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naver.com/atena02/220475404143
과연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것인가, 라는 질문은 우문이다.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이며 달러는 세계 기축 통화이다. 미국이 과거와 같은 활력을 잃었다고, 재정적자가 천문학적이라고, 심각한 실업률에 시달린다고 해도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적어도 20, 30년 안에 미국의 지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중국이 미국을 넘어선다는 주장은 단지 총 GDP에 국한해서 하는 말이다. 미국의 2014년도 1인당 GDP는 5만6천달러. 중국은 8천달러로 1/7 수준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보다 인구가 4.6배에 달하므로 만약 1만달러만 되어도 양국의 경제 규모는 얼추 비슷해진다. 그렇다고 글로벌 파워로서 중국이 미국을 능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중국이라는 사실이다. 경제 불황은 물론이고 인구마저 감소하고 있는 일본과 러시아는 더 이상 미국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유럽 국가들은 통합된 유럽을 목적으로 "유럽연합(EU)"를 창설했지만 느슨하기 짝이 없다. 또한 통합과 협력보다 자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면서 회원국끼리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인도나 브라질의 성장 또한 놀랍지만 중국에 비할 바는 아니다. 즉, 이들 국가들은 미국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지는 못하더라도 미국과 중국 양강 체제 아래 중국이 No.2로서 미국을 뒤쫓는 모습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중국은 여러모로 특이한 국가이다. 덩샤오핑 이래 마오식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철저하게 폐쇄주의를 고수하는 북한과 달리, 누구나 중국에 들어갈 수 있고 누구나 중국에서 나올 수 있다.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는 완전히 개방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소수 엘리트에 의한 독재를 고수한다. 개별 정책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어도 마오쩌둥이나 공산당 체제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은 허용하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도 없다. 한편으로, 국가 지도자들은 서구처럼 국민의 손에 의해 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들이 아니지만 나름대로 민심에 귀를 기울이며 민생에 신경쓰고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한다. 물론 중국 지도자들더러 청렴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오직 폭력적 억압과 개인적 탐욕에만 열을 올리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가나, 나이지리아같은 유사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이는 "백성이 하늘"이라는 전통적인 유교식 국정 철학 때문이다.
또한 쿠바나 이란, 카타피 시절의 리비아처럼 대다수 독재 국가들이 서방에 대한 맹목적 적개심을 부추기며 정권 유지에 악용하는 모습과는 달리, 중국은 서방과의 경제 협력을 중요시한다. "흑묘백묘"라며 돈만 벌면 최고라면서 막상 정부는 광고문구에 "럭셔리"라는 단어가 자본주의적이라는 이유로 금지하고 있다. 경제 규모는 미국 다음이고 시장경제를 추구하면서도 국영기업이 80%이고 민간의 비중은 20% 미만이다. 공산당 일당독재에다 민주주의에 대한 수준은 낮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공산당에 대한 지지도는 높다.
미국과 맞먹는 크기에 55개의 다민족 국가로 구성된 중국은 티벳과 위구르 문제처럼 일부 지역에서 분리 독립 운동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중국인"으로서의 강한 정체성과 결속력을 가지고 있다. 자국의 높아진 위상과 번영에 대한 자부심도 높다. 종교적인 갈등이나 타고난 신분으로 인한 차별도, 여성에 대한 억압도 없다.
즉, 이 거대한 나라는 서구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한가지 잣대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온갖 모순과 부조리함, 강점과 단점, 빛과 그림자로 뒤섞여 있다. 그것이 중국을 함부로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점이다.
《슈퍼차이나》는 KBS에서 올 1월에 특별 기획 7부작으로 방영했던 동명의 다큐멘타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방영 당시 다큐멘타리는 일부만 보았는데 무척 흥미롭다. 언제고 시간을 내어서 7부작을 통째로 볼 생각이다.
지난 9월 3일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미국의 편치 않은 심기를 느끼면서도 참석한 이유는 그만큼 우리 경제와 안보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승절 행사에서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이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를 기념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국의 높아진 위상을 만천하에 과시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1978년 덩샤오핑이 처음으로 개혁개방을 선언했을 때 중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1인당 GDP는 북한의 1/3도 되지 않았고 에디오피아나 우간다보다도 가난했다. 1911년 신해혁명 당시 전세계 GDP의 13%를 차지했던 중국은 1949년 국공내전 말기에는 5%로 감소했다. 이후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1970년대 중반 중국의 비중은 1% 미만이었다.
서구의 언론인들에게 "푸른 개미의 황제"라고 불리었던 마오는 인민을 총동원하여 중국을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떠들었지만 막상 그의 집권 말기에는 중국 역사상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시킨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에도 중국의 경제 성장은 여전히 낮았다. 특히 톈안먼 사건은 서구인들의 중국에 대한 불신감을 키웠다. 중국은 여전히 독재국가였다. 이는 아시아에서 "네마리 용"이라 불리며 눈부신 경제 성장을 추구하던 타이완과 대조되었다. 1990년대 초반 이 손바닥만한 섬의 GDP가 인구에서 20배, 면적에서 250배에 달하는 중국 GDP의 절반에 달했다.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은 1999년 11월 중국의 WTO 가입과 2000년 10월 부시 행정부의 영구적 최혜국 대우 선언부터였다. 미국과 일본, 많은 서방 기업들이 앞다투어 중국에 투자하고 값싼 노동력에 매료되어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시켰다. 인구 13억의 거대한 중국 시장은 대단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글로벌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년 두자리 수의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그리고 2011년 중국의 GDP는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중국은 더이상 짝퉁이나 제작하는 저기술, 저임금의 후진국이 아니다. 많은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특히 항공우주분야에서는 미국, 러시아 다음이다. 또한 정부가 자본과 자원을 독점하고 있기에 필요한 곳에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투자한다. 의사 결정도 빠르고 추진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물론 그로 인한 중복투자, 버블, 관료 시스템의 비효율성, 정경유착, 부정부패는 중국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더 무서운 것은 무한한 잠재력이다. 풍부한 지하자원, 13억에 달하는 인구, 광대한 영토는 과거 G2였던 일본이 가지지 못한 무기이다. 이 점이 "중국은 일본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구소련처럼 미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며 과도한 군비 경쟁을 벌일 필요도 없다. 국가의 모든 역량은 오직 경제 발전에 투자된다.
근래 버블로 인한 중국발 경제 위기가 우려되고 있다. 분명 중국은 내부적으로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극심한 빈부격차,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 부의 독점, 빈약한 사회 복지 인프라, 과도한 중복 투자 등 이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 정체되거나 쇠락할 것이라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진통은 겪더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아시아의 4마리 용"에서 "아시아의 4마리 호랑이"로 추락했다며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동격에 놓였던 것이 바로 우리이다. 당시 언론들은 우리에게 더이상의 성장동력은 없다, 개발도상국의 늪에 빠졌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로부터 15년 뒤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오히려 용에서 호랑이로 추락한 쪽은 타이완이 아니던가.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새로운 슈퍼파워 중국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다루고 있다. 13억의 인구가 가지는 거대한 소비 시장, 거대 공룡 중국 기업의 힘, 세계를 삼키고 있는 차이나 머니, 점차 주변 지역에 힘을 행사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 신중화주의), 거대한 대륙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 문화 강국으로서의 소프트파워, 공산당의 리더쉽 등 중국의 부상을 인구, 기업, 경제, 군사, 땅, 문화, 공산당 7가지의 요인에서 분석한다.
과거 우리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며 경계하면서도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지금은 중국이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우리는 과연 중국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시중에는 중국과 관련한 많은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TV에서는 중국을 주제로 하는 각종 다큐멘타리를 제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일반인들에게 중국은 여전히 "미개한 짱깨"이며 "한국전쟁에서 통일을 방해한 원흉"이다. 우리의 인식 수준은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소리인가.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마냥 구태의연한 인식을 고수한다면 결국 우리는 중국에게 먹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 중국은 훌륭한 시장이지만, 중국에게 우리는 그 이상으로 훌륭한 시장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 막연한 환상만 품고 중국에 들어갔던 많은 기업들이 참담하게 실패하고 돌아왔다. 반면, 중국 관광객들은 명동에서 쇼핑 관광을 하지만 정작 돈을 버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중국인들이다. 우리 시장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파고 들기 때문이다. 중국 자본은 제주도를 비롯한 부동산과 우리 기업들을 마구 사들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는데, 적은 나를 아는데 나는 적을 모른다. 그러니 어찌 이길 것인가.
상당히 재미있으면서 일반인들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쓴 책이다. 필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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