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인문학
[출처] http://blog.naver.com/hwayli/80139751997
[단상]
<돈의 인문학>(문학과지성사, 2011)을 읽었다. 줄을 긋고, 곱씹고, 때론 쉬어가며 책장을 넘겼다. 읽은 후엔 발췌를 하고, 밑줄 그은 부분을 살폈다. 정말 좋은 책이었다. 고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모두에게 추천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돈과 자본주의에 대해 성찰하게 한 책은 있었다.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코뮤니타스>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 등. 모두 괜찮은 책이지만, 돈에 대한 '철학'을 주진 못했다. 텍스트에 머무르는 철학이 아닌, 삶을 변화시키는 자기만의 철학. 삶을 변화시키는 성찰이 필요했다. <돈의 인문학>이 그 공허함을 메워줬다.
저자는 김찬호씨다.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을 지냈고, 대학과 대중을 넘나들며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자의 강의 내용은 무척 다채롭다. 청소년 교육과 문화, 가족관계와 부모 자녀 소통, 마을 만들기, 창의적 발상, 지구촌 시대와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이다. 모두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콘텐츠다. 그야말로, 강의와 집필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강단에 메여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글쓰기가 가능했다. 화려한 학벌, 유학 경험, 유명대 교수 직함이 아닌 강의 주제로 자신을 소개한 책 날개도 매력적이다.
책은 총 3부, 14장에 걸쳐 '돈'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시도한다. 화폐 경제에 대한 정의로 시작해 소유에서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 대안 경제를 이야기하고, 마지막 챕터에선 돈의 주인이 되는 법을 설명한다. 책은 딱딱한 경제학 개론서, 철학자 인명사전도 아닌 삶을 바꾸는 인문학을 보여준다. "돈은 물질이 아니다"로 시작하는 서문과 "우리는 다시 존귀해질 수 있다"는 저자 후기는 가슴을 친다. 뛰어난 어휘력과 비유, 간결한 문장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빛나는 건 인간애다. 돈을 쫓는 사회가 잃어버린 휴머니즘. 그것의 복구를 절실히 외치는 한 인문학자의 외침은 감동적이다.
특히,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정재기 교수의 '한국의 가족 및 친족 간의 접촉빈도와 사회적 지원의 양상' 논문을 인용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부모 소득이 1퍼센트 높아질 때 부모와 자녀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직접 만날 가능성이 2.07배나 커졌다. 반면 미국, 영국,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 14개 회원국들의 경우 대부분 소득과 접촉빈도가 반비례했다.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자식들이 부모와 더 자주 만나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친족 이외의 인적네트워크가 커져 상대적으로 친족과의 접촉빈도는 낮아진다. 부모가 가난할수록 자녀의 방문 횟수가 줄어드는 나라는 조사 대상 15개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이 자료를 인용하며 저자는 묻는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사회변동 속에서 우리는 오로지 돈만을 향해 질주하는 동안 가장 가까운 혈육과의 인연조차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상황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면서 돈으로 더욱 매진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경제력이 조금 떨어져도 자녀들이 외면하지 않도록 가족관계를 돈독하게 해두는 쪽으로도 관심을 기울일 것인가."(p258) 생각거리를 던지는 장면이다. 이런 자녀가 나온 데는 부모의 영향이 크다. 먹고 사는데 급급했던, 우리 전 세대는 '나 같은 고생을 다시 시켜선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자식을 교육시켰다. 1등,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 조건 좋은 결혼, 노후 설계...경쟁에선 밀리지 않게, 돈으로 고생하지 않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 뿐.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의 삶의 질이 향상될까, 아이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해 할까'로 고민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자식들은 부모를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 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잉여'라는 수식어로 설명되는 20대, IMF를 겪으며 자기계발서와 재테크에 매달려야했던 우리 30대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았다. 실제로,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본다. 대부분이 '높은 눈높이'를 요구했던 부모에게 애증을 느낀다. 부모가 기대하는 직업과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자신의 언어, 감정을 갖지 못한 20, 30대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아프다. 그럴 때마다 난 "부모를 교육시키세요."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건방진 말 같지만, 유일한 답이 아닐까. 이를 위해, 자식들에겐 설득력 있는 화법과 주장을 뒷받침 할 콘텐츠가 요구된다. 자칫, 감정이 실리기 쉬운 것이 가족간의 대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성적, 논리적 화법이 필요하다.
우리 부모세대 대부분은 '부모교육'의 경험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감성코칭이나, 경청, 대화법 등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했다. 자신이 겪어온 시간과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을 기를 수밖에 없는 세대였다. 물론, 체화된 지혜로 훌륭한 부모가 되려고 애썼지만 컴퓨터, 인터넷 세대 아이들을 키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다른 아이와의 비교는 기본 (형제 자매, 친척, 옆 집 아이 모두가 비교의 대상이 된다.) 아이의 목소리를 경청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가 하는 사교육이니' 시켰지, 정작 아이가 하고 싶은 혹은 못 따라가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지 못했다. 쌍방향이라기 보단 일방적인 교육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다시 존귀한 존재로 거듭나려면' 지금의 부모, 앞으로 부모가 될 사람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돈이 아닌 행복을, 삶의 양이 아닌 질을 추구하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 1등을 못해도, 명문대에 가지 못해도, 좋은 직장에 가지 못해도,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만의 철학, 인문학적 소양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스스로 읽고, 쓰고, 토론하며 깨닫는 공부만이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의 인문학>은 돈 잘 쓰는 법이 아닌 '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목소리는 삶의 방식, 교육, 가족 문제까지 확장된다. 곳곳에 스며든 돈의 위력에 대해 깨닫게 한다. 애써 외면하려 했던 문제를 마주하게 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한다. 돈의 노예가 아닌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은 이라면 꼭 한 번 읽어야 할 책이다.
[출처] [강추책] <돈의 인문학> ★★★★|작성자 스윗도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