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살아야 하는 이유 - 일회성, 유일성

억스리 2019. 3. 11. 17:02

[출처] https://blog.naver.com/ljb1202/221461688738


생각하기도 끔찍하지만 사랑하는 하나 뿐인 아들이 사망했다. 그것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과연 이럴 때 나라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가정조차도 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살아야 하는 이유> 저자인 강상중에게 일어났다. 가슴에 묻을 수도 있지만 글 쓰는 사람에게는 이럴 때 숙명처럼 써야한다. 스스로 글을 써서 벗어나지 못하면 평생 치유되지 못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무척이나 좋기도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그 부분에 있어 저자는 자신의 속마음은 숨긴 채 꽤 객관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꼭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죽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지만. 내 인생을 내가 마음대로 어떤 선택을 하든 누가 무엇이라 할 수는 없다. 이런 면에 있어 책임 질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 선택의 자유로움이 있다. 나 혼자라면 차라리 홀가분할 수 있다. 죽음을 택하는 것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무책임하다고 본다. 자신은 그걸로 끝이지만 남는 사람들에게 무게감을 견뎌야 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남은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이 감당할 짐을 생각하면 도저히 선택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어렵고 힘든 이야기할 필요없이 자살을 선택하지 못한다. 무척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지만 내가 갖고 있는 그 책임감마저 저버리진 않는다. 생존과 관련되어 최대의 화두는 행복이다.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고 할 정도다.

행복을 다들 추구하는데 역설적으로 다들 불행하다. 이상하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데 불행하다니. 차라리 불행해지기 위해 노력하면 행복해지려나. 이러 이유는 바로 행복의 조건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의 조건이 너무 높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 허들이 엄청낭게 높게 설정되어 있어 그에 미치지 못하니 불행하게 생각한다. 차라리 낮다면 쉽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자꾸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게 된다. 과거에는 그 비교대상이 기껏해야 주변이라 높지 않았다.

이제는 SNS의 발달과 함께 비교대상할 사람의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 예전에는 부자라고 하면 나와 딱히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의 라이프를 알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럴 것이라 예측되는 모습이 노출된다. 이런 것들도 대부분 방송등을 통한 이미지 노출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자신의 여러 모습 중에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면만 노출한다. 서로 그 모습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비교하며 불행을 느낀다.

남들도 내 그런 모습만 보고 부러워 하는데 나도 남들의 그런 모습만 보고 부러워한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며 다들 불행 세계에 빠져든다. 그 조건을 낮출 필요가 있다. 그저 따뜻한 밥 한끼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면 훨씬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언제부터 그렇게 해외여행을 갔다고 말이다. 다들 내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을 갖는다. 각자 자신이 하는 일은 다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갖지 못하는 것은 부러워하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은 하찮게 여긴다.

그리하여 진정한 나를 찾는 열풍도 분다. 문제는 이것도 목표가 너무 높다. 달성할 수 없는 자아가 저 멀리 있다. 노력해도 달성하기 힘들다. 또 다시 불행하고 힘들다. 결국에는 자아찾기가 내 필요성에 의해서인지 어떤 마케팅으로 내가 또다시 당하는 것인지 애매하다.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과거와는 달리 인간 자체가 상품화되었다. 대체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존재에 대해 차별성이 사라졌다.

이러다보니 각자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기 보다는 남들이 볼 때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나라는 자아는 사라지고 껍대기만 남는 경우가 많다. 무조건 남들이 볼 때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만 성공한 인생처럼 보인다. 이 레이스에 도태되거나 낙오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어 버린다. 순수한 내가 사람들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닌 나라는 외피를 감싼 이상한 존재로 다가서게 된다. 헛헛한 마음이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이를 위해서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와 남을 위한 태도가 중요하다. 나 자신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태도, 남을 있는 그래도 바로보는 태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무엇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나라는 존재는 엄청나게 대단한 인물이라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 자체 때문에 중요하다. 나는 이 세상에 유일하고 일회적이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고, 딱 한 번 뿐이 살아갈 수 없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살아야하는 이유는 넘치도록 충분하다.

행복을 너무 거창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불행속으로 들어간다. 충분히 스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는 누구나 할 정도로 지겹다. 그게 사실인 걸 어쩌랸 말인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거창하게 찾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난 그러고 싶지도 않다. 이 모든 것을 끝내는 것보다 앞으로 살면서 경험할 것들을 더 기대한다. 최소한 지금보다 더 좋은 일이 많지 않을까. 슬픈 일과 힘든 일도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난 살아야겠다.

핑크팬더의 다시 돌아보기 : 내 유일하고 한 번 살아가는 인생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