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밑바닥 세계를 그린 오웰의 자전적 체험기
노숙자와 부랑인, 접시닦이 등 사회 최하층 사람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28년부터 1932년까지 5년여 동안의 밑바닥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그의 첫 작품이자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33년 본명인 에릭 블레어 대신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처음 출판된 이 작품은 <선데이 익스프레스> 지에 '금주의 베스트셀러'로 선정되는 등 호평을 받아 당시 무명이었던 오웰이 작가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오웰은 이 작품에서 파리 뒷골목의 싸구려 여인숙에서 머물며 경험했던 접시닦이 생활, 그리고 런던의 부랑자 생활 등을 사실적이면서 유쾌하게 그리는 한편,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당시의 억압 체제를 강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총 38장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23장까지는 파리에서의 접시닦이 생활, 이후는 런던에서의 부랑인 생활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작가는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배고픔의 고통을 겪었던 일과 노예처럼 하루 열일곱 시간 식당에서 접시닦이로 일했던 경험, 그리고 부랑자 구호소에서 잠자고 강변 둑길에서 노숙하며 겪은 자신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최하층 사람들의 삶에 대한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현실의 사건과 사실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기록하는 르포르타주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한국어판 번역본은 십여 년 전에 이미 나온 적이 있으며 오래 전에 절판된 상태이다. 이번에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 새롭게 번역하고 온전한 단행본 형태로 책을 펴낸 것은 이 작품이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IMF 이후 양산된 실직자들과 노숙자들이 최근 경기 불황으로 더욱 늘어나고 있고 사회 안전망은 여전히 미비한 시점에서 70여 년 전 세계 대공황기 사회 복지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의 서유럽 사회 밑바닥 계층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적잖은 감동과 시사점을 주고 있다. 아울러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이 꼭 한 번 읽어 봐야 할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왜 밑바닥 경험인가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후반. 식민지 미얀마에서 영국 제국의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오웰은 휴가를 얻어 영국으로 귀국한 다음 경찰 생활을 청산하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런던 동부의 빈민가를 찾아 부랑자, 걸인 등 사회 최하층의 사람들과 어울렸다. 당시 영국은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대공황의 여파로 거리에는 실직자와 부랑자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오웰은 부랑인 숙소에서 자기도 했으며, 이런 경험을 토대로 습작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28년 봄부터는 파리로 장소를 옮겨 약 18개월간 체류하게 된다. 당시 파리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사무엘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 등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오웰은 그들과 어울리지 않고 빈민가에서 습작과 신문 기고, 영어 교습 등을 하다가 급기야 무일푼으로 전락하자 접시닦이 생활을 해야 했다. 1929년 말에는 런던으로 돌아와 1931년 여름까지 이따금 부랑자 생활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작가는 20대 중반의 문학청년 시절에 사회 현실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의도에서 최하층 생활을 경험하였고, 이를 바탕으로『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집필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밑바닥 경험은 단순히 작품 집필을 위한 자료 수집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직접 체험해 보고 싶어했다.
이런 그의 밑바닥 경험의 이면에는 식민지 경찰이었다는 죄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식민 체제에의 봉사자였다는 죄의식이 심정적으로 피억압자 중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로 내려가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의 편에서 폭군들에 대항하고 싶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에서) 이것이 하층민 생활 체험을 집필하게 되는 내적인 동기가 되고, 나아가 『동물농장』과 『1984년』과 같은 작품의 사회적 상상력과 감수성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웰이 직접 겪은 밑바닥 경험
이 작품에서 오웰은 자신의 가난 경험과 밑바닥 생활 체험을 아주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식당에서 접시닦이를 하며 하루에 걷는 거리가 24킬로미터이며, 하루에 '뚜쟁이'라는 욕설을 39번 들었다고 적어놓기도 하였다. 이러한 묘사는 이 작품이 허구가 아니라 그가 직접 보고 겪은 일에 바탕한 기록이라는 점을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또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밑바닥 생활은 일부러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빚어진 것으로 묘사된다. 영어 교습 자리나 정신 박약아를 돌보는 일을 잃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일푼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가난에 대한 호기심 차원에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실존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겪은 체험담이기에 이 작품의 이야기는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주인공이 경험한 가난과 하층민의 생활은 처절한 것이었다. 남아 있던 돈을 여관에서 도난당한 채 하루 6프랑으로 살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을 때 주인공의 가난 경험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가난과의 첫 만남인데 이것이 너무나도 이상하다. 가난이라면 정말 생각도 많이 했고, 평생 두려워해왔고 조만간 닥쳐온다고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닥치고 보니 완전히 다르고 또 시시하게 다르다. 아주 단순하리라고 여겼는데 복잡하기만 하다. 끔찍하리라고 여겼는데 그저 궁상맞고 따분할 따름이다. 처음에 발견한 것은 가난의 독특한 비천함, 어쩔 수 없이 겪는 변화, 복잡스러운 쩨쩨함, 주눅들기 따위이다."( 22쪽)하루 6프랑의 생활도 끝이 나고 빈털터리가 되어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된다. "배고픔은 사람을 완전히 무척추, 무뇌 상태로 전락시키는데, 증상이 무엇보다 독감 후유증과 비슷하다. 몸속의 피가 모두 빠져나간 다음, 미지근한 물로 채워져버린 듯하기도 하다. 배고픔에 대한 주된 기억은 완전한 무기력이다. 또 침을 아주 자주 뱉게 되고, 좀매미 거품처럼 이상하게 하얗고 솜털 같은 침이 나온다."(50쪽)가까스로 호텔 식당에서 접시닦이 일을 얻어 배고픔을 면했지만,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면서 수면 부족을 호소하게 된다. "배고팠던 경험이 나에게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가르쳐주었듯이 호텔 노동은 잠의 진정한 가치를 가르쳐주었다. 잠은 단순한 신체적 필요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능적인 것이었고, 휴식이기보다 폭식이었다."(120쪽)파리에서의 고통이 배고픔과 수면 부족 등 생리적인 측면이었다면, 런던의 부랑자 생활에서 느끼는 고통은 주위의 차가운 멸시와 불편한 잠자리 문제 등 사회적인 측면과 연관되어 있다. 부랑자들이 지나가면 "여자들은 죽은 고양이를 본 듯이 혐오스럽다는 몸짓을 솔직히 드러내며 몸서리치며 피한다..... 부랑인의 옷을 입으면 적어도 첫날에는 정말 전락했다는 기분을 떨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170쪽)값싼 간이숙박소에서 한 방에 10여 명씩 자는 공동 침실 생활을 하면서 지독한 냄새, 불결한 침구들, 소음 등으로 한 시간도 잠자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이마저 돈이 떨어져 무료로 재워 주는 부랑자 구호소로 옮겨서는 동성애를 시도당하는 고약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또 숙박과 식사를 단 하루만 허용하고 다른 구호소로 이동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인해 잠자리를 찾아 헤매는 것도 또 다른 고역이었다.
개성 넘치는 인물과 유쾌한 에피소드
이 작품은 밑바닥 인생을 다룬 것이라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이상하리만큼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작가가 창조한 생동감 있는 등장 인물과 다양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전반부인 파리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보리스라는 러시아 장교 출신 웨이터이다. 작가는 보리스와 함께 배고픔을 참으며 여관 주인의 눈을 피해 옷을 전당 잡히고 이런 저런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아주 흥미롭고 박진감 넘치게 서술하고 있다. 보리스는 소총연대 대위 출신이라는 것을 늘 자랑하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군인에 관한 것이면 무조건 좋아한다. 그는 일자리를 빨리 찾아보자는 제안에 "난 더 힘든 궁지에 몰렸던 때도 수십 차례였어. 버텨내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지. 포슈의 금언을 잊지 말게. 공격하라! 공격하라! 공격하라!"(38쪽)라고 한다. 작가는 보리스와 함께 러시아 망명객을 대상으로 등쳐먹는 러시아 비밀결사와 만났던 에피소드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이밖에 파리에서 만났던 밑바닥 하층민들의 삶을 호기심 있는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뒷골목 여관 선술집의 왁자지껄한 풍경과 그곳 명물 샤를리가 들려 주는 이야기, 천역자의 성향이 있는 이탈리아 출신 식당 종업원 마리오, 공산주의자이지만 술만 취하면 격렬한 애국자로 변하는 노동자 퓌렉스, 자존심 강하고 게으른 마자르인 출신 접시닦이 쥘, 구두쇠 루콜 영감 이야기 등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런던 편에서는 부랑자들이 중심 인물로, 거기에는 전형적인 부랑자 패디와 아주 예외적인 부랑자였던 길바닥 화가 보조가 비중 있게 묘사되고 있다. 패디는 주인공이 알게 된 첫 부랑자로 아일랜드 출신 실직자이다. 그는 담배꽁초를 줍기 위해 길바닥을 훑고 지나다니며 끊임없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예수가 나폴레옹보다 먼저 태어났는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무식하고, 부랑자의 전형적인 "비천하고 질투하는 자칼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길바닥 화가 보조는 작가 스스로 각별히 존경을 표할 만큼 특이한 존재이다. 그는 미술 평론과 천문 관측에도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가난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최초의 부랑자이다. "마음만 먹으면 부자든 가난하든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어. 책 읽고 생각하는 것은 계속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하면 돼. '나는 이 안의 자유인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자신의 이마를 톡톡 쳤다.) 그러면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217쪽) 그밖에 행락객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행락객처럼 부랑자들은 인간 쓰레기라고 주장하는 부랑자의 이야기, 간이숙박소에서 만난 이튼 학교 동창생 이야기 등이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다.
밑바닥 생활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작가는 이 작품에서 접시닦이 생활과 부랑인 생활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22장, 36장).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사회 밑바닥 계층의 삶에 대한 보고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특히 밑바닥 생활에 대한 사회적 의의에 주목하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접시닦이는 노예이다. 왜 이런 노예 생활이 없어지지 않는가. 이 생활은 어떤 목적에 봉사하고, 누가 그리고 왜 이런 생활이 계속되기를 원하는가. 그는 먼저 고급 음식점에서 접시를 닦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인지 반문하다. 그런 노예 생활은 실로 무익한 것이다. 큰 호텔과 고급 음식점이 정말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고급 호텔은 200명이 정말로 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바가지를 쓰도록 100명이 악마처럼 고생하는 장소"이다.
그러면 접시닦이가 계속해서 일하기를 누가 원하는가. 물론 그것은 안락한 형편에 있는 사람이며, 무익한 노동을 영속시키려는 것은 근본적으로 대중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중은 너무 하등한 동물이어서 여가가 생기면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접시닦이의 편을 들어야 할 지적인 교양인들조차 가난과 배고픔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묵인하고 있다.
다음은 부랑인의 생활에 대한 것이다. 오웰은 먼저 부랑인에 대한 편견부터 버려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부랑인은 떠도는 생활을 좋아한다는 편견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부랑하도록 제도화 되어 있기 때문에 떠돌 뿐이다. 부랑인은 위험하다는 편견도 그렇다. 부랑인 구호소에서 수백 명의 부랑인들을 비무장한 경비원 세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온순하고 기가 꺾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부랑인은 술꾼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도, 취할 수 있을 정도로 술을 마실 만큼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진짜 부랑인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편견을 벗어나 부랑인의 생활을 보면 그것은 "유별나게 무익하고 너무나 불쾌하다." 첫째는 배고픔이다. 부랑자 구호소에서는 음식이 남아돌아도 쓰레기통에 버릴지언정 그들에게 충분히 주지 않는다. 두 번째 악폐는 여자와의 접촉이 차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남녀 부랑인의 비율이 10대 1 정도이다. 이로 인해 동성애와 강간사건이 벌어지며, 성적 굶주림은 배고픔만큼이나 남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사기를 떨어뜨린다. 마지막 세 번째 악폐는 제도로 인한 강요된 게으름이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부랑인의 고통은 접시닦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전혀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다. 감옥에서 감옥으로 걸으면서 하루 열여덟 시간 가량을 길거리와 감방 안에서 보내는 것보다 더 무익한 일상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수십 채의 집을 짓고, 도로를 만드는 데 해당하는 에너지를 단지 걸어다니는 데 소모하고 있다.
이러한 부랑자 생활을 개선하려면 우선 그들에게 일자리를 구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도 일을 위한 일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일을 주는 것이다. 그들에게 구호소에서 작은 농장이나 채소밭이라도 일구게 하여 그것으로 자기들 식량을 해결하게 하고, 더 나아가 결혼도 하고 떳떳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자존심 있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하층민들의 생활을 경험한 후에 마지막에 들려 주는 구절은 설득력이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다. 구세군에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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