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데버러 헤이든의 <매독>

억스리 2015. 9. 7. 13:49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6338



▲ 매독
ⓒ 길산
[강동준 기자]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보들레르, 메리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 플로베르, 모파상, 빈센트 반 고흐, 니체, 오스카 와일드, 카렌 블릭센, 제임스 조이스, 아돌프 히틀러. 각 분야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으며 역사적으로 상당한 비중이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천재성, 뛰어난 재능?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의 공통점은 '매독' 환자였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매독'이라는 병은 체육 시간이나 성교육 시간에 배우는 성병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 주사 한 대 맞으면 될 정도로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병으로 배우고 있다(물론, 매독이 진행되면 무척 무서운 합병증을 유발하지만, 병 가운데 치료하지 않고 놔둬도 될 만큼 만만한 병이 얼마나 되겠는가).

매독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페니실린의 발명 덕택이었다. 그러나 페니실린이 발명되기 이전까지 유럽에서 매독은 말 그대로 커다란 재앙이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 대가로 얻어와 유럽에 퍼뜨렸다고 추측되는 매독은 근 500년 동안 전 유럽 인구의 15%가 죽을 만큼 심각한 병이었다.

그런데 위에 열거한 사람들 중에서 죽음의 결정적 원인이 매독이라고 명확하게 밝혀진 사람은 없다. 전 유럽 인구의 15%가 죽을 정도였으면 매우 흔한 병이었는데도 굳이 병명을 감추려고 애쓴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매독이 성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병이란 문란한 성생활에서 얻는 치욕적인 질병이다. 흔히 대중들은 성병에 걸린 사람을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실제로 매독은 매춘굴을 통해 여러 사람으로 퍼져나갔고 열거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매춘굴을 통해 매독을 얻었다. 영혼을 일깨우는 음악을 작곡한 위대한 작곡가가, 정열적인 삶을 그렸던 화가가, 무지한 정신에 일침을 가한 철학자가, 다른 병도 아닌 성병으로 그 생을 다했다는 것은 그렇게 밝히고 싶은 진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열거한 사람들 중에는 매독이 아닌 다른 병으로 인식된 사람도 있었다. 그 이유는 매독의 증세가 매우 복잡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증상은 매우 다양해서 당시로서는 눈에 보이는 증상만으로 매독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발열, 피부염, 부종, 돌기, 궤양, 신경마비, 정신착란 등 과연 하나의 병에서 나타나는 증세들인가 할 만큼 합병증이 매우 다양하다. 베토벤이 귀가 먹은 것도, 니체가 정신착란 증세와 더불어 전신이 마비된 것도, 슈만이 천사가 음악을 들려주는 환상을 본 것도 모두 매독의 합병증이었다.

<매독>(길산)의 저자 데버러 헤이든이 굳이 숨겨진 매독의 역사를 들추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인물들의 감춰진 어두운 이면을 파헤치고 그들의 업적을 깎아내리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다. 헤이든이 매독을 통해 당시 유럽의 사회, 역사적인 상황을 되짚는 것은 매독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또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헤이든은 책을 통해 '후세를 사는 우리에게 위대한 사람들이 매독 환자인가 아닌가는 사실 아무 의미 없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마렉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적어도 그의 음악에 관한 한 이 문제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베토벤을 괴롭혔던 병이 스피로헤타(매독의 원인균)에 의한 것이든 손거스러미로 인한 것이든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렇다. 대체 그 사람들이 앓고 있던 병이 지금의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베토벤이 매독을 앓았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의 선율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미셸 푸코가 에이즈를 앓았다고 해서 그의 빛나는 사유와 뛰어난 저작들이 빛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성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굳이 그들의 업적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헤이든은 '매독'을 매개로 당시의 유럽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사회, 문화적인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다. 평생에 걸친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말기에 '파우스트의 거래'라고 불리는 강렬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병은 19세기와 20세기의 유명인사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매독은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성병이며, 그 때문에 병에 걸린 사람들은 내부로 침잠할 수밖에 없었다. 헤이든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끊임없는 내부로의 침잠과 내면과의 대결의 결과로 역사에 남을 뛰어난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라며 헤이든은 새로운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작품을 남긴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매독은 당시를 살았던 위대한 작가들의 현실적 한계로 작용했을 것이고 그들의 작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매독이 아니었다면 베토벤의 영혼을 뒤흔드는 교향곡이, 광기어린 정열로 가득찬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니체의 예언자적 풍모가, 히틀러의 잔혹성이 발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역사에는 만일이 없다고 하지만 만일 매독이 없었다면 현재 유럽의 역사 나아가 전 세계의 역사는 지금과 완전히 다르지 않을까.

사람을 절망과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병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못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늘 유쾌한 경험만을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통은 고통 나름대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 일조를 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까? 이 책은 쓰디쓴 인생 속에서도 삶을 밝히는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았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말 못할 고통 속에서 살며 고뇌하는 안타깝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매독>의 또 다른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