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 그들 _ 편가르기가 주는 이득을 없앨 수 있을까?
[출처] https://blog.naver.com/armada1588/221446018633
글로벌 정치 리스크 연구 및 컨설팅 기업 유라시아 그룹의 설립자 겸 회장 이안 브레머는 책 '우리 대 그들'에서 편가르기 전략에 대해 이야기 한다.
많은 이들, 특히 2016 미 대선 당시 클린턴을 찍은 사람들 중 대다수는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을 비난했다.
그 중에는
'제노포비아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같은 사람인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인종차별 성향이 없다면, 클린턴이 여자라서 그를 뽑지 않은것일 뿐이다.'
라는 식으로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2016 미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2008, 2012 대선에서는 오바마에게 표를 던졌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면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아니, 그렇지 않아. 세계화와 자동화의 물결 속에서, 경제적 위협을 느낀 사람들의 불안감을 정치인들이 잘 활용한 것일 뿐이야. 사람들도, 심지어는 정치인들도 단순히 악당이라 볼 수 없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그런 위협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이 필요해"
(그리고 클린턴 지지자들처럼 사실 상대 지지자들을 악당이나 모자란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 자체가 사실 편가르기이자 우리 대 그들 전략의 일환일 뿐.)
저자는 앞서 언급한 오바마에게 투표했다가 트럼프를 찍는 상황을 보며,
‘경제 문제에서는 진보적이고, 정체성 문제에서는 보수적’인 ‘포퓰리스트’를 주목했다.
여기서 포퓰리스트는 단순히 대중영합적인 정책을 내뱉는 정치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중의 표만 노려 입맛에 맞는 말을 내뱉는 정치인들 외에 유권자들까지 모두 포퓰리스트의 범주에 들어간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할만한 말만 골라 하는 이들, 그리고 본인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찾아 듣는 이들 모두, 포퓰리스트에 속하는 셈이다.
이런 포퓰리스트들을 기회주의자라 비난하고 매도하는건 쉽다. 그렇게 하면, 뭔가 내 자신이 지적이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한것만 같다. 기분이 좋다. 우쭐대자. 나 님은 역시 똑똑하셔.
하지만 이런 자세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문제를 증폭할 뿐이다. 포퓰리스트들이 애용하는 방법은 정체성에 기반하여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그들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그들을 비난해 봤자, 그들과 똑같이 정체성에 기반하여 우리와 그들을 나눈채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리되면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독재자를 타도했더니 종교 근본주의 정권이 들어서거나, 공산주의를 타도했더니 파시스트가 들어서는 것과 비슷하다.
선거결과가 어찌 나오든 무조건 승복하라며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을 조롱했던 클린턴 지지자들은 예상 외로 본인들이 패배해자, 데꿀멍 하는 대신 거리로 나서서 대선에 불복하겠다는 시위를 벌였다.
정부와 정치 리더들을 비판했다고 사찰받던 이들이 정권을 잡고나니 본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이들도 있다.
이들 역시 결국에는 우리 대 그들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 그들 구도는 어떻게 깨야 할까?
저자는 '우리 대 그들 구도가 왜 사람들에게 먹힐 수 있었는지'를 봐야 한다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글로벌화는 우리 대 그들 구도가 만들어지기 아주 좋은 환경을 제시해 준다.
"세계주의는 연결을 가능케 함으로써 공포를 유발한다. 전 세계적으로 사상과 정보가 즉각적으로 흐르는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을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연결해 교육, 협력, 상거래의 기회를 새롭게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분노의 원인이 늘어나고 있고, 그 분노를 널리 알릴 방법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으며, 시위를 조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이 새롭게 나오고 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테러는 낯선 이름과 얼굴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고 있다."
- 책 52~53쪽 -
하지만 글로벌화는 환경을 제공해 준거지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경제적 불안감과 불평등이다. 세계주의의 확산은 기업들이 보다 더 싼 노동력을 찾아 나서기 좋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가난한 지역 사람들이 부유한 지역으로 와 일할 수 있게 해 줬다.
이를 통해 세계는 더욱 부유해 질 수 있지만, 이들에게 일자리를 내준 일부 사람들이 생기면서 세계주의의 그늘이 생겼다. 여기에 숙련 편향적 기술진보가 일어나면서 시류에 맞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는 보상 차이가 커졌다. 그리고 실업과 불평등도 늘어났다.
실업과 불평등의 심화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기술 환경의 변화나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본인도 실업자가 되어 불평등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 이미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앞으로도 계속 이 상태에 머물 것이라는 두려움.
포퓰리스트들이 이용한건 바로 그 두려움이다.
따라서 저자는 정체성에 기반한 우리 대 그들 식의 편가르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주장한다.
가장 근본적인 방책은 사회계약을 새로이 작성하는 것이다. 갑자기 사회계약이라 하니 뭔가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알고보면 간단하다. 교육, 조세, 사회복지 같은 정책들을 손 보면 된다.
기본소득제는 대표적 방책 중 하나다. 앞서 말했듯이 편가르기가 통용된 배경에는 경제적 곤궁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기본소득제가 제대로 작동된다면, 경제적 곤궁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워지므로, 상대를 좀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상대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면, 그들을 굳이 적대시 할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되면 설령 뚜렷한 정체성에 기반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배척할 이유가 없다.
물론, 저자의 제언이 모두 정답은 아니다. 또한 저자가 내세운 제언들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들이 제법 많다.
하지만 단순히 작금의 갈등 상황에만 주목한 채, 상대방을 제거하여 일을 해결하려는 유력자들과 달리,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저자의 접근 방법 만큼은 채택할 필요가 있다.
그들을 이기는게 목적이 아니라, 진정 사람들이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우리나라도 지금 첨예한 갈등의 늪에 빠져 있다. 보수와 진보, 남자와 여자,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모두가 우리 대 그들의 구도 속에서 상대방을 악으로 매도하여, 상대를 거꾸러뜨릴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기세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상황만 처리하려는게 아니라, 본질을 파고드는 저자의 문제 접근 방법이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출처] 우리 대 그들 _ 편가르기가 주는 이득을 없앨 수 있을까?|작성자 뇌순백의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