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naver.com/pnukmed10/80136688066
유전자 결정론
당신은 유전자(또는 단백질)가 모든 생명 활동을 결정하고 관여한다고 믿는 유전자 결정론자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주장의 핵심은 생명의 책이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이다. 생명의 책은 데이터베이스 가운데 하나로 환원될 수 없다. 이제 유전체는 데이터베이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백히 하자. 또한 생물계의 기능은 유전자로 특화되지 않은 물질의 중요한 성질에 의존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이 CD안에 담긴 음악이 당신을 때로는 눈물짓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음악 그 자체 때문인가? 아니면 0과 1로 기록된 그 데이터 신호 때문인가?
환원주의자 뿐만 아니라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경계해야할 것이 있다. 한의학의 대다수가 은유를 빌어 많은 것들을 설명한다. 비단 한의학만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학문에서 은유로서 여러 가지 현상들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 책 『생명의 음악』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경계하는 대목이 나온다.
자기가 묘사하고자 하는 상황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은유는 없다. 어떤 한 국면을 강조하는 대신 다른 것을 소홀히 하게 된다. 은유를 너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적용 범위 너머로 확대 해석하여 그 은유들이 과학적으로 딱 들어맞는다고 해설할 때 문제가 생긴다. 환원주의자들이 유전자에 적용하는 은유도 이런 경향이 있다.
데니스 노블,『생명의 음악』53쪽
생명은 단백질 수프가 아니다
은유가 서로 다르고 상반되는 것 같아도, 실제로 같은 상황을 다른 측면에서 조명하는 경우도 있다. 은유 자체는 서로 모순된다고 하더라도 각각은 옳을 수 있다. 우리가 이 점을 인식하면 유익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은유가 옳으냐 하는 것은 어떤 관찰 결과가 옳으냐 하는 문제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은유는 어떤 통찰을 주는가, 얼마나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창조적인가로 평가받는데,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과학 이론과 이론의 경험적인 정확성을 판단하는 데 사용하는 표현들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과학 이론의 생존여부는 관찰을 통한 테스트 결과에 달려 있다.
또한 우리는 유전자에 대해 환원주의 레벨에서 이야기되는 많은 것들이 거의 순환논법에 가깝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유전자를 위한 분자의 성공이란 자신을 가능한 많이 복제해서 유전자 풀(pool)에서 자신의 빈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기적인’ 유전자로 편향된 레벨에서는 성공에 대해 다른 기준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많은 유전자에 동시에 적용하는 높은 레벨의 네트워크 통합적인(협력적인) 특성 같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유전자, 정확히 말하면 유전자 세트의 성공을 위한 생물학적인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의 성공 여부는 높은 레벨의 기능이 발현되는 곳에 그 유전자가 관여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 이것은 어떤 유기체가 선택 과정에서 선호되는가를 결정한다. 따라서 유전자의 성공을 설명하는 논리는 DNA 암호에 있지 않으며, 이 암호가 어떻게 해석되는가, 그리고 그 해석의 결과가 어떻게 전반적인 생명의 논리에 성공적으로 부합되느냐에 달려 있다.
데니스 노블,『생명의 음악』54~55쪽
이 책은 시스템 생물학에 관한 책이다. 환원주의의 한계가 무엇인지, 왜 시스템 생물학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래에 나온다.
시스템 생물학은 환원주의도 아니다
심장의 세동은 죽음을 불러 온다. 유전자와 단백질만 연구해서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세포만을 연구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수많은 세포들이 기관의 전체 레벨에서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토대로만 설명할 수 있다.
데니스 노블,『생명의 음악』135쪽
Middle-Out 접근법
만약 우리가 ‘유전자의 관점’에 우리 스스로를 가두어 둔다면, 결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유전자가 암호화하고 있는 단백질에 전하의 변화가 있다고 추론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치명적인 심장마비의 이유로 충분한지는 결코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더 높은 레벨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Middle-Out 접근법이 높은 레벨로 뻗어갈 때도 이해하고 계산하는 데 비슷한 경제 논리가 적용된다. 낮은 레벨의 모든 자세한 사실까지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 대신 높은 레벨에서 기능적으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면 된다.
생물학을 제외한 물리학 분야에는 이런 접근법을 오랫동안 사용한 학문 분야가 있다. 바로 공학 분야다. 공학자 역시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따라 필요한 시뮬레이션의 수준과 항목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다리를 설계하고 건설하기 위해 모든 분자들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는 없다.
공학자 역시 모듈 방식을 사용한다. 당신의 노트북 컴퓨터에 들어있는 최신 인텔 프로세서에는 2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모두 어떻게 작동하는지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아무도 알 필요가 없다. 각 모듈을 만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전체로서의 네트워크 안에서 적합하게 생산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것은 발생 과정에서 유기체가 서로 짜 맞추어지는 방법에 대한 좋은 이뷰이다. 각 개별적인 부분은 전체 시스템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자신이 할 일을 한다(Coen 1999)1.
데니스 노블,『생명의 음악』157~158쪽
우리가 생명을 이해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더 효과적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생명의 음악』이 책은 거듭 강조하지만, 시스템 생물학에 관한 책이다. 더불어 ‘생명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생명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성찰하고 통찰할 수 있게끔 해주는 책이다.
- Coen, E. (1999). The art of genes: how organisms make themselves.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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