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압축성장의 고고학 - 대학졸업자들이 부딪힌 벽의 정체는?

억스리 2015. 12. 23. 21:11

[출처] http://blog.naver.com/hong8706/220574518296



예전에 아주 흥미로운 보고서 한편("한국은 인적자본 일등국가인가?")을 소개한 적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저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바 있습니다. 일단 한국에서는 대학 졸업장의 임금 프리미엄, 다시 말해 대학 졸업장을 취득하지 못한 사람에 비해 임금을 더 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일부 대학 졸업자들은 고졸자들에 비해 임금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럼 모든 대학 졸업자들이 다 임금 프리미엄을 받지 못하는가?


그건 아니었습니다. 수능성적 상위 8% 이내의 학생들이 진학하는 수도권 소재 일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확실히 대졸 임금프리미엄을 수취했습니다. 그러나 아래의 '그림 3b'에 나타난 것처럼, 전체 대졸자들의 임금 프리미엄이 본격 하락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의 일이었으며.. 특히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더욱 그 속도가 가팔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은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중학생 아들을 둔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못할 대화를 많이 접하게 되죠. 아이가 공부에 뜻이 없다며 한탄하는 선배들 조차, 아이를 대학에는 굳이 보내려 합니다. 대학진학률이 70%가 넘는 상황에서.. 대학 졸업의 임금프리미엄이 전무한 상황인데 왜 우리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려는 것일까요?


오늘 소개하는 책 "압축성장의 고고학"의 3장에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책의 100~101 페이지 부분을 보면, 학력에 대한 일종의 '신앙'이 생긴 기원을 알 수 있습니다. 


1950년대 말 즈음, 한국 사회에서는 태생에 기반을 둔 우월적 지위와 특권을 지닌 구시대의 상층 계급이 사라지고 유동적이고 계층 이동성이 높은 사회구조를 가진 매우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해방 후의 정치적 혼란과 전쟁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기억일 수 있지만, 예외적 수준의 평등 윤리와 강렬한 사회적 계층 이동의 욕구를 가진 사회를 만들어낸 한국 특유의 역사적 경험은 전통적인 지배계급이 사라진 상태에서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들을 가난하지만 계층 이동 경쟁의 평등한 출발점에 설 수 있게 했다.


이후 한국 사회는 학력이 지위 상승의 지배적 통로라는 대중적 지각을 통해 강렬한 교육 경쟁에 빠져들고 이 강렬한 교육 경쟁은 지위 경쟁의 양상을 보이면서 급격한 학교의 팽창을 가져왔다. (중략) 한국 사회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1990년대까지의 연구들이 지적하고 있듯, 중산층 이상으로 계층 상승 이동을 이룰 수 있는 유력한 통로였다. 

'집단 기억'이 나왔군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출세하고 사회적 지위를 높여가는 과정을 목격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함께,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타기 위해 경쟁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특히 친일파의 청산에 실패한 것도 이런 경향을 강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책 107 페이지).


식민지 체제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해방 후 한국에서 새로운 지배층으로 자리잡아 가는 것을 본 한국인들은 일제 강점기의 차별적 교육체계가 사라지자 폭발적으로 교육열을 분출했고, 이는 고등교육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해방 이후 1961년까지 폭발적인 양적팽창이 일어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당시 고등교육의 양적 팽창은 1954년을 기준으로 총인구 대비 대학생 비율(0.38%)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대학민국보다 소득이 높은 다수의 국가들보다 현저하게 높은 것이었다. 

뭐, 유교와 과거의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케든 벼슬자리 하나 얻는게 일가를 일으켜세울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었던 전근대의 경험에, 식민지 시절 고등교육을 받은 소수가 잘 나가니.. 사람들이 모두 신분 획득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지위 획득 경쟁은 한국경제에 큰 기여를 한게 사실입니다.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인. 바로 괜찮은 노동력을 기업들이 쉽게 획득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도 여럿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의 연대 혹은 공동체를 파괴했거든요(책 119 페이지).


한국은 식민지 경험과 전쟁을 겪으면서 1950년대 말에 이르러 모두가 가난하지만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을 통해 얻어진 평등주의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연대(=공동체적인 협력)의 자원을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평등주의는 '나도 노력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는 차원의 평등주의인 것이다. 

즉 패자에게 전혀 자비가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자기계발서가 잘 팔리는 이유가 이런데 있겠죠. 실패자에게 가해지는 '노~오력 부족!'의 레떼르는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유구한 전통을 지니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럼.. 이런 지옥을 향한 지위경쟁이 언제까지나 지속될까요? 그에 대해 3장의 저자인 김두환 교수는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의견을 피력합니다(책 107 페이지).


4년제 대학 진학률이 급격하게 높아진 시기는 베이비 부머(1955~1963년생)의 자녀들인 에코 세대(1979~1992년생)가 대학에 진학한 기간이다. (중략)


에코부머가 대학에 진학한 시기가 1997년 경제위기에 이은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위험에 노출된 변화의 시기였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양질의 프로그램을 가진 소규모 특성화 대학의 설립'을 유도한다는 목적을 가진 김영삼정부의 대학 설립 준칙주의와 대학 정원 자율화 정책의 실패로 노동시장에서 푸대접을 받은 에코부머들은 인구학적 불운까지 겹쳐 참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들이 2015년 현재 34세 이하 청년들이다. 

예. 몇년 안남았군요. 


한국에 가장 저주받은 세대가 에코부머 900만 명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세대이자, 또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대는 베이비부모의 잘못된 시대 판단. 즉 자기들처럼 대학 보내면 알아서 밥그릇 찾아먹을 것이라고 생각해, 자녀들을 대학에 보냈기에 '잘못된 교육투자'가 집중되었고.. 여기에 대학정원이 크게 확대된 영향으로 노동시장이 필요로 하는 이상 수준으로 대졸자의 공급이 이뤄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에코부머의 대학 진학이 마무리된 지금. 이제 앞으로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하겠습니다. 일단 대학에 입학할 학령인구의 감소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당장 군입대 연령인구의 감소로 모병제의 가능성마저 거론되는 상황이죠.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입학정원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나아가 노동력의 절대적인 공급이 감소하면, 최근 일본처럼 대졸자들이 여러 곳에 취직한 상태에서 협상하는 날이 펼쳐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결국, 현재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다양한 요인이 얽혀 만들어낸 비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이런 세상의 변화가 참으로 무섭고.. 또 앞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되네요. 


참고해 읽어볼만한 보고서 몇개 링크 걸어봅니다. 


한국의 사회동향 2015 

http://kostat.go.kr/portal/korea/kor_nw/2/1/index.board?bmode=read&aSeq=350293

한국은 인적자본 1등 국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