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미래를 말하다

억스리 2008. 10. 14. 12:18

노벨상도 시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올해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이 놀랍게도 부시의 저격수로 유명한 폴 크루그먼(Paul Robin Krugman)에게 돌아갔군요 ...  저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경제학자 입니다.  작금의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그에게 노벨 경제학상이 돌아간 것이 꽤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이런 와중에 금산분리 완화를 발표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경제정책은 참 ...  할 말이 없네요.

폴 크루그먼은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동시에 컬럼니스트로 현재 명문 프린스톤 대학에서 경제학과 국제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그를 누구보다 유명하게 만든 뉴욕타임즈의 컬럼니스트이기도 하지요.

크루그먼은 원래 무역이론에 대한 전문가 입니다.  그의 이론 중에서 특히 국가나 회사 간에 제조와 무역이 이루어지는 것이 규모의 경제에 의한 것이라는 모델은 매우 유명합니다.  또한, 1990년대 후반부터 전세계를 지배하다시피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크루그먼은 아시아 국가의 고정환율제를 비판하고 1997년 아시아 지역의 경제위기를 예측하기도 하였으며, 1998년 러시아 경제위기 당시 미국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온 바 있는 LTCM(Long-Term Capital Management)에 대해서도 당시 대단히 비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LTCM은 그 당시 고정환율제를 이용한 이익을 많이 내고 있었고, 월가에서도 제일 명석하고 똑똑한 두뇌집단
이 모인 곳으로 정말 잘 나가던 곳 이었습니다만, 러시아 경제위기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날리게 되지요 ...

뉴욕타임즈를 통해 부시 대통령의 저격수로 유명했던 그는 재미있게도 부시 대통령과 예일대학교 동창입니다.  박사는 MIT에서 받았고, 1982년부터 1988년까지는 레이건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지요 ... 예일대, MIT, 버클리, 런던경제대, 스탠포드와 같은 최고의 대학들을 거쳐 2000년부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그와 같이 일하기를 원했는데, 실패를 했습니다.  당시 실패를 한 이유를 민주당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크루그먼은 자신이 다혈질이고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지라 그런 종류의 일(미국 행정부에서 일하는 것)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덕택에 컬럼니스트로서 특유의 독설을 부시에게 뿜어내는 역할을 많이 했네요 ...

그의 경제이론 중에서 가장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은 아무래도 1990년대 초에 있었던 아시아 지역의 급격한 경제성장에 대한 시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경제학자들과 달리 그는 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이 새로운 형태의 경제모델에 의한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본과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서 전체적인 생산의 증가로 이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본과 노동력이 동원이 쉽지 않아지는 시점에 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이 크게 둔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한 바 있고, 이 내용은 사실 기분은 나쁘지만 현재의 상황을 뒤돌아보면 상당히 들어맞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2007년 크루그먼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미래를 말하다 (원제 - The Conscience of a Liberal)"를 출간합니다,  재미있게도 강만수 장관이 휴가 때 그의 책을 읽었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어찌 그리 생각은 반대로 가는지 ...

아래 그의 책에 담긴 내용을 중심으로 강연을 하는 유명한 동영상 강의 링크합니다.





"미래를 말하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이 책은 미국의 20세기의 부와 소득격차의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크루그먼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격차가 20세기 중반에 줄어들다가, 최근 20년 동안에는 1920년대 보다도 더 크게 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크루그먼을 포함한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격차가 기술개발과 무역에 의해 확대된 것으로 보지만, 특히 크루그먼은 정부의 정책이 1930~70년대까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에 비해, 1980년대 이후에는 성장위주로 전혀 이를 지원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특히, 현재의 부시 정권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빈부격차를 최대한 늘리는 방향의 정책만을 쓰고 있음을 통렬히 비판하기도 했지요.

크루그먼이 제시한 방법은 새로운 형태의 뉴딜(new New Deal)정책으로, 국가의 재정을 국방보다 사회안전망과 의료문제에 보다 중점을 두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해서도 크루그먼은
전체적으로 집값이 25%에서, 마이애미나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는 50% 정도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을 한 바 있고 이 예측도 어느정도 맞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노벨 경제학상을 타게 된 근거는 '비교우위론'으로 요약되는 기존 국제무역 이론에 미시경제학 분야의 '게임이론'을 접목시켜 '전략적 무역이론'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공로를 인정 받았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가 제시한 전통 경제학은 국제무역을 '비교우위'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농업과 전자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는 A라는 나라가 있다고 가정하면, 전통 경제학에서는 이 나라가 한정된 자원을 고려해 비교적 경쟁력이 더 높은 전자산업의 수출에 역량을 집중하게 되고, 그러면 농업 분야에서 '절대우위'는 없지만 '비교우위'가 있는 다른 나라들은 농업분야의 수출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며, 전통 경제학은 국제무역이 이런 식의 분업구조로 돌아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을 보면 각각의 나라들이 그 나라의 발전전략에 따라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끌고가려는 정책적 판단과 지원이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나라도 산업화 초기 경공업에서 시작하여, 자본이 축적되면서 중공업을 육성하고 첨단산업으로 발전시켜 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이 비슷한 형태의 전략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총을 들지 않았지만 돈을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입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런 현상을 국가 사이의 역동적인 '전략 게임'으로 설명했고 기존 경제이론의 '비교우위론'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크루그먼의 이론이 가치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특정 국가와 특정 도시는 갈수록 부유해지고, '주변부'의 국가와 지역들은 날로 빈곤해지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결국 전세계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예측했지요.

마지막으로 2008년 이코노믹 리뷰에 실렸던 그의 어록을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 Those tax cuts, rather than the spending binge, are the primary cause of the (federal) deficit.
감세가 바로 재정 적자의 주요 원인이다. 흥청망청한 정부 지출이 원인이라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다.

※ Unsustainable situations usually go on longer than most economists think possible. But they always end, and when they do, it's often painful.
지속가능하지 않아 보이는 상황이 때로는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간다. 하지만 종말은 반드시 오게 마련이고, 고통을 초래한다.

※ The United States in particular and the West in general should be feeling a little embarrassed about all that lecturing we did to the Third World.
미국을 비롯한 유럽은 지금까지 제 3세계를 상대로 제시해온 가르침에 당혹감을 느껴야 한다.

※ (He is) the anti-change candidate.
(통념과 달리) 오바마는 변화에 저항하는 후보이다.

※ Social Security is a social insurance program? It is not designed to be the same thing as a 401(k).
사회보장제도는 사회보험프로그램인가. 그것은 퇴직연금과 같은 용도로 디자인되지는 않았다.

※ Can we break the machine that is imposing right-wing radicalism on the United States?
우리가 과연 우파 급진주의를 미국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부숴버릴 수 있을까.
 
진정한 경제 전문가가 행하는 방식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데 관한 이야기를 갖고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세계를 단순화시켜 복잡성을 배제하는데 도움을 주는 표상의 형태를 띠는 모델입니다.  일단 모델이 있으면 그것이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으로 잘 들어 맞으면, 그것이 내포하는 중요성은 어떠한 것인지 또 그 반대양상은 어떠한 것인지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정책적 견해가 모델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며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 저서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154쪽에서 발췌

대압착시대의 가장 큰 희생자는 부자였으나 육체노동자, 그 중에서도 산업노동자들은 가장 큰 수혜자였다. 대압착시대 이후 194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에 이르는 30년은 육체노동자들의 황금기였다.
1950년대 말 고졸학력의 미국인들은 물가상승폭을 고려할 때 오늘날 비슷한 조건의 노동자들과 비슷한 임금을 받았다. 그들의 지위도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아주 좋은 직장을 가진 육체노동자들은 대졸학력 전문직 종사자와 거의 같거나 더 높은 보수를 받았다.  육체노동자들이 1920년대보다 195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가장 큰 이유는 노동조합의 부활에서 찾을 수 있다.
- 저서 '미래를 말하다' 69쪽에서 발췌

현실적으로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 불평등은 단순히 부러움과 수치심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들의 생활방식에 실제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수백만의 중산층 가정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형편보다 무리해서 집을 사고, 갚을 수 있는 능력보다 많은 빚을 지는 것은 큰 문제다.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일류 학군들은 줄고 있으며, 부근의 집값은 점점 더 오르는 추세다. 이들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면 자녀의 미래는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저서 '미래를 말하다' 311쪽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