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트랩 - 미국 달러의 지위가 점점 더 굳건해지는 이유는?
[출처] http://blog.naver.com/hong8706/220549075659
오늘 소개할 책은 "달러트랩"입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에는 또 한권의 음모론 환타지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탄탄한 경제서적이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왜 수 많은 개도국들이 그토록 힘들게 쌓은 외환보유고의 대부분을 수익률 낮은 미국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지를 분석한 책이었습니다. 즉, 달러의 함정에 빠져버린 개도국들의 신세를 묘사하는 책이었습니다.
이책의 앞 부분은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간단한 경제이론을 다루는데.. 환율에 대한 지식이 없는 분들에게 상당히 유익할 것 같습니다. 저는 책의 앞 부분에서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 100페이지가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씩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개도국들의 행동 변화를 설명한 부분은 매우 유익했습니다(책 105~106 페이지).
자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와 포트폴리오 주식, 그리고 차입 등이다. (중략) 1980년대와 1990년대 많은 신흥 개도국들이 위기에 직면했던 주요 이유는 대외부채가 주로 차입 형태로 이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당시 신흥 개도국들이 '차입'이 가져올 잠재적 위험을 몰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진 것은 아니었다. 신흥 개도국들로서는 당시 다른 형태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서 차입한 것 뿐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돈을 빌려준 개도국 정부를 믿지 않았다. 개도국 정부가 자국통화를 더 찍어내 부채의 실질적인 가치를 훼손시킬 것이라고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달러화로 채권을 발행할 것을 요구했다. 게다가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세계 경제가 호황이라 돈을 빌린 후 만기가 되면 다시 채권을 발행해 상환할 수 있었기에, 개발도상국 정책 담당자들은 차입이 늘어나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한국 외환위기의 원인이 잘 나와 있네요. 당시 한국 정부는 종금사 등을 통해 6개월 만기로 달러화를 대거 차입해서, 이를 기업들의 설비투자 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을 방치했었습니다. 이런 행동을 했던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죠. 하나는 단기 차입할 때 '금리'가 낮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세계경제가 호황을 지속하고 있었기에 만기 연장이 매우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97년, 태국에서 크게 당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종금사에게 만기연장을 거부하면서부터 한국은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되었죠.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적어도 직접적인 원인은 한국 종금사들이 무분별하게 단기 차입했던 데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암튼, 호되게 당한 개도국들은 이후 절치부심하게 됩니다. 일단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쌓고, 더 나아가 선진국에서 자금을 유치하더라도 '부채'가 아닌 주식투자나 혹은 직접투자의 형태를 선호하게 된 것입니다. 이 결과 2011년 전체 신흥 개도국의 대외부채에서 차입의 비중은 40% 아래로 떨어지는 반면, 주식투자나 외국인 직접투자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됩니다.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 우려에도 불구하고, 개도국 경제가 예전보다 훨씬 잘 버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대대적으로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려는 개도국의 노력은 달러화의 지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신흥 개도국의 외환보유고는 1999년 1조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2012년에는 무려 7조 달러 이상으로 부풀어 올랐던 겁니다. 그리고 신흥 개도국들은 힘들게 쌓은 외환보유고를 어떻게든 안전하게, 그리고 언제든 필요할 때 즉각 인출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하기를 원했죠. 이 결과 미국 달러에 대한 선호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게 됩니다(책 124~125 페이지).
신흥 개도국으로서는 달러와 같은 경화(hard currency, 물가가 안정되어 통화가치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는 통화)로 외환보유고를 쌓아두면 일종의 보험에 가입한 것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 어떤 국가가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를 갚지 힘들다는 전망이 나오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취약해 보이는 국가를 피하게 되는데, 이는 그 자체로 자기 충족적인 예언이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외국 자본의 유입이 갑작스럽게 중단되면서 자본흐름이 바뀌고 심지어 은행에서 대규모 자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 나라가 상당한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경화로 운용하고 있으면, 문제의 조짐이 보인다고 해도 투자자들이 금세 자금을 빼내지 않을 것이다. 경제가 위기에 휩싸여 있다 해도 외환보유고가 풍부하면 급작스러운 자본 흐름의 변동에 따른 파괴적인 영향을 완화할 수 있다.
신흥 개도국이 외환보유고를 쌓는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왜 외환보유고를 달러 같은 경화로 쌓아둬야 하는 이유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책 138 페이지).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 관리지침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국가 자산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환보유고 관리자들은 안전성과 유동성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수익성은 부차적인 문제로 간주한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를 관리하는 국가외환관리국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외환보유고 관리의 원칙이 소개되어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운영과 관리에서 안정성과 유동성, 가치의 증대라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은 안전이다. 아울러 외환보유액은 대외 지급에 필요한 전반적인 수요를 충족시키고 국가 경제와 금융의 안전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충분한 유동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 두 가지의 조건(안전성과 유동성)을 충족하는 자산은 거의 없죠. 일단 안전성을 따지면, 주요 선진국의 국채 밖에 대안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 국채는 유동성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니고 있죠. 결국, 신흥국들이 위기를 위한 '보험'으로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미 달러화 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는 구조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특히 '안전성' 측면에서 미국 국채는 매우 강력한 제도적/사회적 보장을 해줍니다(책 186~187 페이지).
미국 투자자들이 사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국채 가운데 20%는 연기금, 20%는 뮤추얼 펀드, 14%는 금융회사, 11%는 주정부 및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다. 나머지 35%는 일반 가계 및 기타 투자자들의 소유이다. (중략)
이러한 상황은 정치적/경제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이해관계의 균형을 만든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이 인플레를 유발해 국채의 실질가치를 떨어뜨린다면, 손실의 상당 부분을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다. (중략) 그러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투자자들이 (인플레로 인해) 겪을 고통을 고려하면, 인플레이션은 공공부채의 부담을 낮추는 현실적 방안으로 볼 수 없다.
간단히 말해 미국 국채를 보유한 미국 투자자들의 구성을 보면 부채의 실질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인플레를 유발하기가 '정치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국내 투자자들의 구성 때문에 미국 국채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는 시도가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혹시 미국 이외의 투자자들에게만 선택적으로 피해를 가게 만들 방법은 없을까요? 이에 대해 저자는 추상적인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일축합니다(책 189 페이지).
미국 정부가 채권자들을 차별해 선택적으로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우선 미국 국채시장의 규모(16조 달러)와 어마어마한 거래량을 감안할 때, 투자자 유형별로 보유한 국채를 분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정부는 투자자 유형별로 국채 보유현황을 조사하지만, 이 정보는 (중략) 설문조사와 다른 보고 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수집한 것에 불과하다.
이렇듯 국채를 궁극적으로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에, 미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한 국채만 선별적으로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설사 이런 기술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해도, 법률 체제 때문에 선택적인 디폴트를 실행하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서로 다른 유형의 투자자들을 차별하는 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 개정을 하면 선택적 디폴트가 가능하겠지만, 이 법이 진행되는 동안에 외국인들은 미국 국채를 일제히 팔아치울 테니.. 미국은 선택적 디폴트 이전에, 이미 외환위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역시 실행 불가능합니다.
음모론병 환자들이야 미국이 디폴트를 낼 것이라는 둥, 더 나아가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릴 것이라고까지 상상하지만.. 현실은 매우 냉혹하다는 겁니다. 음모론병 환자들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중앙 정부가 (대규모 외환보유고의 적립을 통해)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치솟게 만든 주범이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출처] 달러 트랩 - 미국 달러의 지위가 점점 더 굳건해지는 이유는?|작성자 채훈우진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