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초콜릿, 가족 그리고 경제위기

억스리 2009. 2. 15. 17:20

 

 

오늘이 발렌타인데이라고 합니다. 사실 요즘 오늘이 몇일 인지도 모르고 지나는 날들이 많아,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아침 밥상앞에서 아내가 쵸콜릿을 주더군요.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쵸콜릿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생각지도 못한 쵸콜릿을 받아 너무 기뻤습니다. 하지만 우물쭈물 머뭇거리다가 고맙다는 말도 못했네요. 하지만 워낙 우리 아이들이 쵸콜릿을 좋아하니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서 약간 실수를 했습니다. 

 

" 쵸콜릿이네.."

"회사 가져가서 먹어"

"그냥 애들 줘. 한결이 정빈이가 쵸콜릿 좋아하잖아"

 

이렇게 말하고 식탁위에 올려놓고, 고맙다는 표현을 제대로 못했지만 우리 두 아이들이 정말 쵸콜릿을 좋아하니 제가 먹는 것보다 아이들이 먹는게 낫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출근하는 길에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문자를 날려주었습니다. 순간 서운해 하는 아내가 이해가 되더라구요, 하지만 부모 마음이 아이들이 우선이니 아내도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이, 요즘 읽고 있는 책과 오버랩이 되면서 마음이 싸하더군요. 우리 어머님 생각도 나구요.

 

최근에 함민복님의 "눈물은 왜 짠가"라는 읽었습니다. 참으로 마음에 와닫는 시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그 중에 한 내용이 저를 잡아 끌었습니다. 그 내용을 오늘은 여기에 올려보겠습니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고깃국물이라도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 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 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 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고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이시를 읽으면서 저는 우리 어머니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쵸콜릿을 좋아하는 한결이와 정빈에게 주고 있는 오늘의 나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도 자식이지만, 이런 엄마의 소중한 사랑을 왜 그렇게 모르고 잘 지나치고 무심하게 지났던지...이제 제가 부모가 되어서야 조금은 알아갈 것 같습니다. 오늘 아내도 서운은 했겠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것을 자식에게 양보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조금은 위안을 삼아주지 않을까 스스로 위로를 해봅니다.

 

요즘 어렵습니다. 지갑이 닫히니 마음도 닫히고 모든게 메말라 갑니다. 거기에 흉흉한 사건도 생기고 산불도 많이 나고...이럴 때 우리가 일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를 기다리는 가족이라는 사실 하나만 기억한다면 다시 힘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두들 힘내시고....주말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결국 경기는 순환하니 조금 힘들더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여러분을 믿습니다.

 

이땅의 가장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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