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화폐와 교역 - 존 로우

억스리 2009. 5. 5. 21:45

존 로우 - 화폐와 교역

 

 

최근의 금융위기를 맞아, 마치 버블 경제의 아버지처럼 묘사되고 있는 스콧틀랜드 출신 프랑스 정책가 존 로우(John Law, 1671-1729)의 저서 "화폐와 교역". 정확한 주제는 "어떤 방식으로 국가에 경제의 피인 화폐를 공급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그 답들. 1705년에 출판되었으니 무려 300년이 넘은 책인데도, 300백년이 지난 오늘도 로우가 제기했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시의 위기도 계속 반복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위기 때마다 "천재" 경제학자들과 재무장관들이 우수수 강림하셔서 "첨단" 이론과 정책들의 복음을 쏟아주신다...

 

결국 경제학적 지식은 "사기"이거나 또는 "무지"의 또 다른 옷 바꿔입기일 수 밖에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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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金)이 곧 부(富)라는 중금주의(중금주의 = 오늘날의 재벌 수출지상주의 = 배금주의 = 삼성 장학금과 야꾸자 사채에 의한 한국지배)의 유치한 금송아지 숭배를 떠나, 이미 로우는 화폐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화폐란 국가의 부채이며, 따라서 돈을 찍는 것(빚을 얻는 것)은 당연히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에 따른다는 것을 가장 현대적인 의미에서 최초로 간파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년 이자율이 5%일 때, 만일 내가 년 5백만원을 갚을 능력이 있다면 나는 1억을 빌려쓸 수 있다.

 

국가의 부채로서의 화폐의 발행 또한 당연히 국가의 수입 즉 국가가 세금을 걷어들일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한다. 인민이 피폐하거나 정부에 대한 도덕적 신뢰가 무너져서, 국가가 세금을 걷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도 화폐를 남발하면 그것은 대원군 때처럼 당백전의 운명이 된다. 화폐발행으로 야기되는 인플레이션은 도적떼를 옹호하고 대변하는 괴뢰정부에 의한 인민의 갈취이다. 국채발행에 의한 경기부양은 도적떼들에게 우리 뿐 아니라 우리 자식의 피까지 빨리게 하는 책임회피이다. 이것이 무능한 정부와 탐욕한 지배계급이라는 기생충들을 박멸하지 못한 모든 나라 모든 시대의 고민이었으며, 루이 15세(1710-1774)의 섭정 필립공의 재상(1715-1720)으로 임명된 존 로우의 딜렘마이기도 했다.

 

베르사이유 궁전만큼이나 호화로운 이름을 남긴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는 전쟁과 방탕으로 국고를 완전히 탕진하였다. 국가파산이라는 모멸을 피하기 위해 또 빚을 질 것인가. 그러나 빚이란 금융업자들의 혹독한 고리채에 국가를 방치하는 격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페르미에(fermier general - 국가를 경작하는 농부라는 뜻)라고 불리우는 징세대리인 금융업자에 의해 세정이 운영되고 있었다. 국가에 세금을 대납하는 대신 국민에게서 직접 세금을 이자까지 붙여서 징수하는 권리를 행사하는 자들이었다. (마치 19세기 청나라를 지배하게된 서양제국의 해관海關처럼) 국가기능인 징세업무를 민영화한 어처구니 없는 짓. 이러한 막장 체제 하에서 세금을 더 걷는다는 것은 국고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금융업자(financier)의 배를 채워주는 것이며, 국채를 발행한다는 것은 금융업자에게 피를 빨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진퇴양난. 금융업자들의 막강한 조직(Conseil des finances - 재정자문위)에 운명을 담보한 프랑스를 기다리는 것은 파멸 밖에 없었다.

 

이때 존 로우는 묘한 꾀를 낸다. 지금 당장 금은보화가 없더라도 국가는 미래의 수익을 근거로 하여 화폐를 발행하여 국고를 채울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 돈으로 나라의 상업과 공업을 진흥시켜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경제학에서는 처음으로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을 통일한 혁신적인 이론이었다. 그 이론 자체는 옳았다. 프랑스는 루이지안느라는 약속의 땅을 확보하고 있었다. 신대륙의 개발은 프랑스에게 많은 이익을 돌려줄 것이다. 로우는 미시시피 회사를 확장하여 세네갈과 중국의 무역까지도 장악하는 거대공룡 대인도 회사를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여 발행된 화폐(즉 국가에 이전된 부)는 생산적인 투자에 쓰인 것이 아니라, 모두 신대륙의 일확천금에 눈먼 투기로 흘러 들어 갔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금융업자들의 금고 속에 숨어있던 돈도 같이 요동을 쳤다. 결과는... 거품의 붕괴. 순진한 백성들과 그리고 귀족들 마저도 모두 금융업자의 간교한 탐욕에 희생이 되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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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존 로우의 일생은 파란만장하다. 그 이후 프랑스에 로또와 섹스의 광풍을 불러일으킬 베니스의 탕아 카사노바 만큼이나, 로우 역시 도박과 투기와 탈옥과 - 그리고 어떤 면에서 - 사기의 귀재였다. (로우도 베니스에서 빈털털이로 죽음.) 아마 그처럼 화려하며 동시에 비참해야 했던 골든보이의 모습 때문인지 로우를 직접 읽지 않은 사람들은, 또는 인용의 인용만을 비평없이 받아들인 사람들은, 로우를 "불태환화폐"의 남발로 프랑스의 경제를 파국에 몰아넣은 위조지폐범 정도로만 알고 있다.

 

로우의 화폐가 루이지안느 땅에 묻혀있는 금을 바탕으로 발행되었다느니... 월스트릿트적 MBA의 유치한 전설 속에서 다만 로우의 교훈을 대인도 회사의 자산평가의 기술적 내지 경영적 실수로만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다면 이른바 금융공학 지식의 습득이 보다 완전한 불태환지폐를 발행하게 하여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여기에서 경영의 한계를 본다. 경제는 원칙(principles)이지 기술(techniques)이 아닌 것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은 바로 정치이며, 원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은 바로 교육이다.

 

로우 "시스템"의 실패는 노동과 산업이 아니라 금융과 투기에 의한 체제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프랑스에 물려 주었다. 화폐든지 국채든지 빚을 내어서라도 경제의 추악한 목숨을 부지하려고만 하기 전에, 국민이 세금을 기꺼이 낼 수 있도록 공정한 조세제도를 먼저 확립하고, 그를 위하여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했으며, 또 그를 위하여 무엇보다 금융업자라는 기생충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처단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전국민적 도박과 투기의 중독이라는 망국병은 결코 쉽게 치유될 수 없었다. 상식과 양심을 잃어버린 국민들이 다시 각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과 많은 땀... 그리고 무엇보다도 또... 엄청난 피를 흘려야만 한다는 진리를 로우의 실패는 가르쳐주고 있다. 아마 이것이 또 21세기 우리 대한민국을 기다리는 운명의 궤적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불행하게도 탐욕한 인간들은 결코 실패로 부터 배우지 않는다. 경제의 역사란 그처럼 우둔과 아집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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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와 교역"의 첫 장은 유명한 다이아몬드와 물의 가치의 딜렘마로 부터 시작한다. 후에 아담 스미드도 로우를 인용하였다. (Nothing is more useful than water: but it will purchase scarce any thing... Wealth of Nations, Bk I, ch. iv.) 오늘날 미시경제학의 지루한 효용이론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18세기의 로우는 구차한 현학적 표현 없이도 간명하게 효용이 무엇인지 설명해준다. 이것이 고전(古典)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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