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통계학의 피카소는 누구일까? -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가득찬 보석같은 책

억스리 2014. 3. 17. 11:49

[출처] http://blog.naver.com/hong8706/40208518140



오늘 소개할 책은 "통계학의 피카소는 누구일까?"입니다. 일단, 이 책은 통계학 지식을 가진 분이 읽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 통계학 지식은 고등학교 수학과정 수준입니다. 신뢰구간, 그리고 정규분포 등에 대한 기본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이 책을 읽는 데 큰 어려움 없습니다. 또 일부가 잘 이해안되더라도,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다보면.. 나중에 또 이해되는 순간을 맞게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24장 '산업계를 개조한 사나이'였습니다. 일본이 세계 2차 대전 이후의 패전에서 일어선 가장 큰 이유는 '기술력' 때문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제로센과 항공모함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무기를 생산했던 그들의 기술력이 고도성장의 가장 중요한 근거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한 군수물자 생산, 더 나아가 1970년대까지 이어진 자본주의의 황금기 등이 일본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는 '캐치업' 다시 말해 1위를 따라잡는데에는 도움되는 요인일지 모르나, 1위의 자리에 올라서는 요인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장 제로센만 해도.. 세계 2차 대전의 후기에는 미 공군의 한끼 식사거리로 전락했으며, 더 나아가 일본이 자랑하던 항공모함도 모조리 침몰했으니까 말입니다. 즉, 선진국임에는 분명하나 세계 1류는 아닌.. 그런 나라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일본은 그렇지 않죠. 얼마전 독일에서 시행된 자동차 내구성 테스트 상위권을 일본차가 휩쓸었던 것처럼, 일본제는 세계 초일류 제품입니다.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그 위상이 다소 퇴색해졌다고 하나, 부품 및 기계류에서 일본제는 여전히 세계 초일류 제품입니다. 그럼, 어떻게 일본은 이렇게 뛰어난 품질을 가진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 답은 뛰어난 통계학자 에드워즈 데밍(1900~1993년)에게 찾을 수 있습니다. 패전 직후 일본의 기업가들은 어떻게든 제품의 품질을 올려 '싸고 조잡한 제품을 만드는 나라'라는 편견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요구를 느끼고 있었죠. 그래서 이들은 선진 정보를 습득해, 어떻게든 자신들의 위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람이 바로 데밍 교수였습니다. 

 

일본 산업계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한 데밍 교수는 '일본 제품에 대한 평가를 5년 안에 바꿀 수 있다'고 말하며, 일본 산업계에게 일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단 2년 만에, 이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더 큰 충격을 주었구요. 대체 그는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요? 이 부분을 자세히 인용해보겠습니다(책 264~265 페이지 부분).

 

미국에서 열린 세미나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설계되어 있었다(그리고 안타깝게도 세미나의 참석자는 경영자가 아닌 품질관리 전문가들이었다). 대부분이 흰 구슬이고 빨간 구슬이 약간 섞인 구슬 한 통을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주면서 구슬을 잘 섞으라고 지시한다. 생산직 근로자의 주요 임무는 통 속의 구슬을 잘 섞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중략)

 

생산직 근로자가 50개의 구슬을 가져오면 품질 검사를 담당하는 직원은 빨간 구슬의 개수를 기록한다. 경영자는 품질 검사기록을 검토하고,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근로자에게 벌을 준다. (중략) 그러나 통에 들어 있는 구슬의 20%가 빨간 구슬이라면, 50개의 구슬 중에서 빨간 구슬이 3개 이하일 확률은 1% 이하이며, 6개 이하일 확률은 10%다. 따라서 생산직 근로자가 품질 기준을 만족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중략)

 

이 실험을 통해 데밍 교수가 경영자에게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경영자들이 세우는 품질 기준이 달성할 수 없는 것일 때가 많고, 품질 기준이 달성되고 있는지, 품질기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설비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회사의 경영자들은 품질 기준은 그대로 유지하고 생산직 근로자의 불만은 그대로 둔 채 단지 품질관리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속이 시원한 지적임에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왜 미국차가 안팔리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죠. 오랫동안 지속된 잦은 고장으로 인해, 품질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평가가 그렇게 나빴던 일본 제품의 평가가 올라온 이유는 품질이 꾸준히 개선되었기 때문인 것이구요.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돈을 쓰고 컨설턴트를 고용해도 품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근로자들의 태도 뿐만이 아닌, 다른 곳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특히 데밍 교수는 TQM(전사적 품질 경영)에 대해서도 아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책 265~267 페이지).

 

데밍교수는 그의 저서 '위기 탈출'에서 한 회사의 경영자에게 제출한 보고서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저생산, 고비용, 불안정한 품질 문제를 조사해 달라는 귀사의 요청에 따라 작성한 것입니다. (중략) 먼저 최고경영자가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한 항구적인 품질 개선은 결코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중략)

 

제 생각에는 경영자들이 품질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입니다. (중략) 귀사에는 품질관리라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품질관리를 위한 조직도 없고, 품질관리에 대한 이해도 규정도 없으며, 단지 비난만 있을 뿐입니다. 귀사는 불이 더 번지기 전에 소방차가 도착하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일을 철저히 하자는 표어를 곳곳에 붙여 놓았지만 그뿐입니다. 어떻게 그런 표어에 부응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일을 더 잘하면 됩니까? 자기 할일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어떻게 해야 더 잘하는지를 모르는 데 표어에 부응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원자재에 문제가 있고, 자재는 제때 공금되지 않고, 기계가 고장 났는데도 가능할까요? 또 다른 걸림돌은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있다는 경영자들의 생각입니다. 생산직 근로자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일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생산부문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공통적인 원인으로부터 발생하며, 그 원인은 경영자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데밍교수의 주장은 간명합니다. 분산분석을 사용하면 품질변동이 나타나는 원인을 '공통원인'과 '특별원인'으로 구분할 수 있고, 환경적인 부분에서 발생하는 공통원인의 발생 가능성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데밍 교수는 전체 품질 변동의 상한을 규정하고, 전체 변동이 상한을 넘어서면 제조공정을 멈추고 변동을 증가시킨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일본기업들은 이 지적에 따라 '상한'을 넘어선 품질 변동에 즉각 대응해, 공장을 세우고 문제를 찾아낸 반면.. 미국기업들은 공장 근로자들만 쪼아대는 형태를 반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미국 기업들은 아예 '판'을 바꾸는 방식(=인터넷 혁명이나 스맛폰 혁명 등)으로 일본기업에게 맞서며 결국 다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미국기업들이 품질 면에서 일본 기업들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잘 못들은 게..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ㅎ

 

암튼, 통계학이 세상을 바꾼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 덕분에 제가 몰랐던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통계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