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책과 사랑에 빠진 과학자들…2012년 빛낸 과학서적은?

억스리 2013. 1. 5. 20:50

2012년 대한민국 출판계를 관통한 키워드는 '융합'과 '힐링'이었다. 


과학기술계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단순히 기술력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뛰어난 기술은 물론, 사용하기 편해야 하고, 아름다워야 하며, 독특하면서도 창의적이어야 한다. 급격한 변화 속에 누군가는 융합을 통해 시너지를 발휘하고, 누군가는 지쳐 힐링을 원하곤 한다. 

올해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융합과 힐링을 위해 책을 찾았다. 과학기술 쪽에서는 고전으로 속하는 여러 스테디셀러부터 올해 주목받은 신간, 그리고 과학자들이 직접 작가로 분해 엮어낸 책들까지, 올해 과학기술계 책방은 풍년이었다. 

◆ 올해 주목받은 과학기술 신간은?

ⓒ2012 HelloDD.com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APCTP)는 과학 대중화를 위해 '올해의 과학도서' 10권을 선정했다.

선정된 도서는 '과학의 천재들(앨런 라이트먼)', '다윈 지능(최재천)', '멀티 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 '물리학 클래식(이종필)', '보이지 않는 세계(이강영)', '사라진 스푼(샘 킨)',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크리스 임피)', '얽힘의 시대(루이자 길더)',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리처드 도킨스 외)',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제프리 베넷)' 등이 선정됐다.

'과학의 천재들'은 과학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을 이끌어 낸 천재 과학자들의 생애와 업적을 실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위대한 발견을 가능케 한 창의력과 상상력 뒤에는 언제나 잘 훈련된 과학자가 있다고 전하고 있다. 

통섭으로 유명한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공감의 시대를 위한 한 권의 책을 내놨다. '다윈지능'은 150여 년간 진화 이론이 발전해 온 과정과 진화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뇌들의 설전, 그리고 현대 진화 이론의 핵심을 담은 최고의 진화 생물학 교과서이다. 

진화론이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철학과 경제학, 법학, 문학, 정치학, 예술 등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침에 따라 보다 풍성하고 다양해진 21세기 지식 생태계의 전망을 총망라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법한 의문, '우리의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면?', '다른 우주에서 또 다른 내가 이곳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등의 이론은 분명 매혹적인 개념이다. '멀티 유니버스'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은 물리학적 다중 우주이론은 사변 철학의 산물이 아니라 기존 이론들이 확장하면서 필연적으로 마주친 결과임을 강조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최첨단 현대물리학의 발전에 따라 이 자유의지에 의해 갈래가 나뉘어 다양하게 현대 우주론의 역사를 앞에서 끌어가고 있는 9가지 다중우주(누벼 이은 다중우주, 인플레이션 다중우주, 브레인 다중우주, 주기적 다중우주,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 양자 다중우주, 홀로그램 다중우주,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궁극의 다중우주)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설명했다. 이 한 권으로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물리학과 우주학의 전체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

현대 물리학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순례길, 이종필 박사의 '물리학 클래식' 역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0편의 논문, 12명의 위대한 물리학자가 펼치는 물리학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물리학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들어보는 책이다.

수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여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큰 흐름을 조망해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며, 물리학을 전공으로 하는 학생들이나 교수들에게는 자기 분야 혹은 다른 분야의 원전 논문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전해주고 있다.

한편 아태이론물리센터는 최근 1년간 발간된 자연과학도서를 대상으로 추천·선정위원회 심사를 거쳐 올해의 과학도서를 선정했다.

◆ 놓쳐서는 안 될 과학기술 스테디셀러는?

ⓒ2012 HelloDD.com
'유전자가 나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다소 직접적이면서도 선전 포고하는 듯한 소개말은 '이기적 유전자(저자 리처드 도킨스)'를 더욱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서울대 권장도서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으며, 2006년에는 간행물윤리위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로 뽑힌 바 있다. 발간 30주년, 그 사이 무수한 비판에 시달려 온 이기적 유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생물학의 고전으로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진화생물학 분야의 과학자치고 리처드 도킨스만큼 대중적 인기와 학술적 논쟁을 결합시킨 사람도 흔치 않다. 그는 일찍이 촉망받는 젊은 동물행동학자로 간결한 문체와 생생한 비유, 논리적인 전개를 갖춘 글로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도킨스는 자신의 동물행동학 연구를 유전자가 진화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에 대한 좀더 넓은 이론적 맥락과 연결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이기적 유전자'다.

이 책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과 학습이나 경험과 같은 후천적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인간 중 어느 것이 인간 본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책 '엔트로피'. 그가 설명하는 엔트로피는 인류가 발견한 유일한 진리다. 이 정의를 이용해 제레미 리프킨은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사용이 가능한 것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혹은 이용이 가능한 것에서 이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또는 질서있는 것에서 무질서한 것으로 변화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에게 있어 엔트로피는 모든 경제활동을 지배하는 기본 원리다. 이 책에서는 엔트로피에 의해 경제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잡지 못하면 앞으로 세계는 파국을 재촉할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그는 책을 통해 '우리 문명은 미래가 물리적 제약 없이 무한히 뻗어나갈 것이며, 물질적 한계는 없다'는 모더니즘적 사고에 의해 양육돼 왔으며, 이러한 문명에 대해 엔트로피 법칙은 충격이 될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있다. 왜냐하면 엔트로피 법칙은 우리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궁극적인 물리적 한계를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역사는 진보의 과정이며, 과학과 기술이 질서 있는 세계를 창조할 것'이라는 기존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파괴하는 생소한 경험을 하길 바란다.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DNA구조를 발견한 이야기를 엮은 '이중나선(제임스 왓슨)'은 제임스 왓슨이 소설의 형식을 빌어 DNA 연구과정을 밝힌 책이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DNA 나선구조 발견이 그들에게 노벨상의 영예를 안겼음은 물론, 생명공학의 무궁무진한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사실은 이미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책은 그들의 연구를 대중에 널리 알리며 많은 이들에게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과 과학자로서의 꿈을 폭발시켰고, 이후 오랫동안 현대 과학의 고전으로 손꼽혀 왔다. 

저자는 여러 관심사를 거쳐 DNA를 연구하게 된 계기, 공동 연구자인 프랜시스 크릭과 만나 논문 작업을 완료하기까지의 과정은 물론, 평소에는 파티에 나가고 주변의 여러 과학자들과 협력하고 갈등하는 모습들도 가감없이 담아낸다. 이공계 대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도 선정된 바 있다. 

20년전에 출판돼 과학 교양서의 고전이 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우주의 탄생과 은하계의 진화, 태양의 삶과 죽음, 우주를 떠돌던 먼지가 의식 있는 생명이 되는 과정, 외계 생명의 존재 문제 등이 250여 컷의 사진과 일러스트, 우아한 문체로 흥미롭고 박진감 넘치게 묘사돼 있다.

현대 천문학을 대표하는 저명한 과학자인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난해한 개념을 명쾌하게 해설하는 놀라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을 심오한 철학적 사색과 엮어 장대한 문명사적 맥락 속에서 코스모스를 탐구한 인간 정신의 발달 과정으로 재조명해 낸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으로 많은 이들이 찾았던 이 책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빌 브라이슨)'는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지표면에서 수천 킬로미터 밑에 있는 지구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우주의 크기와 조성을 어떻게 알아냈고, 블랙홀이 무엇인가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6억 년 전에 대륙들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도대체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등의 호기심들이 원시 과학의 모습과 결합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기자 출신의 여행 작가인 빌 브라이슨은 스스로 궁금하게 생각했던 과학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3년에 걸쳐 파헤쳤다. 우주, 지구, 입자, 생물과 미생물, 인류, 생명, 화학, 기후 등등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만물의 역사를 쉬운 말로 써놓았다. 이공계로 나아갈 학생들에게 과학자로서 사명감과 꿈을 줄 수 있는 책으로 손꼽히고 있다.

◆ "책은 또 다른 융합의 장"…과학자들의 '작가' 행렬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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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총장 서남표)에서 한국 과학사를 가르쳐온 신동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전통 과학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한국과학사 이야기' 3편이 지난 4월 출간됐다. 

하늘과 땅의 과학을 주제로 했던 1편, 생명과 몸의 과학에 대해 얘기했던 2편에 이어서 기술과 발명 그리고 현대 과학 100년에 대해 다룬 '한국 과학사 이야기' 3편은 시리즈를 완결하는 책으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한국 과학사 정보를 간추렸다.

국방과학연구소(소장 백홍렬)와 항공우주연구원(원장 김승조) 등에서 오랫동안 연구원 생활을 해 온 정규수 박사는 지난 2010년에 낸 '로켓, 꿈을 쏘다'에 이어 'ICBM, 그리고 한반도'를 새롭게 내놓았다. 

정 박사는 그간의 연구 경험을 토대로 한반도 정세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북한의 탄도탄 보유현황을 검토하고 그 개발의 역사를 소개했다. 이와 함께 일본을 탄도탄 잠정보유국으로 가정하고 일본의 고체로켓 역사와 보유기술 수준에 대해서도 검토했다.

'ICBM, 그리고 한반도'는 북한은 물론 중국·일본 등 한반도 주변 열강의 탄도 미사일 개발에 관한 모든 것을 단 한 권에 담은 책으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탄도미사일이라는 특수한 창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서울대서 화학을 전공하고 미 다트머스대에서 이학박사를 취득 한 후 델라웨어 소재 듀퐁사 화학연구원으로 전자재료 관련 연구에 종사했던 최해탁 박사는 자전적 에세이집을 냈다.

최 박사의 '형산강 물이 델라웨어강으로 흐르다'는 1983년 듀퐁사 화학연구원 활동 당시의 경험과 다시 한국 사회에 영입되면서 시작된 제2의 한국 생활 등을 그리고 있다. 

형산강이 흐르는 작은 마을 청령에서 태어나 꿈을 키운 최 박사의 이야기는 1부 '격동의 날들'로 시작한다. 1부에서는 개인의 삶과 불안정한 한국을, 2부에서는 미국 유학 생활 중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3부에서는 듀퐁 광고분자연구소 연구원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자신을, 4부에서는 한국에서 겪었던 문화적 충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지난 30년을 모두 알고 있는 이규호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그가 한 권의 책을 펴냈다. 그가 이름 올린 '과학을 이끄는 나침반' 속에는 한국 과학기술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과학자들이 모여있는 특구라는 특수한 공간에 대한 스케치와 과학자의 삶이 고스란이 들어있다. 

또한 연구단지 안의 일상 뿐만 아니라 과학과 종교의 문제, 과학자의 윤리 의식등 저자가 과학자로서 살아온 30년의 세월 동안 고민해온 철학적인 단상들과 우리나라 이공계의 발전을 위한 반성과 쓴소리도 책 속에 차분하게 풀어냈다. 

지난 3월, 24명의 인문학자들의 과학 기술 체험담을 담은 '인문학자, 과학기술을 탐하다'를 출간한 바 있는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은 자연중심기술에 대한 책을 새롭게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생물체로부터 영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물연감(bioinspiration)'과 생물을 본뜨는 기술인 '생물모방(biomimicry)'을 합쳐 '자연중심기술'로 소개하고 있는 이 소장은 단순히 과학기술에 대한 소개를 넘어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이 소장은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인류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해법을 모색하는 자연중심기술이 녹색기술의 한계를 보완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제 녹색기술로 부터 '청색기술'로 전환할 때라는 의견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