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요람기

억스리 2009. 4. 6. 23:00

객지생활을 10년 이상 하다 보면, 지치고 힘들때가 간혹 생긴다.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불안정함, 독감으로 인해 사시떨기처럼 밤을 지새울 때 등등..

특히 외로움이 엄습해 오는 밤은 감성적인 나에게 두려움 그 자체이다.

그럴때마다 문득 어린 시절의 고향의 추억을 생각하며,

내 생에 최고의 행복한 순간들을 끄집어 내어 본다.

 

 

새소리 지저귀던 푸르른 숲속길과 황금물결이 춤추는 들판, 동생과 멱감던 시내물...

삭막한 도시생활로 아파하는 가슴을 향수로 어울러 보는 것이다.

다시 돌아갈수 없는 그때를 생각하면 한없는 눈물만 흐르게 된다.

 

어린 시절 넉넉하지 못한 집안이였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경험을 부모님과 친척들이 나에게 주신 것같다.

 

중2 '요람기'를 처음 접할 때, '희비애환과 이비'를 알아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겼던 거 같다.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그 두려움은 더 커져만 간다.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 했던 분들이 하나 둘씩 사라짐에 추억도 조금씩 사라지네요.

과거에 비해 가진 것이 너무나 많은 지금이지만, 공허한 마음이 더 커져만 가는 것은 무엇일까?

 

남은 삶의 여정속에 다시 한번 '밤밭골'로 돌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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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기

       오영수

 

 

 

기차도 전기도 없었다. 라디오도 영화도 몰랐다. 그래도 소년은 마을 아이들과 함께 마냥 즐겁기만 했다.


봄이면 뻐꾸기 울음과 함께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고, 가을이면 단풍과 감이 풍성하게 익는, 물 맑고 바람 시원한 산간 마을이었다.


 먼 산골짜기에 얼룩덜룩 눈이 녹기 시작하고 흙바람이 불어오면, 양지쪽에 몰려 앉아 볕을 쬐던 마을 아이들은 들로 뒤쳐 나가 불놀이를 시작했다. 잔디가 고운 개울둑이나 논밭두렁에 불을 놓은 것을 아이들은 '들불놀이'라고 했다. 겨우내 움츠리고 무료에 지친 아이들에게, 아직도 바람끝이 매운 이른 봄, 이 들불놀이만큼 신명나는 일도 없었다.


 바람 없는 날, 불꽃은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마치 흡수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꺼멓게 번져 가는 잔디 언덕이나, 큰 먹구렁이가 굼실굼실 기어가듯 타 들어가는 논밭두렁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지랑이는 온통 현기증이 나도록 하늘로 피어올랐다.


 이런 날일수록 산에는 안개가 짙고, 산발치 초가집 삭정이 울타리에는 빨래가 유난히도 희었다.


 불탄 두렁에는 유독 살진 쑥이 뽀얗게 돋았고, 쑥을 뜯는 가시내들은 불탄 두렁으로만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성터 돌무더기 밑에 너구리굴이 있었다. 이 굴속에는 오래 전부터 늙은 너구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들불놀이를 하고 돌아갈 때에는 으레 이 너구리굴에다 불을 지폈다. 너구리가 연기를 먹고 목이 막혀서 기어 나오면 산 채로 잡자는 것이었다.


 이래서 아이들은, 마른 나무와 함께 청솔가지를 꺾어다가 불을 붙이고 눈알이 빨개지도록 불을 불었다. 그러나 너구리보다도 아이들이 먼저 연기를 먹고 물러났다. 윗도리를 벗어 부채 대신 휘둘러보기도 했으나, 너구리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너구리는 연기가 스며드니까 굴 속 깊숙이 들어가 버렸는지, 아니면 굴속이 훈훈해지니까 사지를 뻗고 늘어지게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늙은 너구리가 조무래기들에게 그리 호락호락 잡힐 것 같지가 않았다.


 진달래가 피고 잔디가 새로 돋아け?시작하면,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밤밭골로 모여들었다. 이 밤밭골은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펑퍼짐한 구릉으로서, 이 고장 아이들의 놀이터로 돼 있었다. 둘레에는 잡목과 가시 덩굴들이 얽혔지만, 등성이로는 오솔길이 나 있고, 군데군데 잔디를 곱게 입은 무덤들이 도래솔에 둘려 있었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패를 갈라 씨름도 하고 말타기도 했다. 씨름에도 지치고 말타기도 싫증이 나면, 산을 향해 고함을 질러, 돌아오는 메아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하고, 만만한 나무를 휘어잡아 까닭 없이 흔들어 보기도 했다. 잔디에 배를 깔고 삘기를 까 씹기도 하고, 왕개미를 잡아다가 손바닥에 놓고 놀려 보기도 했다.


 춘돌이라는, 김 초시네 머슴이 있었다. 나이는 아이들보다 배나 먹었어도 늘 조무래기 아이들과만 어울려 놀았다. 씨름이나 말타기를 하면 으레 이 춘돌이가 심판을 했고, 어떤 때에는 아이들에게 쇠꼴을 베개 해 놓고 저는 묏등에 번듯이 누워 있기도 했다. 어떻게 해선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춘돌이 말을 고분고분 잘 들었고, 도 잘 듣지 않으면 이 밤밭골에 오지 못하는 걸로 돼 있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물까마귀 한 마리를 잡은 적이 있었다.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는 것을 아이들이 몰아 덮친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 물까마귀를 어떻게 할까 하고 한동안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구워 먹기로 했다. 마른 나무를 주워다 쌓고 그 위에다 물까마귀를 통째로 얹어 불을 지폈다. 배를 갈라 속을 내야겠으나, 칼이 없어 그대로 굽기로 했다. 지지지, 노린내와 함께 금세 털이 홀랑 타 버리고 알몸만 남았다.


 까투리보다는 좀 작은 알몸에서는 자글자글 기름이 끓고, 구수한 냄새와 함께 살이 노르께하니 익어 가는 참인데, 이 때 춘돌이가 나무 지게를 받쳐 놓고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그게 뭐냐?"


 "물까마귀다."


 "웬 거냐?"


 "잡은 거다."


 "누가?"


 "우리가."


 춘돌이는 아이들이 터주는 자리에 비집고 들었다.


 "이거 어떻게 할거냐?"


 "먹을 거다."


 그러자 춘돌이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는 또 말했다.


 "요새 물까마귀 먹으면 어찌 되는지 알기나 하나?"


 "몰라, 어떻게 되는데?"


 "끼루룩' 하고 뛰게 돼!"


 "왜?"


 "몰라, 그건."


 "봤나?"


 "어른들이 그러더라."


 "참말?"


 "그래!"


 아이들이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말이 없자, 춘돌이는 한 꼬마에게 제 지게에서 낫을 가져오라고 했다. 꼬마는 냉큼 달려가 낫을 가져왔다. 춘돌이는 낫으로, 거의 다 익은 물까마귀 배를 갈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뱃속을 몽땅 꺼내고는 다시 불 위에 얹었다. 아이들은 그저 지켜만 볼 뿐, 어느 한 아이도 말이 없었다. 춘돌이는 불을 솟구치고 고기를 이리저리 뒤치고 하다가, 한 다리를 북 찢어 가지고 바로 옆에 있는 아이의 입에다 불쑥 디밀었다.


 "자, 먹어 봐라."


 그 아이가 뒤로 움찔 물러나며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자.


 "그러면, 너 한번 먹어 봐라."


하고, 그 다음 아이에게 또 디밀었다.


 다음 아이 역시 고개를 돌리고 물러났다.


 "그러면, 넌?"


 "싫어, 안 먹어."


 "넌?"


 "나도 안 먹어."


 "너도?"


 "그래."


 그제서야 춘돌이는


 "그러면 내가 한번 먹어 볼까."


하고는, 살점을 한 입 찢어 질겅질겅 씹다가 꿀꺽 삼켜 버렸다.


 "히야아......"


 춘돌이 눈에서 흰자위가 한편으로 몰리는 것 같았다. 조마조마하니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 중에는, 벌써 양 손에 한 짝씩 신을 벗어 쥐는 아이도 있었다.


 춘돌이는 엉거주춤하고 흰자위를 두어 번 굴리다가 갑자기 '끼루룩' 하고 껑충 솟구어 뛰었다. 아이들이 궁둥이부터 미적미적 달아날 작정을 하자, 춘돌이는 더 큰 소리로 '끼루룩 끼루룩' 하고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만 등성이를 향해 줄달음을 쳤다. 미처 따라오지 못해 우는 아이도 한둘 있었다.


 이런 뒤로 아이들은 춘돌이를 슬슬 피했으나, 춘돌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밤꽃이 피면, 보리가 누렇게 익고, 무논에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보리를 거둬들이고 모내기가 끝나면, 산도, 들도 마을도 온통 푸르름으로 싸여 버렸다. 이 푸르름 속에서 뻐꾸기는 온종일을 지겹도록 울어대고, 마을 앞 느티나무 그늘에서는 노인들이 장기판도 벌였다.


 해가 서쪽으로 한 발쯤만 기울면 아이들은 소를 앞세우고 밤밭골로 모여들었다. 마을 아이들은 소를 좋아했고, 소 뜯기기를 좋아했다.


 소년은 소가 없었다. 소 한 마리 먹이기가 소년은 늘 소원이었다.


 소는 어질고 순해서 어린아이들에게도 순순히 따르고 말도 잘 들었다. 고삐를 걷어 뿔에 감고 놓아 두면, 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제멋대로 풀을 뜯어먹었다. 실컷 풀을 먹고 난 소들은 나무 밑이나 잔디밭에 배를 깔고 졸면서 천천히 새김질을 하거나, 젖먹이를 달고 온 어미소면 혓바닥으로 새끼 몸뚱이를 핥아 주기도 했다.


 젖먹이 새끼소는 참 귀여웠다. 새끼 때 귀엽지 않은 짐승이 있을까마는, 갓난 송아지만큼 귀여운 짐승도 없을 것 같았다. 젖먹이 송아지를 안고 얼굴을 비비대 보면, 털이 비단결보다도 더 보드랍고 매끈했다. 속눈썹의 그늘이 진 둥글고 큰 눈망울은 한 오리의 불평도 의심도 없이 언제나 맑고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송아지는 개나 고양이 새끼와는 달리, 안기기만 하면 뛰쳐나가려고 잘 바동거렸다. 바동거려도 놓아 주지 않으면 '메에'하고 울기도 했다. 송아지가 '메에'하고 울면, 어미소가 '무우'하고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기도 했다. 이럴 때 제 새끼를 놓아주지 않으면, 어미소는 '푸우푸우'하고 숨결이 거칠어지고 때로는 받기도 했다.


 멧새집을 찾아 뒤지고 꿩 새끼를 쫓고 하는 동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아이들은 제각기 소를 찾아 앞세우고 마을로 내려왔다.


 고장의 여름은 어디를 봐도 산과 논과 콩밭과 수수밭뿐이었다. 이 산과 논과 콩밭과 수수밭을 동서로 갈라 남천강이 허리띠처럼 돌아가고, 강기슭으로 띄엄띄엄 원두막이 서 있었다.


 아이들은 강에서 멱을 감다가도 참외밭을 넘겨다보면서 군침도 몹시 삼켰다.


 원두막 주인에 돌래 영감이 있었다. 등 너머 돌래라는 마을에 살기 때문에 돌래 영감이라고 불렀는데, 이 영감은 가는귀가 좀 먹었었다. 이 돌래 영감은 멱감는 아이들이 영 질색이었다. 멱만 감는 게 아니라, 둑에 올라와서 외순을 다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물장구와 자맥질에 지치면 돌을 뒤져서 게나 징거미를 잡기가 일쑤였고, 그것도 싫증이 나면 살금살금 원두막 쪽으로 올라갔다.


 날이 더운 한낮이면 영감은 대개 낮잠을 잤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참외밭 가까이에 채 얼씬도 하기 전에, 영감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막을 내려왔다. 가는귀는 먹었으나, 신통하게도 잠귀는 밝았다.


 "네 요놈들, 게서 뭘 하느냐?"


 "방아깨비 잡아요!"


 "무엇이 어째?"


 아이들은 입가에 손나팔을 하고,


 "방아깨비요!"


하고 외쳤다. 영감은 그제서야 알아듣고,


 "왜 하필이면 남의 참외밭에서 방아깨비냐? 방아깨비가 어디 참외밭에만 있다더냐? 빨리 썩 나가지 못해!"


 이렇게 목에 가래가 걸리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허우적허우적 밭두렁을 돌아왔다. 그러나 아이들은 겁을 먹거나 달아나기는커녕 도리어,


 "방아깨비도 할아버지네 건가요?"


하고 약을 올렸다. 그러면 돌래 영감은


 "아니, 요놈들이 무엇이 어째고 어.....?"


하다가 그만 기침에 자지러졌다. 한동안 쿨룩거리다가 간신히 기침을 달랜 영감은


 "오냐, 어디 한 놈 잡기만 해 봐라."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듯 두 팔을 벌리고 한 발 앞까지 다가오는 영감을, 아이들을 이리 빠지고 저리 뛰고 하면서 피했다. 영감이 아무리 바둥거리고 몰아 봐도, 검잡을 것이 없는 알몸뚱이 아이놈들은 쉬 잡혀 주질 않았다. 그러다가, 혹 잡힐 만하면 모두 둑으로 몰려가 퐁당퐁당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람 한 점 없이 쨍쨍한 대낮, 원두막 너머로는 일쑤 뭉게구름이 솟아올랐다. 이런 날은 또 소나기가 오게 마련이었다.


 장독대 옆 감나무 밑에 두어 평 가량의 평상이 놓여 있었다. 여름 한낮, 그늘이 짙은 이 평상에 누워 매미 소리를 듣는 것이 퍽도 즐겁고 시원했다.


 '지이지이' 우는 왕매미, '새에릉새에릉' 우는 참매미, '시옷시오옷' 우는 무당매미, '맴맴맴맴부랑' 하고 끝을 맺는 무슨 매미......


 이런 때 누나는 수틀을 받쳐 들고 송학(松鶴)에 달을 놓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산그늘이 먼저 내려왔다.


 벼포기에 물방울이 맺히고 모깃불 타는 향긋한 풀 냄새에 쫓기듯 반딧불이 날았다.


 "누나."


 "응?"


 "박꽃은 왜 밤에만 피지?"


 "낮에는 부끄러워서 그런대."


 "왜, 뭐가 부끄러워?"


 "건 나도 몰라."


 ".....누나."


 "응?"


 "별똥, 참말 맛있나?"


 "그렇대."


 "먹어 봤나?"


 "아니."


 "우리 집에 별똥 하나 떨어지면 좋겠지?"


 "별똥은 이런 집에는 안 떨어진대."


 "왜?"


 "몰라. 먼 먼 산 너머 아무도 못 가는 그런 데만 떨어진대."


 누나 동무들이 모였다. 다림질감을 가지고도 오고, 옥수수와 감자를 가지고도 왔다. 추석 옷감 이야기며, 누구는 어디 혼사 말이 있고 누구는 시집살이가 고되다는 그런 이야기들...... 소년은 누나 옆에 누워 별똥을 세면서, 어른이 되면 별똥을 주우러 가겠다고 다짐을 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콩이 누렁누렁 익으면 고장 아이들은 콩서리를 잘 해 먹었다. 마른 나무를 주워다가 불을 피우고 콩가지를 꺾어다 올려놓으면, 콩은 '피이 피'하고 김을 뿜으며 익었다. 가지에서 콩꼬투리가 떨어져 까뭇까뭇해지면 불을 헤집고 콩을 주워 까먹었다. 참 구수하고 달큼했다. 한동안 이렇게 콩서리를 해 놓고 나면 입 가장자리는 꼭 굴뚝족제비같이 까맣게 되어 서로 바라보면서 웃어댔다.


 초가을 무렵부터 밤밭골에는 콩서리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지 않은 날이 별로 없었다. 혹 마을 어른들이 지나더라도,


 "이놈들, 한 밭에서만 너무 많이 꺾지 마라!"


할 분, 별로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른들 자신도 아이 때에는 밀서리, 콩서리를 하며 컸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콩을 푸짐하게 꺾어다 한창 콩서리를 하는 참인데, 언제 왔는지 춘돌이가, 불을 둘러싼 아이들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리를 터 주자, 춘돌이는 아무 말도 없이 비집고 들어와, 막대기로 불을 솟구고 연기를 불고 하다가, 나무를 더 주워 오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나무를 더 주워 왔을 때에는 콩이 거의 다 익어 춘돌이가 불을 헤치고 있었다. 아이들이 주워 온 마루를 팽개쳐 버리고 삥 둘러앉자, 춘돌이는 아이들에게 꼬챙이를 하나씩 가지라고 했다. 꼬챙이를 하나씩 가지니까, 이번에는 그걸로 땅바닥을 치면서 '범버꾸범버꾸'하고 소리를 내 보라고 했다.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땅을 치면서 '범버꾸범버꾸'하니까, 춘돌이는 됐다면서,


 "너희들은 그렇게 '범버꾸범버꾸' 하고 먹어라. 나는 '얌냠' 하고 먹을게."


하고 말했다. 아이들은 콩을 두어 알씩 입 속에 까 넣고는, 하라는 대로


 "범버꾸범버꾸."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꼬챙이로 땅을 두드려야지."


했다. 이래서 아이들이 또 꼬챙이로 땅을 치면서 '범버꾸범버꾸'하는 동안, 춘돌이는 '얌냠' 하고 냉큼냉큼 잘도 주워 먹었다.


 꼬챙이로 땅을 치다 보니 언제 콩을 주울 새도 없었고, 입 속에 두어 알씩 까 넣는 콩마저 '범버꾸범버꾸' 하다 보니 씹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꼬챙이로 장단을 맞추듯 땅을 치면서 '범버꾸'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큰댁 머슴에, 고향이 퍽 멀다는, 이대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대롱은 떠꺼머리총각으로, 퉁소를 잘 불었다. 더구나 억새밭인 동산에 달이 밝은 밤이면, 이대롱은 어린 과부가 나이 많은 딸을 찾아 금강산으로 간다는 곡조를 청승맞도록 구슬프게 불었다.


 미나리꽝 옆에 사는 무당네 딸 득이는, 어느 해 봄, 배꽃이 눈보라처럼 지던 날, 이대롱을 따라 먼 마을로 살림을 떠났다.


 옷 다듬는 방망이 소리가 요란하고 지붕에 서리가 하얗게 내리던 밤, 소년은 바느질에 여념이 없는 누나 옆에서 이대롱과 득이를 생각했다.


 이대롱은 마음씨가 좋았다. 일쑤, 까치집을 뒤져 까치 새끼도 내려 주고, 박달나무로 팽이도 다듬어 주었다. 얼음판에서는 지게 위에 올려 앉히고 밀어 주기도 했다.


 득이는 더 마음씨 좋고 인물도 고왔다. 언젠가 득이네 집 뒤 울타리에서 찔레순을 꺾다가 가시에 찔려 운 적이 있었다. 그때 득이는, 소년의 피나는 손가락을 제 입으로 빨고 빨고 하나가 쑥잎을 뜯어 붙이고, 저고리 안섶에서 실을 뽑아 처매 주었다. 실을 뽑는 득이 앙가슴이 눈물 속으로 보얗게 어렸었다. 소년이 눈을 깜짝여 괸 눈물을 짜 버리자, 득이는 얼굴을 붉히고 옆으로 몸을 돌려 버렸다.


 큰댁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득이 모녀는 일을 잘 왔었다.


 이대롱과 득이 소식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지붕에 박이 여물고 동산에 달이 밝은 밤이나, 배꽃이 지고 찔레가 피는 철이 되면, 소년은 불현듯 이대롱과 득이를 생각하고, 왠지 또 뭔지도 모를 아쉬움과 애상(哀想)에 잠기곤 했었다.


 높새가 불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기를 쓰고 연을 날렸다. 이 고장은 유독 연날리기가 심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연을 무척 좋아했고 많이 날렸다.


 한말로 연이라지만, 연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오리연, 문어연, 솔개연, 방구연...... 방구연에는 홍연과 상주연이 있었다. 홍연은 종이에 물을 들인 붉은 연이고, 상주연은 흰 종이 그대로 발라 만든 연이다.


 연의 재미는 역시 연싸움에 있었다. 당사에다 아교를 먹여 유릿가루를 묻히는 것을 "사(砂)를 먹인다."라고 했다. 사가 잘 먹은 실에는 손을 베이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사를 먹인 실을 얼레가 두툼하게 감고 홍연을 높직이 바람을 태워 가지고 싸움에 나설 때에는,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 같은 기세였다.


 이런 것은 주로 어른들의 연이고, 아이들은 꽁지가 긴 가오리연이나 솔개연이 고작이었다. 멀리서 싸움연이 거만하게, 또는 위풍 당당하게 싸움을 걸어오면, 아이들은 재빨리 연을 감아 버리거나 달아나 버려야 했다. 그러나 싸움연이 워낙 빨라서 미처 피하기도 전에 얽히고 보면 영락없이 떼이고 말았다.


 떼인 연이 가까운 곳에 내려앉으면 주워 오기도 하지만, 개울이나 무논에 떨어지면 그만이었다. 연을 떼이고 발버둥을 치면서 우는 아이도 많았다.


 연날리기도 정월 보름까지였다. 보름이 지난 뒤에도 연을 날리면 상놈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월 보름날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연을 날려보내기로 돼 있었다. 숯가루를 꼭 궐련 모양으로 한지(韓紙)에 말아 가지고, 연에서 두어 자 앞 실에다 매달고 꽁무니에 불을 붙여 연을 올린다. 이 때에는 실이 닿은 한 멀리 높게 올린다. 숯가루 궐련이 점점 타 들어가서 실에 닿으면, 연은 실과 얼레와 주인을 남기고 팔랑 떠나가 버린다. 어쩌면 새처럼, 어쩌면 나뭇잎처럼 까마득히 떠나가는 연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은 제 연이 멀리멀리 떠나가기를 마음 속으로 바랐다.


 언제나 가보고 싶으면서도 가보지 못하는 산과 강과 마을, 어쩌면 무지개가 선다는 늪, 이빨 없는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산다는 산 속, 집채보다도 더 큰 고래가 헤어 다닌다는 바다, 별똥이 떨어지는 어디쯤...... 소년은 멀리멀리 떠가는 연에다 수많은 꿈과 소망을 띄워 보내면서, 어느 새 인생의 희비애환(喜悲哀歡)과 이비(理非)를 아는 나이를 먹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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