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그 적들
[출처] http://blog.naver.com/srandoms/140158750967
열린사회야말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인데, 그 세 사람은 ‘닫힌 사회’로 이끈 ‘주범’이다. 그는 혁명을 통해 단번에 이루어지는 ‘완전한 사회’는 존재할 수 없으며(폭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혁명은 자유를 파괴할 뿐이다.), 따라서 전체주의에 대립하는 개인주의 사회로서 부분적인개혁으로 나아가는, ‘점진적 사회공학piecemeal social engineering'만이 해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방법 역시 국가권력을 증가시키는 위험성이 있음을 포퍼는 인정한다. ‘국가권력은 언제나 위험스러운 필요악이다. 그래서 감시를 소홀히 하면 자유를 잃게 된다.’
(<자유의 적들>, 전원책, p.161)
위는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인 <자유의 적들>에서 직접 인용한 부분이다. 이 구절을 책 속에서 접하자마자, '점진적인 향상'이나 '개방성' 등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가치이기에, 이러한 가치들을 어떻게 인간 사회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고 낑낑대며 1주만에 읽었다.
나름 책 빨리 읽는다고 자부하지만, 이 300페이지도 안되는 책만큼은 도저히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책 절반정도 읽을 때까지는 하루에 20페이지 읽기에도 벅찰 정도로 글 자체가 너무 난해하였다. 1997년에 간행된 책이라서 글씨 서체도 고전적이고, 편집 방법도 낯선 점도 책 몰입을 어느정도는 방해했다고 생각한다. (글씨체는 궁서체와 흡사했으며, 음이 표시가 되지 않은 한자어도 무수히 많았고, 또한 글 내부에 직접인용 등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서 읽기가 많이 힘들었다.- 직접인용은 항상 <나 >로 구분되어 있는데, 차라리 줄 바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기호도 <나 >보다는 따움표를 사용하면 어땠을까 싶다.) 이러한 편집이나 구성에 대한 아쉬움은 최근에 나온 개정판을 읽으면 많이 해소될 것으로 생각된다.
포스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 중 1권에 대한 글이다. 사실 책 자체가 1권과 2권 두권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두권 모두 읽고서 책에 대한 평가나 글을 써나가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지만, 책이 일단 나 자신에게 너무 과분하였고, 동시에 전달한 지식이 너무 방대하기에 부득이하게 나눠서 글을 쓰게 되었다.
이책의 부제목은 '플라톤과 유토피아'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1권 상에서 포퍼는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사상을 비판하는게 주된 내용이다. 그리스 철학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플라톤이며,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이런 말을 남기고 죽었으며, 플라톤은 철인정치론을 펼쳤던 사상가라는 사실 등 매우 단편적이고 협소한 지식밖에 가지지 못했었다. 그리스 사상과 철학자들에 대한 이러한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서, 책 전반부를 읽기가 더욱 힘들었다. 다행히 '비판의 정석'을 보여준 포퍼는 비판의 대상인 플라톤과 그의 사상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책 전체 중 1/3에서 1/2가 플라톤과 그의 사상에 대한 설명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부분 할애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그런 장황한 서술 사이에서도 빠지지 않고 꼼꼼하게 용어를 정리해주고 정확하게 정의내려주어서 내용 혼동의 가능성도 현저하게 줄여주었다.
사실 플라톤 철학에 대한 지식이 밝혔듯이 전무하기에, 그의 비판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신은 할 수가 없다. 다만 플라톤의 저서에서 인용을 비교적 상당히 많이 하였고, 비판하기 전에 항상 플라톤에 대한 서술이 상세하기에,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9장 탐미주의, 완전주의,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비판은 정말 절정이라고 칭할만큼 훌륭했다.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하나하나 비판을 해가니 누구라도 납득할 수밖에 없게끔 그는 논지를 펼쳐나갔고, 더욱이 중간중간에 드는 예시도 일품이었다. 대표적인 예시 하나만 인용하겠다.
이런 견해들은 예컨대 사회공학과 기계공학을 비교함으로써 확증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유토피아적 공학자의 요구에 따르면, 기계공학자들은 때때로 아주 복잡한 기계를 전체로서 계획하며, 그리고 그들의 청사진은 어떤 종류의 기계뿐 아니라, 이 기계를 생산하는 전체 공장까지도 망라할 수도 있고, 미리 계획할 수도 있다. 기계공학자는 충분한 경험을 갖고서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기 때문에, 즉 시행착오에 의해 발전된 이론을 갖고 있으므로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내 대답이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가 이미 모든 종류의 실수를 경험했으므로,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가 점진적 방법을 적용해서 얻은 경험에 의거하기 때문에 그는 이와같이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새로운 기계는 대단히 많은 사소한 개선들의 결과이다. 그는 보통 먼저 모델을 가질 것이며, 그리고 여러 부분에 대한 무수한 단편적 조정을 마친 후에라야 생산을 위한 그의 마지막 계획을 작성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간다. 그와 비슷하게 그의 기계 생산 계획은 무수한 경험, 즉 옛날의 공장에서 이루어진 단편적 개선을 기초로 한다. 전체적이거나 대규모적인 방법은 단편적 방법이 먼저 무수히 많은 상세한 경험들을 제공해 주는 곳에서만 잘 되어 나가고, 그리고 단지 바로 이런 경험의 범위 안에서만 잘 되어 나갈 것이다. 청사진이 아무리 가장 훌륭한 전문가에 의해 작성되었다 하더라도, 처음에 모델을 만들어 그것을 가능한 한 여러 번 조금씩 조정해서 개발하지 않고, 단지 청사진에만 의거해서 새로운 엔진을 생산하려는 제작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9장 탐미주의, 완전주의, 유토피아주의, p.225-226)
예시 등 특징적인 서술 외에도, 포퍼는 상당히 비판을 상당히 방대하게 펼쳐나간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관계나 스파르타와의 전쟁 등 그리스에 대한 전반적인 서술 외에도 근대 이후로 플라톤과 관련된 학자들의 주장도 섭렵해나감으로서,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포퍼식 '플라톤 백과사전'을 읽는 느낌을 자연스레 받게된다. 사실 애초에 플라톤의 철인정치나 유토피아 주의 등 플라톤 사상의 세부적인 측면만 가지고 비판을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비판의 대상이 되는 플라톤 사상읠 최대한 방대하게 다루려고 했고, 동시에 플라톤이 왜 그러한 주장을 했는지에 대한 서술까지 곁들이니, 나는 자연스레 포퍼가 행한 플라톤에 대한 서술이 '비판의 정석'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가지게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포퍼가 지나치게 위대해보이기에, 무비판적으로 포퍼의 '열린사회' 사상을 받아들일 위험성이 꽤나 컸었는데, 다행히 책 말미에 열린사회에 대한 비판 부분에서 어느정도 비판적 내용을 인지할 수 있었던 점 역시 책의 마무리를 멋지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비판적 내용 외에도 책 말미에는 이 책에 대한 해설이 상당히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 있기에 고전에 어울리는 고전의 해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포퍼가 주장한 내용의 핵심 자체만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해설만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해설은 결국 타인이 옮겨적은 것이기에 해설만으로는 포퍼가 글로서 표현하고자 했던 본의 등을 알기는 불가능하기에 낑낑대며 책을 완독한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고전 해설집을 읽지 않고 고전 그 자체를 읽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사고력과 지식체계를 구성하기 위해서니깐.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전다운 고전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더욱 독서에서의 고진감래를 절실히 느꼈다. 쉬운 서적보다도 어려운 고전을 읽을 때야말로, 정말로 독서를 통해서 얻는 것이 많다는걸 몸소 깨달았다. 2권에서는 아마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이 서술될 것으로 보이는데, 똑똑한 포퍼가 책 상에서 어떠한 내용을 전개해나갈지가 벌써부터 두근두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