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가난한 집 맏아들 - 한국의 대기업은 국민에게 어떤 의무를 지고 있나?

억스리 2012. 3. 14. 10:22

[출처] http://estin.net/forum/book/id/1949

 

(유진수 지음 | 한국경제신문사 | 2012년 01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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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참고만 하세요)

1. 소득 분배, 혹은 사회 양극화 문제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별 다섯 개(★★★★★)].
2. 쉽게 쓰여진 술술 읽히는 책을 선호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별 다섯 개(★★★★★)].
3. '정의' 혹은 '공정성' 등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도 읽으시면 속이 시원할 것입니다[별 다섯 개(★★★★★)].
4. 자수성가한 사람은 자신의 돈을 맘대로 써도 된다는 생각 가진 분들은 안 읽으시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듯 합니다[별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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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저는 한국경제신문에서 나온 책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기업 편향이랄까 혹은 신자유주의적인 냄새를 많이 맡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이런 편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부잣집에 태어났다면 모두 교육 받고 또 교육을 이용해 성공적인 미래를 살 수 있을 것 같은 삼형제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삼형제가 태어난 집이 가난해, 한 명만 고등교육을 시킬 수 있다면?  그리고 또 그 기회를 맏아들에게만 부여하고, 맏아들이 (본인의 노력과 교육의 기회 등에 힘입어) 승승가도를 달리는 반면 나머지 두 명의 아들은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맏아들은 다른 가족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야할까요?
 
금방 이 비유가 한국의 기업과 국민, 그리고 한국과 개도국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의 저자, 유진수 교수님이 모 일간지에 쓴 기고문을 통해 이 부분을 설명해보겠습니다(아래 따옴표로 표시된 글은 조선 비즈 2012년 2월 15일자 기사를 약간 축약한 것입니다).
 
"얼핏 보면, 맏아들이 부모로부터 대학등록금을 지원받았다는 점에서 4년간 받은 대학등록금만큼을 보상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금액을 계산해 보기 위해 다소 엉뚱한 이야기 한토막을 꺼내보려 한다.
 
대학에 가는 권리(특혜)를 놓고 세 자녀가 경매를 벌인다고 가정해 보자. 경매물품은 대학에 갈 권리이고, 경매 출품자는 가난한 부모이다. 가난한 부모가 그냥 맏아들을 대학에 보내는 대신, 대학에 갈 자녀를 경매를 통해 결정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은 경매가 자원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배분하는 대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매에서의 결과를 분석하면, 혼자 대학에 간 맏아들이 부모로부터 받은 특혜의 정도를 알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동생들이 입은 손해의 정도도 알 수 있게 되고, 손해의 정도를 알게 되면 맏아들이 보상을 해야 하는 정도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계산법은 이렇다.

'맏아들은 혼자 대학에 가서 50억원을 모았고, 대학에 가지 못한 둘째와 셋째의 재산은 각각 2억원과 3억원이 되었다. 만약에 둘째가 맏아들 대신 대학에 갔었더라면 10억원을 모았을 것이고, 그 경우 맏아들과 셋째의 재산은 각각 3억원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에 셋째가 맏아들 대신 대학에 갔더라면 30억원을 모았을 것이고, 그 경우 맏아들과 둘째의 재산은 각각 3억원과 2억원이 되었을 것이다.'
 
맏아들이 가족들에게 보상을 해야 하는 금액을 이론적으로 계산해 보기 위해 각각의 자녀들이 대학에 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하에 둘째는 대학에 갔을 경우, 그러지 못했을 경우보다 8억원을 더 벌 수 있다. 따라서 둘째는 8억원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을 받아야 이득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둘째가 경매에서 8억원 이상으로 가격을 부르지 않는 이유가 된다.
 
셋째는 대학에 갔을 경우, 그러지 못했을 경우보다 27억원을 더 벌 수 있다. 따라서 셋째는 27억원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을 받아야 이득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셋째가 경매에서 27억원 이상으로 가격을 부르지 않는 이유가 된다.
 
반면, 맏아들은 대학에 갔을 경우, 그러지 못했을 경우보다 47억원을 더 벌 수 있다. 따라서 맏아들은 27억원 또는 그보다 다소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이 경매에서 대학에 갈 권리를 낙찰받는 것은 맏아들이 된다. 그리고 낙찰가격은 27억원이 된다. 동생들이 더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는데, 맏아들 자신이 27억원보다 높은 가격을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의미심장한 결론이 도출됩니다.  맏아들은 혼자 고등교육을 받는 기회를 독점하며 다른 형제의 기회를 박탈한 만큼, 27억 이상의 돈을 가족들에게 보상해야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나라의 기업들에게 돌려보겠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맏아들을 대학보내는 것 이상의 희생을 국민들이 기업들에게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인용해보겠습니다(책 105∼106페이지 부분).
 
"광복직후 이승만 정부(=가난한 집의 가장)는 기업들에게 어떤 혜택을 제공했는가?  
 
첫째, 광복직후 일제의 귀속재산을 13개 기업에게 나눠주었는데, 불하가격의 10%만 현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15년에 걸쳐 무이자로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격심한 인플레를 경험하던 광복 직후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 기업들은 재산을 무상으로 횝득한 것이나 다름 없다.

둘째, 외화를 배정하는 과정에도 특혜가 존재했다.  법정 환율이 암시장 환율의 1/2∼1/4 수준인 상황에서 외화를 도입한 기업은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거의 2배 이상의 엄청난 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셋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이자율을 낮추었기에, 실질금리(명목금리-소비자물가 상승률)는 1946∼1955년까지 항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정부 수립의 초기에 제공된 특혜만 이정도네요.  1962년 들어선 박정희 정부가 기업들에게 제공한 특혜는 이승만 정부의 수준을 훨씬 넘어섭니다(책 107∼109페이지).
 
"박정희 정부의 선택을 받은 기업들은 다양한 특혜적 지원을 받았다.
 
첫째, 과열경쟁에 따른 도산을 막기 휘해 투자 인허가 제도를 선택했다.  따라서 규제의 보호를 받은 기업들은 독점적인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둘째, 금융기관의 자금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특정 기업에게 커다란 혜택을 주었다.  당시 국내 금리가 2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차관의 이자는 5% 수준이었다.  1966년 한 해에만 해도  3개 그룹이 1억 달러 이상의 차관을 배분 받았는데, 이로 인한 차익은 엄청난 것이었다.
 
셋째, 정부는 특정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이나 기술을 도입하는 데도 관여했다.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를 지어 큰 성공을 거뒀지만, 정주영 회장은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내가 도와준다고 해도 못해?'하고 노려보기에 '예.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해 버렸어.  그래서 현대 중공업을 하게 된 것이오."
 
넷째,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채택한 정부는 수출기업에 대해 다양한 세제 감면, 원자재 및 자본설비에 대한 수입관세 면제, 특혜 융자등을 제공했다.
 
다섯째, 정부는 노동조합을 노골적으로 탄압해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근로조건의 향상을 사실상 억제했다.
 
여섯째, 시장개방을 늦춤으로써 외국기업과의 경쟁으로부터 국내 기업을 보호했다."
 
가난한 집에서 맏아들에게 제공한 고등교육의 기회, 그 이상의 특혜를 배풀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기업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치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기회를 다른 사람(다른 형제)에게 제공할 수 있었는데도 그에게 지원이 집중된 것.  이것이 그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 역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무를 다해햐할까요?  첫 번째로 주주와 근로자, 채권자 등 이해관계를 존중하고 법규를 준수하는 아주 기본적인 의무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른 구성원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합니다.  즉 성공한 맏아들이 돌아간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며, 혹은 조카들을 도와주고 또 가난한 형제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을 마땅히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책이 나오고, 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어떤 것인가를 따져보면서부터 국민 그리고 기업가의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해 봅니다.   끝으로 매우 즐거운 경험을 갖게 해주신, 한국경제신문의 에디터와 기획자 그리고 숙명여대 유진수 교수님에게 감사의 맘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