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아리랑」… 피, 눈물, 그리고 한(恨)
[출처] http://blog.naver.com/luvdanny52/150069826721
< 징게 맹갱 외에밋들 _ "김제, 만경의 너른 들"이란 뜻>
조정래작가의 대하소설인 「아리랑」의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 호남평야 일대를 가리키는 토속어
2008년 3월 무렵 읽기 시작했던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아리랑」
고3 수험생 시절, 학교서 자습을 하든 야자를 하든 독서실에 있든
공부하다 잠이 올 때면 조금씩 읽어가며 잠을 깨우던 책이었다.
발간 순서대로라면 「태백산맥」이 먼저고 그 다음이 「아리랑」이겠지만
시대 순으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여 난 첫 책을 「아리랑」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읽고 중단하기를 반복하다 만 18개월 만에 완독하게 된, 「아리랑」 (09.09.17. 完)
설레고 부푼 마음으로 펼쳤던 첫장면이 아직도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지삼출과 감골댁이 빚을 갚으러 함께 걸어가던
호남평야의 금빛이 너울거리며 출렁이던 그 비옥한 땅의 모습
그 때만 해도 혈기왕성하며 조선건아의 우뚝 선 장정으로
참 든든하고도 강인한 지삼출이었다.
그런 그가, 4부 12편 마지막 장면 '해방 그리고 비극'편에서
아들 지만복을 징병 보내는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문득 떠오른 건 그의 젊은 모습이었다.
만주 땅이 아닌 조선에서의 지삼출 모습
머슴 출신이었던 그가 감골댁을 도와 장칠문을 후려 쳤던
패기있고도 당당했던 그 모습 ...
그러고보면 열 두 권의 이 긴 이야기는
정말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그 모두가 다 하나의 끈으로 엮인 '한민족'이었고 '조선의 백성'이었다.
두 세 단계 건너면 이 사람과 저 사람은 아는 관계가 될테니까 ...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인물은
공허스님이었다.
불자의 신분으로 구국운동을 하며
소리 없이 바람결 따라 돌아다니면서도
그 기개와 뚝심만큼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조차도
배울 점이 무척 많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육신과는 달리
너무도 깊게 박혀버린 그 마음씀을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물은
어찌 보면 「아리랑」의 큰 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송수익.
양반의 핏줄이지만 진취적이면서 깨어있는 사상을 가진 그였기에
또한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몸소 실천할 줄 아는 그였기에
진정 그런 그의 모습이야말로 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무엇인지를 그는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참 눈물겨운 장면도 많고
분통 터지는 장면도 많았고
억울하고 또 속상하면서
통쾌한 부분도 있었다.
어떨 때는 너무도 잔인하고 악랄해서
차마 더 읽지 못하고 책을 덮어놓고는
숨을 고르쉬며 스스로를 진정시킨 적도 있었다.
끔찍하고 역겨워서 소름마저 돋던 그 장면들
무엇보다 이 장면이 단순한 '허구'에 지나지 않음에
그것은 생각 이상으로 더 크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걸 뺏기고도
철저하게 찢겨야했던
그 한(恨)을 ....
누가 어이 다스려줄텐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던 자들의 그 억울함을
어느 누가 감히 달래줄 수 있단 말인가
국권피탈 36년
짧지만은 않았던 시간
그러나 그 시간에 비한다면
무고하게 죽어간 안타까운 영혼들이
너무도, 실로 너무너무도 .. 많았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마땅한 죄명도
죽음의 당위성도 그 무엇도 없었다
그저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
그 하나 뿐이었다.
무엇보다 뼈 아프게 가슴 시린 것은
그 때의 그 아픈 역사가
지금 이 순간까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그들만의' 민족 의식 깊숙히에
뿌리 박혀 있는 사실이 눈물나게 서럽다
그리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불과 100여 년도 되지 않은 '가까운' 지난 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만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무엇보다 한민족이라는 핏줄을 타고 태어난 이상
겉치레로 포장된 애국주의, 민족주의 따위가 아닌
진정으로 마음에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의 뼈 아픈 역사를
적어도 외면치는 말아야 하지 않은 게 아니던가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에는
책 열 두 권을 모두 읽어냈다는 뿌듯함과 개운함보다도
그 때나 지금에나 달라지지 않은 '잘못된 종자'들이
버젓이 저렇게 살아 숨쉬는 현실이
못마땅하고도 분하여
한참을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 봤더랬다.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내려 했던 것을 도대체 무엇일까
그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숨 한 번 제대로 내쉬지 못하고 살아야했던
우리네 '그들'은 무얼 바라 그리도 처절하게 살아야했을까
그 때의 하늘이나 지금의 이 하늘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는데 ...
어쩌면 좋을까나, 어찌하면 좋을꼬
조국이나 민족 따위가
내 밥그릇 챙겨줄 리 만무하다
고작 그런 것들이
이 작은 목숨 하나 연명하는 데
아무런 힘도 보태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이 '내 밥그릇 챙길 자유'를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다면
그 대가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왔는가를
우린 철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
.
그들에게 남은 것은
피와 눈물, 그리고 한(恨)이었다
해방은
또 다른 비극을
낳고 말았으니 …
*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멋드러지게 표현한 작가의 어휘력과 표현력에
매우 큰 감탄을 한 바, 작가 조정래씨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 구수하고도 정겨운 사투리 말씨를 여실히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어쩐지 「아리랑」을 읽고 난 후에는 내 말투마저 그것에 감화되더군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