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나야나 가족 만만세

억스리 2009. 9. 18. 10:41
[시/에세이] 나야나 가족 만만세(아고라를 뒤집어놓은 독한 가족 이야기)
나야나 | 큰솔 | 200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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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가 한 집에 산다

 

큰형이랑 나랑 꼭 스무 살 차이가 나니 큰형은 내게 형보다는 아버지뻘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큰형보다는 조카랑 세대 차이가 더 안 나는 관계.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랑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삼대의 모습은 애시당초 꿈꿀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늦게 혼인한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내 혼인식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삼대가 한 집에 사는 풍경은 부러울 수밖에 없다. 아니다, 솔직해지자. 삼대가 한 집에 산다고 할 때 내가 그 불편함을 견딜 수 있을까. 나 같이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 여행을 하고, 아내랑 애인 같은 데이트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몸을 놀릴 수가 있을까. 그것은 그야말로 살아가면서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자가 어쩌다 일으키는 심사가 아닐까. 홀어머니한테 한 달에 한 번 가는 것도 어떤 때는 불편하다고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 집에 삼대가 어울려 사는 모습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게는 불가능에 가깝기에 여전히 삼대가 한 집에 사는 풍경은 부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서로가 깊은 믿음을 바탕으로 지지고 볶고 하는 풍경은 얼마나 가슴 뿌듯한 감동인가. 그러나 ‘나야나’가 그리는 삼대가 함께 사는 풍경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나야나는 가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아버지, 79세, 특기는 약주 한잔 드시고 지하철 종점 가기, 담배를 72년 동안 피셨다고 함. 어머니, 71세, 특기는 아무리 화려하고 비싼 음식 재료를 쓰더라도 항상 소박한 맛을 내는 요리 솜씨. 나야나 삐돌이, 39세, 특기는 일단 삐지고 봄. 아내, 39세, 특기는 어머니의 소박한 음식 맛을 추켜세우며 점점 부엌에서 멀어지기. 아들, 13세 꼴통, 특기는 사람 속 뒤집어 놓는 언행. 딸, 11세, 특기는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일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중계하기. 소개에서 드러나듯 이들 가족은 작은 집에서 먹이사슬을 형성하며 치열하게 생존의 혈투를 벌이는데 어느 일방의 억압이 있지 않고 모두가 자유롭다.

 

저희 집은 3대가 모여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 저희 부부, 그리고 아들, 딸.

작은 집에서 6명이 모여 살다 보니 나름대로 먹이사슬(?)이 생기더군요.

세랭게티 초원에만 있는 줄 알았던.

먼저 아들. 거두절미하고 6대 독자입니다.

하지만 이 녀석에게도 천적이 있습니다. 바로 접니다.

저에게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죠. 바로 저희 아버지.

하지만 이런 분에게 맞설 수 있는 다크호스가 있으니 바로 제 아내입니다.

우리집 먹이사슬의 가장 정점은 역시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에게도 어쩔 수 없는 한 사람, 바로 우리 집의 막내, 딸아이입니다. (47 - 48쪽 발췌)

 

 

# 피어나는 웃음꽃

 

책의 어느 꼭지를 읽어도 하하하하 웃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웃기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단다. 어른으로서의 존재감, 한 가장으로서의 존재감, 뭐 이런 것 따위를 보이려고 했단다. 다음의 아고라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아고라 누적 조회 수 9백만이 되어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따져보면 10년 동안 집 한 칸 장만 못한 남편이요, 부모님께 넉넉한 용돈 한번 호기롭게 내놓지 못하는 아들이요, 초딩 남매한테 그럭저럭 아빠 소리는 듣고 있지만 그닥 존경받지도 못하는 아빠란다. 그리하여 자기 안에 쟁여놓은 쓸데없는 자괴감을 떨치려고 시작했단다. 그러나 나야나의 글을 읽으면 하하하하 웃으며 나야나에 관한 믿음을 갖게 되고 그것은 곧바로 전염이 되어 나 자신에게 관한 믿음도 살아나게 한다. 한없는 낙천성과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 그리고 무거움을 단번에 가볍게 날려버리는 유머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요약한 한 꼭지를 읽으며 확인해 보자.

 

12년 된 자가용과 12년 산 아내의 공통점

1. 소형이다

2. 유지비가 적게 든다

3. 시끄럽다

4. 12살 아들 녀석과 별로 사이가 안 좋다

5. 가끔 튜닝을 생각해본다

6. 승차감이 예전 같지 않다

7. 길거리 아무 데나 세워놔도 누구 하나 안 쳐다본다

8. 아주 가끔 단장을 시켜놓으면 예쁘다

9. 둘다 애칭이 ‘애마’다

10. 정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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