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경제학자라면 - 전작(前作)은 잊어라! 이 책이 진짜다!
[출처] http://blog.naver.com/hong8706/220389295088
저는 예전에 이미 팀 하포드의 책 "경제학 콘서트"를 읽었더랬습니다.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쓰지 않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저는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런.. 경제학 서적에 불과했죠. 솔직히 말해, "베스트 셀러는 쳐다 보지 않는 게 유익해!"라는 저의 기존 생각을 더욱 굳히게 만든 책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난 십년 동안 저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팀 하포드도 달라졌더군요. 이번에 나온 그의 신작 "당신이 경제학자라면"은 2015년 올해의 책 후보로 손색이 없다 생각합니다. 일단 이론의 밸런스도 무척 좋고, 또 굉장히 많은 논문(과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폴 크루그먼 교수처럼 "글 잘 쓰고, 내용도 좋은 경제학자"의 반열에 올라설 자격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책의 여러가지 부분 중에서 '효율임금 가설'에 대한 부분을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책 201~202 페이지).
질문: 실업이 뭐 복잡할게 있나요?
답: 실업은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가장 기초적인 경제학 개념 중 하나인 '수요와 공급'을 통해 실업의 문제에 접근한다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기업이 더 많은 노동자를 원한다면 임금을 올려야 합니다. 반면에 노동자를 줄이고자 하면 임금을 내려야 합니다.
(반대로) 실업자가 일자리를 구하려면 저임금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업자가 실직 상태로 있는 이유는 분명히 그들이 일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따르면 불황은 긴 휴일과 같습니다. 실업자는 기업들이 제시하는 임금을 살펴보고는, 그냥 쉬면서 회복기가 되면 임금이 원하는 수준가지 오를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일부 강경한 입장의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논리를 받아들이는 듯 보이지만, (팀 하포드의 입장에서) 그 논리를 지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선 한 가지 이유는, 불황이어도 임금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종업원의 일부를 해고하고, 대신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임금을 그대로 지급합니다.
아래의 '그림'을 이런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미국의 민간부문 근로자들의 시간당 임금 추세를 보여주는데, 어떤 불황이 출현해도 임금이 깎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공황 이후 가장 심한 불황이었다는 2008~2009년에도 역시 임금은 상승하기만 할 뿐,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을 '임금의 하방 경직성'이라고 부르죠.
출처: https://research.stlouisfed.org/fred2/graph/?g=1dZI

노동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 즉 노동력이 석유나 밀 같은 일반적인 상품과 같지 않은 것은 '임금의 하방경직성' 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그 가치(=생산성)에 따라 가격(=임금)이 책정되는 게 아니라, 임금에 따라 생산성도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실업을 발명한 사람' 헨리 포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책 202~204 페이지).
질문: 실업을 발명해요? 포드가 만든 공장 생산라인이나, 모델 T가 아니구요?
답: 그런 것도 발명했죠. 좀 과장된 표현이기는 합니다만, 포드가 '새로운 형태의 실업'을 발명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야기를 해드리죠. 1914년 헨리 포드는 하루 작업시간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이면서도 최저임금을 기존의 두 배 이상인 일당 5달러로 올리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디트로이트의 겨울을 뚫고 수천 명의 남자들이 일자리를 얻으려고 매일 포드 공장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하루는 폭동까지 일어나 경찰이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소방호스를 사용했을 정도입니다. (중략)
모든 노동자들이 새로운 임금, 즉 5달러의 임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6개월의 수습 기간이 있었으며, 그 기간 동안 깨끗하고 검소한 가정을 이끌 고 있다는 사실을 포드의 사회복지 부서에 입증하지 못하면 떠나야 했습니다. (중략)
질문: 포드가 필요한 노동자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웠나 보죠?
답: 전혀 아닙니다.(중략) 당시 디트로이트의 노동시장은 과열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침체되어 잇었습니다. 헨리 포드가 '일당 5달러'를 시행하기 이전 2년 동안 빈민구제를 받는 사람들의 수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결국 포드의 임금인상은 경쟁사 때문이 아니었고 경쟁사들 역시 포드와 경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또 포드가 반드시 필요한 기술을 지닌 노동자만을 찾은 것도 아닌듯 합니다. (어셈블리 라인 채용 등) 내부 체계의 변화로 인해 숙련된 기능공이 차례 차례 떠나고 잇었으니까요.
그럼 무엇 때문에 포드는 그렇게 높은 임금을 제공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비용 절감 때문이었습니다(책 207~209 페이지).
질문: 어째서 불필요한 임금인상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거죠?
답: 그 받은 포드사의 이직률에 있습니다. 일당 5달러의 정책을 도입하기 전 해인 1913년,포드 공장에는 5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필요했지만 고용된 사람은 1만 3,500명에 불과했습니다. 수 만명의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통에 이를 대체해야 했던 겁니다. 노동자의 평균 근속 기간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913년 3월 한 달에만 전체 노동자의 반이 넘는 7만 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떠났으며, 그 사람들은 대부분 '5일 노동자'처럼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그만두었습니다. 여기서 '5일 노동자'란 5일 동안 회사를 다니다 나타나지 않으면 그만둔 것으로 간주되었던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중략)
근원적인 문제는 포드사의 노동자들이 일에서 느끼는 불행감이 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시간은 길고 작업은 지루했으며 임금은 형편없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게으름을 피우거나 무단결근을 하고, 작업 현장에서 관리자와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며 심지어 생산라인을 고의로 방해하는 행위까지 했습니다. (중략)
포드가 '높은 임금' 정책을 채택한 후 세 가지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첫번째, 생활 수준이 나아진 노동자들이 안정된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가족을 잘 먹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략) 두 번째, 노동자들은 포드사에 감사함과 의무감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따라서 자동차 만드는 일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세 번째, 포드의 일당 5달러 정책은 노동자들에게 갑자기 잃을 것이 많이 생겼음을 의미했습니다. (중략) 따라서 노동자들에게는 열심히 일하고 지시를 따라야 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중략)
예상했듯 노동자들의 이직률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성공은 노동생산성의 극적인 향상에서 나타났습니다. 포드는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했지만,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멋진 스토리죠. 이게 바로 효율임금입니다. 근로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금에 따라 생산성이 바뀌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효율임금의 지급은 단위 공장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지만, 노동시장 전체로는 큰 불균형을 만들어 내었습니다(책 209~211 페이지).
질문: 잘되었네요. 하지만 이 이야기와 포드가 '실업을 발명했다'는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답: (중략) 포드가 일당 5달러 정책을 시행하는 순간, 포드의 노동자들은 더 이상 일자리를 쉽게 옮길 수 있는 시장, 즉 고전학파의 교과서에 나오는 (가격 기능이) 완전한 노동시장에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포드의 노동자들은 심하게 불완전한 노동시장의 운 좋은 쪽에 있었습니다. (중략)
가진 기술이나 성격, 일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치면 포드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단지 운 좋게 훌륭한 일자리를 얻었을 뿐이며, 당연히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를 지키려 했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높은 임금' 정책을 효율임금이라고 부릅니다. 종업원의 동기를 유발하고 충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고용주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노동자에게도 유익합니다. 하지만 효율임금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수준보다 높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중략) 즉 상업적인 논리를 고려할 때, 정확히 효율임금은 더 많은 구직자와 더 적은 일자리를 의미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기업들이 포드처럼 행동하면 '임금따라 생산성도 상승'하기에 노동시장의 불균형이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드사는 어셈블리 라인을 가지고 있는.. 아주 큰 대기업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수 천 수만개의 부품을 잘못 조립하면 2009년 도요타처럼 어마어마한 손실을 기록하는 대규모 리콜을 단행해야 할 수도 있기에, 포드사와 같은 대기업들은 효율임금을 제공해 노동자들의 충성심을 높이는 전략이 유용합니다.
그러나 서비스업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일단 생산성의 향상을 도모하기에 어려운 매우 '개별적'인 업무들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더 나아가 기업의 규모도 작기 때문에 고용주가 전 직원을 감독하기도 편합니다. 그리고 이윤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다른 경쟁 기업보다 더 높은 임금을 주다가는 파산해버릴 위험도 높습니다.
결국 효율임금이 지급되는 대기업 그리고 좋은 기업들의 근로자들은 매우 높은 임금을 받으며, 실제로 자신의 능력을 계발할 동기를 가지게 되지만.. 이런 자리를 못 구한 사람들은 매우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특히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임금에 대한 '눈높이'가 높은 사람들은 효율임금이 지급되는 대기업에 취업하려 들뿐, 더 낮은 임금을지급하는 기업에 취직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에 구조적인 실업이 발생하게 됩니다.
암튼.. 노동시장을 일반적인 상품시장처럼 취급하는 극히 일부의 경제학자들에게는 이런 '효율임금' 가설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적용되는, 그리고 극단적인 케이스에 불과하다고 취급당할수 있습니다만.. 한국의 경우에는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당신이 경제학자라면 - 전작(前作)은 잊어라! 이 책이 진짜다!|작성자 채훈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