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출처] http://blog.naver.com/hong8706/220375076843
오늘은 벤 버냉키 전(前) 미 연준 의장이 쓴 책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를 소개할까 합니다. 제목에 이미 적은 것처럼,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감히 최고의 책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강력 추천하는 이유는 1) 매우 쉬운 말로 쓰여져 있고 2) 이론과 실무 양면으로 중앙은행의 역할과 2008년 당시의 행동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년에 추천했던 책 "빚으로 지은 집"을 읽었던 분들이라면, 아마 매우 기쁘게 이 책을 읽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수 많은 책이 출간되어 있지만, 제가 작년에 추천한 책 "빚으로 지은 집"은 감히 최고의 책이라 생각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부채의 급증이 얼마나 위험하며, 특히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한 부채 증가가 경제에 어떻게 파멸적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었죠.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왜 2000년대 미국 부시 행정부가 그렇게 강력한 주택보급률 상승 정책을 펼쳤는지에 대해서는 2014년 상반기 최고의 책, "폴트라인"에 잘 나와 있죠. 한 마디로 말해 사회의 불평등, 그리고 2000년 정보통신 거품 붕괴 이후의 경기 부진을 해결하기 위해 손쉬운 해결책(=주택가격 급등)으로 이를 대응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암튼 이렇게 좋은 두권의 책("빚으로 지은 집", "폴트라인") 덕분에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은 대충 파악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해결 안된 부분이 있죠.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1929년 세계 대공황과 같은 치명적인 사태로 발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2008년 금융위기는 1929년 세계 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사태로 발전할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http://bestrs.blog.me/80149971048

오늘 소개하는 책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은 2008년 금융위기가 1929년처럼 치명적인 상황으로 연결되지 않은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2006년 말 새로운 연준의장으로 임명된 밴 버냉키가 그리스펀과 부시가 싸놓은 똥을 어떻게 치워나갔는지를 자세히 보여주며, 또 1990년 일본 버블 붕괴 이후의 사태 전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교훈을 배웠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보다 자세히 책의 내용을 추적해 보겠습니다(책 14~15 페이지 부분).
중앙은행은 무슨 일을 할까요? 이들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하는 일을 두 가지 광범위한 측면에서 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 번째 측면은 거시 경제의 안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즉, 안정적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경기침체 등과 같은 커다란 변동을 피하며, 인플레이션을 낮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중앙은행의 경제적 기능이죠.
앞으로 진행될 일련의 강의에서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중앙은행의 다른 한 가지 기능은, 금융안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은 금융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며, 특히 금융패닉 또는 금융위기를 예방하거나 경감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거시경제의 안정과 금융시스템의 정상작동을 위해 노력한다. 이건 세계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는 의무라 하겠습니다. 그럼 어떤 수단을 통해 이런 목표를 달성할까요?
중앙은행이 이 두 가지의 광범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기본적으로 두 벌의 수단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안정 측면에서는, 통화정책이 주된 수단이 됩니다. 예를 들어 평상시, 연준은 단기금리를 인상하거나 인하할 수 있습니다. 공개시장에서 증권 매입 및 매각을 통해 그렇게 하는 것이죠. 경제가 너무 느리게 성장하고 있거나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런 경우 연준은 흔히 금리를 낮춤으로써 경제에 자극을 줄 수 있습니다. 낮아진 금리는 다른 다양한 금리들을 낮추는 힘으로 작용함으로써 경기를 진작시키게 됩니다. (중략) 이와 마찬가지로, 경제가 지나치게 과열되고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고 있다면 연준은 금리를 올립니다. 연준이 은행들에게 돈을 빌려줄 때 부과하는 연방기금금리를 인상하면, 높아진 이자율이 시스템 전반으로 파급됩니다. (중략) 경기과열을 부추기던 압력이 줄어드는 것이죠. (중략)
금융패닉이나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주로 사용하는 수단은 유동성 제공입니다. 이 수단은 경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통화정책에 비해 덜 알려져 있습니다. 금융안정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은 금융기관에게 단기 대출을 해주는 것입니다. (중략) 패닉 또는 위기의 기간 동안 금융기관에게 단기 신용을 제공하면, 시장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금융기관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활동은 "최종대부자" 수단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중략)
(금융위기에 대처하기위해) 연준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수단은 금융규제감독입니다. 흔히 중앙은행은 은행시스템을 감독하고, 은행 포트폴리오의 위험 정도를 측정하며, 이들의 관행이 건전한지 확인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금융시스템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연준의 세 번째 수단, 즉 금융규제 감독의 미비였습니다. CDO를 비롯한 다양한 신 금융상품들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하는데, 이에 대해 그린스펀을 비롯한 연준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은 '시장에게 맡긴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던 것입니다.
사실 CDO 같은 상품들은 은행의 전통적인 금융상품(예금, 대출 등)과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2000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은행-증권 간의 칸막이를 없애면서, 은행들이 본격적으로 증권회사의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던 만큼.. 연준이 이에 대해 감독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기에.. 결국 그린스펀을 비롯한 2000년대 중반 연준의 지도부에 대해 그렇게 거센 비판이 가해졌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연준의 세번째 역할에 대해서만 비판이 가해진 것이 아닙니다. 연준의 두 번째 역할에 대해서도 말이 많습니다. 그토록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지른 금융기관들에게 대출을 해준 연준의 '유동성공급'이 도덕적으로 큰 문제를 가진 행동이라는 비판이 그것입니다.
이에 대해 버냉키 의장은 2008년 당시 TARP 등을 통해 연준이 해준 유동성 공급을 매우 필요한 것이었고, 또 담보를 모두 징구하는 등 매우 신중하게 이뤄졌다고 반박합니다(책 19~21 페이지 부분).
패닉은 심각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한 은행에 문제가 생기면, 그 이웃 은행에 예금을 가진 사람들은 이웃 은행에도 문제가 발생할까봐 염려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은행에서 일어난 뱅크런은 여러 은행의 뱅크런(은행 패닉)으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중략)
그럼 연준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봅시다. 은행이 몰려든 예금주에게 돈을 (당장) 지급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 봅시다. (중략) 이때 각 은행들은 지역 연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은행에 담보로 제시할 수 있는 우량 대출이 잔뜩 있습니다. 이것을 담보로 현금 대출을 해주세요!"
이렇게 해서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은행들은 중앙은행에서 현금을 얻어 와 예금주에게 지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각 은행들이 보유한 대출이 정말 우량 자산인 한, 뱅크런은 가라앉고 패닉은 종료될 것입니다.
연준 등 중앙은행들이 은행을 감독하고 있으니, 중앙은행들은 가장 우량한 대출자산만을 담보로 대출해줄 수 있죠. 따라서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지며, 설령 영국의 노던록 은행처럼 뱅크런이 벌어지더라도 금융시장 전체의 붕괴로 연결되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이게 2008년 금융위기와 1929년 대공황의 가장 결정적 차이였다는 게 벤 버냉키 의장의 지적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1929년 당시 미국 연준의 대응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연준의 역할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 글을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인생되세요~
지난 번 소개했던 글(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 2015년 올해의 책!)에서 간단하게 중앙은행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1929년 대공황처럼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전세계의 중앙은행들이 막는데 성공했다는 것까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대체 1929년에 어떤 일이 있었고, 또 당시 연준을 비롯한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어떤 행동을 했기에.. 사상 초유의 대공황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일단 1929년 대공황을 이야기하려면, 무엇보다 금본위제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버냉키 의장은 이야기합니다(책 25~26 페이지 부분)
남북전쟁 이후 1930년대에 이르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국은 금본위제도 하에 있었습니다. 금본위제도가 무엇인가요?
금본위제도란 통화가치를 금의 무게를 기준으로 고정시켜 놓은 통화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금의 가격은 법률에 의해 온스당 20.67달러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중략)
금본위제도는 하나의 자동적인 통화시스템을 만들어냅니다. (중략) 유감스럽게도 금본위제도는 완전한 통화시스템과 거리가 멉니다. 예를 들어, 금본위제도는 자원의 커다란 낭비를 부릅니다. 금을 수 톤 캐낸 후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지하 금고로 올겨야 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금을 모두 캐낸 후엔 다시 또 다른 구덩이로 슬어 넣어야 하는 것이 금본위제도의 매우 심각한 비용이라고 밀턴 프리드만은 늘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금본위제도에는 이보다 더 심각한 금융/실물적 우려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실제 경험(=대공황)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금본위제도가 통화공급량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봅시다. 금본위제도가 통화공급량을 결정하기 때문에(=금의 공급이 달러의 공급을 결정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으로서는 경제 안정화를 위해 통화정책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금본위제 하에서는 경제활동이 왕성한 시기에 통화공급량이 늘고 금리가 하락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중앙은행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이행하고자 하는 정책조치와는 정반대입니다. (중략)
이밖에도 금본위제도에 대해서는 우려할 사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금본위제도를 채택한 나라들의 통화 사이에 고정환율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은 금본위제도가 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1900년 달러화의 가치는 금 1온스당 20달러 정도였습니다. 바로 그때 영국 사람들은 금 1온스 당 대략 4 파운드 정도로 금 태환 비율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20달러가 금 1온스와 같고 금 1온스가 4파운드와 같으므로, 결국 20달러가 4파운드와 같은 셈입니다. 기본적으로 1파운드는 5달러의 가치를 갖는 것이죠. 그러므로 두 나라 모두 금본위제 하에 있는 경우 금과 각국 통화의 교환 비율, 즉 환율로 게산되는 두 나라 통화의 가격 비율은 근본적으로 고정됩니다.
어쩜 이렇게 핵심만 딱딱 짚어 나가는지.. ㅎ
암튼 이렇게 글을 쉽게 쓰는 능력을 구비해야 하는데, 참 이게 어려운 일이죠. 금본위제가 필연적으로 고정환율제도로 이어지고, 고정환율제도가 가진 고유의 문제를 유발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다른 포스팅에서 많이 이야기했으니.. 오늘은 금본위제의 두번째 문제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http://blog.naver.com/hong8706/40209121141

1929년 미국 경제에 어떤 일이 닥쳤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아래의 '그림'을 봐야 합니다. 책 37 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으로, 위의 그래프는 경제성장률인데, 음영으로 표시된 부분이 대공황 국면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29년 실질 경제성장률이 7%에 이를 정도로 경제가 호황을 보였지만, 10월 주가 폭락 사태 발생 이후 급전직하하여 1932년에는 마이너스 -13%라는 파멸적인 성장률을 기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의 그래프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인데, 경제성장률보다 더 끔찍합니다. 1929년 0%의 물가 상승을 기록한 후, 1931년부터 마이너스 수준에 접어들어 불과 3년 만에 소비자물가가 약 30% 하락한 것을 발견할 수 있죠. 한 마디로 말해, 경제가 완전히 망가지는 가운데 소비자물가마저 급락하는 최악의 상황이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최악의 입장에 처한 사람들은 토지나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워낙 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현금으로 이런 큰 자산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책 38 페이지 부분)
여러분이 당시 농민의 입장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농작물의 가격이 (소비자물가의 하락에 따라) 30% 혹은 절반 이상 하락 중인데도 여러분은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여전히 동일한 액수를 은행에 상환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가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오른 쪽은 "분노의 포도" 초판 커버). 그럼 당시 연준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었을까요? 예. 2012년까지의 유럽 중앙은행처럼 통화긴축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습니다(책 41~42 페이지 부분)
대공황 기간 중 연준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요? 연준이 대공황이라는 커다란 첫 시련에 직면하여 통화정책 측면과 금융안정 측면 둘 다에서 모두 실패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통화정책 측면에서, 심한 침체기에는 누구나 통화정책의 완화를 기대하게 되는데도 연준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물가 수준이 10%나 하락했다면, 이는 통화정책이 너무 지나치게 긴축적이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중략)
설상가상으로, 앞서 언급했듯이, 금본위제도 하에서 환율이 고정됩니다. 이제 연준의 정책이 다른 나라들에 전파될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이들 나라도 지나치게 긴축적인 통화정책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세계 경제의 파국을 초래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연준이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가져간 한 가지 이유가 달러화에 대한 투기적인 공격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 있죠? 1931년 영국인들이 그런 상황에 직면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와 유사한 공격으로 인해 달러화가 금본위제에서 밀려 날까 연준도 염려했던 것이죠. 그런 이유로, 금리를 내리기 보다는 금본위제도의 유지를 위해 금리를 올렸던 것입니다.
금리를 높게 유지하면 미국 내 투자가 유리해지면서 국외로의 자금 유출이 방지될 것이라고 연준은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긴축적은 잘못된 정책이었습니다. 경제가 높은 금리를 필요로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금본위제도를 포기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통화정책의 긴축 강도가 훨씬 약해지면서 1933년과 1934년에 경제가 매우 강력한 반등 기류를 타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제가 더 부연설명하자면.. 일단 금본위제 하에서 통화공급은 금의 공급에 의해 좌우됩니다. 미국 내에서 금이 일거에 크게 생산되지 않는한, 결국 해외에서 통화공급이 이뤄져야 통화공급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930년대 초반 미국 연준은 해외에서 금을 더 유입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경제가 더욱 박살났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안 그래도 마이너스 물가 상황인데 금리가 상승해버리니.. 경제주체들이 부담하는 실질금리가 급격히 치솟는 상황이 출현한겁니다.
그리고 당시의 균형실질금리 수준이 예를 들어 마이너스(=불경기 때문)라고 할 때, 실질금리가 15% 수준이라면.. 자금을 다른 곳에 운용할 수 있는 투자자들은 누구도 투자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경제를 균형상태로 만들어주는 금리 수준보다 현재 금리가 훨씬 높으니까, 돈을 쓰기보다는 저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거죠. 그리고 (여력을 가진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음에 따라, 경기는 더욱 나빠지게 됩니다. 결국 이런 악순환이 끝없이 벌어지며 1930년대 초반, 미국경제는 파멸적인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혹시 균형실질금리가 뭔지 궁금한 분들은 아래 링크 참고하심 좋습니다.
http://blog.naver.com/hong8706/220372964890

암튼.. 금본위제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마치고, 다음 시간에는 연준의 또 다른 임무. 금융안정이 실패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인생되세요~
[출처]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 2015년 올해의 책!!|작성자 채훈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