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83p ○ 그러나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같이 기존 세력을 배경으로 위대해진 사람보다는 크롬웰이나 레닌처럼 자기들을 위대하게 만든 세력, 그 자체의 형성을 도운 위인에게서 더 높은 창조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기 시대보다 지나치게 앞서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 위대함이 알려지게 된 위인들도 잊어서는 안 된다.

 

106p ○ 어느 학교에서 두세 명의 아이가 홍역에 걸리면 그 전염병이 퍼지리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고, 만일 그것을 예언이라고 부르려 한다면 그 예언은 과거 경험의 일반화에 근거하는 것으로서 앞으로의 행동을 위해서 정당하고 유효한 지침이 된다. 그러나 홍역에 걸리는 사람이 찰스나 메리일 것이라는 개별적 예측은 불가능하다.

 

109p ○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역사의 반복이 어려운 이유의 하나는, 두 번째 상연 때는 등장인물들이 첫 공연 때의 대단원을 알고 있으므로, 그들의 행동이 이 지식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볼셰비키는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 같은 인물의 등장으로 끝난 것을 알고 있어서 자기들의 혁명도 그런 결말에 이르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 중에서 나폴레옹과 가장 유사한 트로츠키를 경계하고, 나폴레옹을 가장 닮지 않은 스탈린을 믿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반대 방향으로 행해지는 수도 있다. 경제학자는 현재의 경제 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다가오는 호황이나 불황을 예측하지만, 그의 권위가 높고 그의 이론이 유력할 경우, 그가 예측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예측된 현상의 발생에 기여한다.

 

119p ○ 개인에 대한 도덕적 단죄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집단이나 사회 전체를 위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르페브르라는 프랑스의 역사가는 프랑스 혁명을 나폴레옹 전쟁의 참상과 유혈의 책임에서 분리하고 싶어서, 그 참상과 유혈의 원인을 '그 기질이 ... 쉽게 평화와 안락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장군의 독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의 개인적 악의에 대한 단죄를 환영하고 있지만, 이것은 히틀러를 낳은 사회에 대한 역사가의 도덕적 판단이 낳은 훌륭한 대안이 되고 있다. 러시아인, 영국인, 미국인은 그들의 집단적인 범죄의 속죄양으로 스탈린, 체임벌린, 매카시를 내세우고 기꺼이 합세하여 개인적 공격을 가하고 있다. ~ 어떤 노예 소유자가 고결한 인물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은 노예제도를 비도덕적인 것으로서 비난하지 않기 위한 구실로 항상 이용되어 왔다.

 

138p ○ 경제학자 마셜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어떤 한 가지 원인의 작용만을 주목함으로써 ... 그 결과 이 원인과 섞여 있는 여러 다른 원인들을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158p ○ 오늘날 역사에 있어서 우연의 역할은 그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몹시 과장되어 있다. ~ 어떤 일을 불운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그 원인을 규명하는 귀찮은 의무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곧잘 이용되는 방법이다.

 

165p ○ 역사에서도 우리는 합리적 원인과 우연적 원인을 구별한다. 전자는 다른 나라, 다른 시대, 다른 조건에도 기능적으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유효성이 있는 일반화를 낳고, 따라서 거기서 교훈을 얻을 수가 있다.

 

181p ○ 나침반은 소중하며 참으로 없어서는 안 될 길잡이이다. 그러나 그것은 갈 길을 제시한 지도는 아니다. 역사의 내용은 우리가 그것을 경험해야만 실현될 수 있다.

 

196p ○ 때로는 패자가 궁극적인 결과에 대해서 승자와 똑같은 공헌을 한 일도 있다. 이것은 모든 역사가가 알고 있는 원칙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역사가는 승자이거나 패자이거나 뭔가를 성취한 사람들에 관심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