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아파트 공화국 (아파트 단지의 인구밀도 설명 보완)

억스리 2009. 2. 12. 17:48

1.   ‘집’이라는 것 – 몽골의 집

2.   여러 가지 집들

3.   내 손으로 짓는 집

4.   통나무집과 소로우, 감옥과 신영복

5.   서울역의 집

6.   아파트 공화국

 

 

안녕하세요?

 

원래 말씀드렸던 것보다 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이 글은 우리 나라의 아파트에 대해 생각해보는 글입니다.

 

저는 아래의 책을 읽지 않고는 한국의 아파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봅니다.

 

아파트 공화국 - 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

 

 

 

 

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 교수가 쓴 이 책은, 어떤 사태의 본질을 외부자가 더 객관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한국인인 우리들은 물고기가 물을 느끼지 못하듯이 한국의 아파트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지리학자가 왜 한국의 아파트에 대해 연구한 것일까요?

 

그것은 한국, 특히 수도 서울의 아파트 문화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93년 서울을 처음 방문한 줄레조 교수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규모에 놀라고 또 아파트가 중산층의 주거로 환영받고 있다는 경악할 만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거기다 아파트가 부의 상징이라니그녀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주제로 한국의 아파트를 선택합니다.

 

그녀는 프랑스의 동료학자들에게 자신의 연구 대상인 한국 수도 서울의 아파트가 빈민계층의 주거형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납득시키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습니다. 파리의 아파트는 바로 그런 곳이니까요.

 

2005년 파리에서 일어난 과격한 소요사태가 외신을 타고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차량과 건물이 불타고 경찰관들이 부상을 당했던 그 소요사태가 일어난 지역이 파리의 아파트 밀집지역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주로 이민자를 위시한 빈민계층의 주거지이고 경찰관들도 들어가기를 꺼리는 곳입니다. 미국의 할렘가와 유사합니다.

 

구미의 경우 아파트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이렇습니다.

 

이처럼 전세계를 놓고 보면 우리 한국인들이 아파트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 매우 특이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인식은 막연한 짐작과 추측에 근거한 것일 뿐, 객관적인 근거를 결여한 것입니다.

 

줄레조 교수는 맨 먼저, 도대체 왜 수도 서울에 이토록 많은 아파트가 필요한가 질문합니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그것도 모르냐? 한국은 땅덩이는 좁고 인구는 많으니 어쩔 수 없이 고층아파트가 필요한 것이다, 라고 당연한 것을 묻는 어리석은 이방인 취급을 합니다.

 

이에 대해 줄레조 교수는 서울에서 단독주택 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면 오히려 인구밀도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 같은 땅 면적에 거주할 수 있는 사람수가 줄어듭니다. 즉 토지이용의 효율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지요.

 

이는 우리의 직관과는 정반대되는 사실인데, 아파트가 고층이라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 많이 높아지는 것 같지만, 층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동간 간격도 더 넓게 잡아야 하므로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 그다지 높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연하게 여기고 한번도 의문을 품어보지 않았던 전제가 일거에 무너졌으니까요.

 

최근 뉴타운 재개발 사업의 결과들이 속속 나타나면서 이 부분이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기사에서는 아파트를 대형 평형 위주로 짓기 때문이라고 원인분석을 했지만,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고 토지이용의 효율성 자체가 그다지 높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 "뉴타운사업으로 주택 절반으로 축소"

 


아파트를 대형 평형 위주로 지었기 때문에 세대수가 줄어든 것인가, 는 추론을 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파트를 짓고 나서 세대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얘기니 각 아파트를 절반으로 쪼개어 소형평수 아파트로 바꾸어도 세대수는 뉴타운 재개발 이전과 동일할 뿐이라는 얘기입니다. 즉 세대수는 늘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뉴타운 재개발 이전 상태는 단층 주택도 많았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하지 못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재개발 사업을 고층 아파트가 아니라 3층 높이 정도의 타운하우스 형태로 짓는다고만 가정해도 고층 아파트보다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 오히려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서울에 주택 공급을 늘려 주택가격을 안정시킨다는 아파트 뉴타운 사업은, 사실은 주택수를 줄이는 사업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아파트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는 인상은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좁은 국토면적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럼 왜 계속해서 지어져 온 것일까요?

 

그것은 가장 기본적으로는,

아파트라는 주택 형태가 대자본 건설사의 건축사업에 유리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주택 정도의 건축사업은 속성상 소규모 자본 건설사의 영역이지, 대자본 건설사가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눈에 보이는 경제성장 내지 발전의 상징으로 제시하기에 적합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몽골의 아파트를 보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몽골 대초원에 놓인 아파트는 생경하기만 합니다. 땅덩이는 좁고 인구는 많으니 필연적인 주거형태라고 주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대도 몽골에서도 아파트가 지어집니다.

 

중국과 몽골,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식 아파트가 지어지는 데에는 우리 나라의 책임이 큽니다.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형태인 정희 모델은 이들 각국 정부에게 더없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중국에서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 모델을 관심깊게 연구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몽골에서도 우리 나라의 경제성장 모델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몽골 대초원의 아파트입니다.

 

아파트가 권위주의 정권과 대자본 건설사의 이해관계에 일치한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처럼 대량으로 보급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요를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아파트 분양가가 자율화되기 이전에는 분양가가 주변시세에 비해 아주 저렴했습니다. 아파트 분양권이 당첨되기만 하면 바로 이 됐습니다. 또한 정부의 인플레이션 유발 정책으로 인해 아파트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습니다.

 

분양권이라는 로또에 당첨된 아파트 입주민은 순식간에 체제의 찬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체제의 수혜자인 셈이고, 아파트에 당첨되는 순간 스스로를 중간계층으로 올라섰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파트는 짓기만 하면 로또 대박을 바라는 수요가 구름처럼 몰려들게 되었고 아파트 입주민들은 체제의 찬양자가 되어 아파트 지역 = 정권의 지지기반, 이 되었습니다. 아파트를 지어 대량으로 공급하는 만큼 체제의 굳건한 지지세력이 대량 생산되는 구도가 된 것입니다. 이 구도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정권과 대자본 건설사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구도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정권과 대자본 건설사 입장에서 해피한(?) 구도가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앞 글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부동산 중심 경제성장 전략을 구사하게 되면, 국가정책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 손쉬워집니다.

 

하지만 그러한 전략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습니다. 빈부격차를 야기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은 언제나 적정한 선에서 멈추지 못하고 과도한 상승(거품)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결국 그 거품이 터졌을 경우 국가경제에 커다란 후유증을 남기게 됩니다.

 

그 외에도 수도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30년짜리 시한폭탄을 우리에게 안긴 것입니다.

 


현재 아파트 재건축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이 강남 대치동의 은마 아파트입니다. 14층 짜리 아파트인데, 그 재건축이 사업성이 적어서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재건축 아파트가 '돈이 된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준 계기가 잠실 주공아파트의 재건축이었습니다. 5층 짜리 잠실주공아파트를 평균 25층 정도로 재건축을 하니 ''이 됐겠지요. 하지만 은마아파트처럼 14층짜리만 되도 사업성이 적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향후 20, 25층짜리 아파트의 재건축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장 입에 단 곶감을 먹기에 바빠서 시한폭탄을 애써 모르는 체 덮어두고 있다고 봅니다. 터지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미래세대에게 떠넘기기만 하면 그만일까요?

 

작년 말에 잠실에 새로 입주한 재건축 단지에 지인이 살고 계셔서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신평면으로 새로 지은 아파트인지라 실내구조는 이전 아파트와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용적률입니다. 용적률 275%19~33 높이로 지어진 아파트

 

아파트 단지 안에 서면 대번에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들이 인간을 위압하는 형세입니다. 90년대 이후에 새로 짓거나 재건축이 이루어진 아파트단지들의 평균 층수는 20층이 넘습니다. 그 단지들에 들어가 보면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합니다.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인간들도 잘 자라지 못합니다.

 

이 과도한 용적률이 문제가 되어 최근 몇 년간 정부와 서울시에서는 용적률에 제한을 가했던 것입니다.

 

현 정부와 서울시에서는 재건축 규제완화라며 용적률을 최대 300%까지 완화했습니다. 용적률을 제한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용적률 300%짜리 아파트가 대량으로 들어서면 그 곳이 강남 3구이건 어디건 재앙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90년대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들의 사용연한이 다하고 재건축을 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을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는 상상이 잘 되지를 않습니다.

 

줄레조 교수는 책의 끝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맺습니다.

 

대단지 아파트는 장기적으로 관리와 유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더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도시 형태의 견고함을 취약하게 만들어 프랑스에서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거나, 한국에서처럼 일상화된 재개발의 결과를 낳는다. 주택이 유행상품처럼 취급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서울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라는 저자의 진단에 저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해답을 잘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 25층 짜리 아파트를 재건축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리모델링을 한다?

 

자산가치의 상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집주인들이 동의할까요? 특히 대단지의 집주인 모두가 한꺼번에 동의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대단지 아파트가 투자가치가 높다 하여 선호하고 있습니다. 시한폭탄이 터지고 나면 아파트가 대단지라는 사실이 재앙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리모델링 추진사례를 보면 대단지 아파트 안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산가치의 상승이 불분명하거나, 불가능함이 명백할 경우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낡은 상태로 그냥 계속 사용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가 낡아갈수록 유지보수 비용 증가로 관리비가 급증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줄레조 교수는 책에서 실제 조사한 사례를 제시합니다.

 

유지보수 비용 증가로 관리비가 급증하니 부녀회에서는 관리사무소에 비용 절감을 요구합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어쩔 수 없이 경비인력을 줄입니다. 요즘 아파트 단지는 예전에 비해 경비원의 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그 대신 CCTV를 설치하고, 출입구를 암호를 입력하는 자동개폐문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과연 이런 상태의 아파트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직까지는 사용연한이 거의 찬 낡은 아파트에서도 다들 잘 버티고 있습니다. 재건축 기대감에 따른 자산가치 상승이 생활의 불편과 관리비 부담을 보상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대감이 사라졌을 때 어떻게 될까요?

 

제 생각엔 슬럼화되는 아파트 단지들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최근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의 아파트 가격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더욱 컸고, 이에 대한 원인 분석들이 여러 가지 나왔습니다. 그 중 눈에 띄는 의견 하나가, 이들 신도시의 아파트들이 이제 낡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 신도시에 가보면 도시 전체가 낡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신도시는 서울에 비해서도 아파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도시 전체가 아파트로 이루어진 아파트 도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앞으로 노후화가 더 진행되어 재건축 연한이 찼는데도 재건축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봅니다.

 

어떤 단지는 어렵사리 재건축을 이루어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아파트인데 바로 옆 단지도 시기를 맞추어 재건축이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바로 옆 단지가 슬럼화된다면 내 단지를 재건축 한들 기대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슬럼화까지 되지는 않더라도 제 때에 재건축이 이루어지지 못해, 도시전체가 낡은 느낌 정도가 아니라 우중충한 인상을 주기 시작하면 그 자산가치가 유지되길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인간은 매우 섬세한 존재입니다. 그 느낌이 인간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아파트 공화국은 글이 길어져서 내일 한 편을 더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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