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인생 수업

억스리 2010. 3. 19. 14:46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공저/류시화 역 | 이레 | 2006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근래 들어 가장 읽기 힘든 책으로 기록될 인생 수업. 독서모임의 첫번째 선정 도서라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어제 비로소 마무리를 짓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갖는 것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이하 로스 여사)는 삶의 연장선 상의 죽음을 얘기하며 한없이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류시화 님의 번역은 둘째치고,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에서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자체의 진정성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분명 '~해라, ~했으면 좋겠다'의 강권이나 훈계조의 메시지는 아니었지만, 내내 불편함을 느끼며 읽었다. 문자로 4개의 주제를 전달받고, 원없이 인생 수업에 대해 수다를 떨자는 얘기에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이 책을 읽은 40대 여성(대부분 주부)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야기 꺼리가 별로 없으리란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책에 대한 대체적인 느낌은 어렵다, 깊이 사색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좋았다. 등 다양했다. 하지만 내게 빛을 주는 구절을 함께 따라가며 거기에 담긴 내용과 자신의 생각으로 옮기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7명의 회원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인상 깊게 읽은 내용들을 낭독하고 느낌을 정리해간다. 겹치는 부분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다. 신기했다. 역시 같은 책을 놓고도 이렇게 다른 느낌, 다른 생각으로 정리될 수도 있구나. 단순히 어렵고 딱딱하게 다가오던 텍스트들이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넘실댔다.

 

우리들 대부분은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대개 '보상'에 불과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공부를 잘하고, 할머니께 웃음을 보이고, 손을 자주 씻으면 '사랑 받을'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것이 조건적인 가짜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사랑 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랑이 그토록 많은 것들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대체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P49, 사랑없이 여행하지 말라

 

내가 손꼽은 구절이다. 여기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공감하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고3 수험생을 두고 있는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단 한번도 '나'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해본 적도, 할 줄도 몰랐다고 한다. 여기에 다른 분은 혼자만의 여행을 제안하기도 했고, 또 다른 분은 관심가는 분야에 대한 공부를 추천한다. 그러면서 한바탕 까르르 웃으며, 다른 회원들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경청의 힘일까? 마음 한켠이 편안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었다. 혼자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그런 깊은 삶의 지혜를 얻는 기분이라고 할까? 어떤 모임에 참가하든 대체로 난 말이 많은 편이다. 주도권을 쥐고 내 생각을 뚜렷하게 밝힌다. 하지만 오늘 독서모임에서는 대체로 듣기만 했다. 때론 투박하고, 소박하고, 사실과 맞지 않는 내용도 더러 있었지만, 내내 미소만 지었다. 1시간 30분이란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던지. 인생 수업을 읽으며 느낄 수 없었던 깨달음을 유쾌한 수다 속에서 얻을 수 있었다.

 

행복의 조건은 나와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 두려움 없이 죽음의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손내미는 사람들이 호스피스지만 내 삶을, 현재의 일상을 제대로 즐기고 가꿀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란 걸 제대로 알게 되었다. 다음 독서 토론 선정 도서는 '연을 쫓는 아이'다. 예전 꼼쥐님의 블로그에서 인상적인 리뷰를 접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야 기회가 닿았다. 또 하나, 처음 12명으로 시작한 회원이 2번째에서 7명으로 줄었다는 거. 7명 정도가 적당하단 생각이 들었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포근함, 따뜻함이 있다. 그들과의 수다 속에 삐딱하게 혹은 고개를 저으며 읽었던 인생 수업을 제대로 읽은 유쾌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