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도시의 흉년> - 박완서

억스리 2016. 3. 13. 20:52

[출처] http://blog.naver.com/yoonseo9501/220287667814




작가
 
박완서
 
출판
 
세계사
 
발매
 
2002.11.30




 수연은 쌍둥이 오빠 수빈과 다르게 적극적인 인물이다. 할머니는 그런 수연을 못마땅해하고 쌍둥이는 상피가 붙는다며 수빈과 떼어놓는다. 한편 수연의 엄마는 전쟁 통에 처녀를 팔아 큰 돈을 번다. 엄마의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 집안 형편이 좋아지자 친정에서도 엄마의 기세가 등등해진다. 전쟁 이후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너무도 바뀌어 버린 집안 분위기에 흠칫하지만 곧 아내가 벌어주는 돈을 물 쓰듯 쓰며 그 생활에 적응하게 된다.

 그러나 아내가 벌어오는 돈은 아내의 기세까지 올려주는 바람에 아버지의 권위는 한없이 추락했다. 수연은 자신이 으레 겪어오던 외로움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 어딘가에서 느낀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낀다.


 다만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엄마보다 유창한 말을 아버지가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으로서가 아니라 너무도 기우는 약한 자에 대한 동정이었다.

 수빈과 수연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 태도와 똑같이 변해간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엄마도 내심 차별을 하고 있었다. 애당초 이모네에서 데려온 건 수연이 아니라 시어머니에 의해 무너진 자기의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수연은 차츰 '어른'의 진실을 깨달아가며 다시 외로웠던 시간들로 돌아간다.

 나는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랐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이 뭔지에 대해선 알고 있지 못했다. 그걸 나 혼자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홀로 되고 싶었다. 할머니의 악담이 불길한 전설처럼 서린 고장에서 우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이렇게 내가 꿈꾸는 자립은 조금도 허황하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내 분수에 맞는 소박한 것이었고, 내가 행복에 의지를 버리지 않는 한 마땅히 감당해야 할 만한 과정이었다.

 수연은 깊은 외로움에서 빠져나오길 꿈꾼다. 그녀는 진심어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다. 가족의 관심은 언제나 오빠 수빈이었고, 그녀는 수빈에게 부끄러운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럴수록 수연은 자기 스스로를 구속하고 그 속에서 자립을 갈망한다.




 <도시의 흉년>속 인물들은 언제나 양면성을 보여준다.

 할머니는 악착같이 수연을 떼어 놓으려 하는데, 젊은 시절 남편이 쌍둥이 여자형제와 근친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엄마의 돈으로 일도 안하고 호의호식 하는 듯 보이지만 아내의 기에 눌려 겉도는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어머니는 돈 버는 재미에 사는 것 같이 보이지만, 아버지의 숨겨둔 부인에게 밀려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언니 수희는 하고싶은 것 다 하고 사는 얌체로 보이지만, 남의 시선을 최우선으로 놓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갖지 못하고 살아간다. 수빈은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언제나 우유부단하게 휘둘린다.

 반면 수연은 거의 이중성에 가까운 듯하다. 엄마 덕분에 또래보다 금전전으로 여유롭게 살아온 수연은 물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고 산다. 마치 할머니의 저주로부터 피신처를 찾은 것처럼, 보상을 받는 것처럼 그렇게 돈을 쓰고 싶은 데로 쓴다. 그러나 수연은 물질과 쾌락에 빠져 살면서도 늘 자립을 갈망한다. 나는 이런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연민을 넘어 실소까지 머금었다. 어디까지 얻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가?

 '도시'라는 말을 들으면 회색이 떠오른다. 대기오염때문에 탁한 회색 하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도시의 흉년>속 '도시'도 회색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속 '도시'는 흑도 백도 아닌 모호한 경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도시의 이미지들을 이 책에선 구체적인 인물들을 통해 보여 준다. 그런 인물들을 보며 나의 양면성은 혹은 이중성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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