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kdseas.tistory.com/10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해 보통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로 알고, 다가오는 날을 조심스레 예측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듣곤 한다. 학교에서도 역사를 배우는 의의를 적으라는 주관식에 이렇게 적었고, 학교 밖에 있는 많은 사람도 이렇게 생각한다.
물론 틀린 대답은 아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우리는 여전히 인간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역사를 바로 안다면 그만큼 사고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이해하는 데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끔 작용하는 환경이 무엇인지 고민할 때가 많다. 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우선 카타르시스가 섞인 역사 해석이다. 뭔가 극적이면서 희열을 느끼지 못하면 해당 역사 사건이나 해석을 밋밋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두 번째는 일제가 행한 가혹한 통치에 맞서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때론 무의식에서 피해 보상을 바라는 관점을 요구해 바른 역사 인식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임의대로 나눈 이 두 요소는 사실 엄밀히 분리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미 수 많은 서적(교과서를 포함)이나 매체에 사실처럼 녹아들어간 부분이 많기에 더더욱 그렇다.
역사는 자의적 해석으로도 존재 가치를 지니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그 의미가 빛나는 법이며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한참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읽은 '전쟁과 역사'는 있는 그대로 역사 바라보기를 도와주었다. 물론 저자의 주관적 해석으로 나온 책이기에 100% 완벽한 객관적 내용이라 볼 수 없지만 앞서 언급한 두 방해요소에서 많이 탈피한 흔적이 보이기에 도움을 얻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감정과 행동이 집약되어 광범위하게 표출되는 전쟁은 인류가 이 땅에 자리매김한 순간부터 예견된 집단적 행동이다. 아무리 사회적·국제적 협약이나 약속이 존재한다고 하나 전쟁은 필요악이자 인간의 생존 수단 중 하나이다.
전장에서 지휘관은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어야하지만 이러한 자질은 치밀한 분석과 운영의 묘미를 깨우치지 않고서는 오히려 무모함으로 표출 될 때가 많았다. 안타깝게도 광개토대왕 만큼이나 좋아했던 고국원왕도 이런 모습을 몇 번이나 보여줬다. 무모함과 용감함은 때에 따라 다르지만 전쟁은(특히 고대나 중세의 전쟁) 단 한 번의 싸움에도 국운을 걸어야 할 정도였다. 그 당시 전쟁은 말 그대로 총력전이었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철저한 지형정찰과 상대방의 편제와 병력을 비롯해 각종 변수(수치화 할 수 없는)를 분석해 최적의 장소와 시간을 설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참모나 책사의 의견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지휘관 자신의 한계치에 도전하는 많은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합리적 사고를 하느냐가 결국엔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
그러나 영화나 일부 드라마에서는 단순히 지휘관의 용맹에만 초점을 맞추어 영웅성을 부각시킨다. 보는 이에게 존경심이나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좋지만 전략적으로 운영하는 묘미를 부각 시켜준다면 용맹한 장군 이상으로 많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지 않을까?이 책을 읽고 크게 두 가지 내용을 새롭게 얻었다. 국가제도의 정비와 패자와 패망 직전 국가에 대한 기록이다.
첫 번째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어렸을 때 광개토대왕 위인전을 읽을 때면 나는 왜 광개토대왕이 백제와 신라를 함락시키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지독하게 싸움을 벌이고 신라, 백제를 궁지에 몰아 넣었지만 숨통을 끊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정말 어이없게도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와 함께 살아가려는 방패 역할을 수행했다는 말도 들었다. 형세로는 그랬다 해도 고구려가 정말 그런 방패 역할을 자발적으로 떠맡았다는 말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이는 국가제도의 미비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이 단순히 영토가 넓고, 그로인해 얻을 수 있는 병사가 많다고 해서 항상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오랜기간 훈련하고, 지휘관의 통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전술대로 기동 하려면 이른바 ‘정예’가 필요하다. 그 당시 고구려의 영토가 넓고, 우수한 기병과 중장기병을 보유하고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 상류층에 국한된 극히 일부분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왕의 직속부대보다 지역 토착세력이 거느린 사병이 많았고, 지역 세력들의 협조가 없으면 전쟁을 치르기가 불가능 할 정도였다. 타어나서부터 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저 멀리 타국(당시에는 한반도의 영토적 인식이 없었기에)에 처들어 가자하면 과연 얼마나 많은 세력가들이 호응을 해줬을까? 전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장담하기도 어렵고, 자칫하다가 일가가 망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이 때문에 고구려가 당시 날고기는 군사력이 있었다하더라도 나·제 연합 전선을 모두 굴복시키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이리 간단한 점이 원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저 율령 반포니, 국가제도 정비가 언제 이루어졌는지 연도만 외우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분한 사고가 결여되어 있음을 느꼈다. 소수림왕의 업적이 단순히 이렇다는 것보다 왜 그러한 제도를 도입했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중고등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러면서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배워야한다는 알량한 귓속말에 펄렁이며 역사를 좋아한다는 내 자신의 모습이 책을 읽을 때마다 거북하게까지 느껴졌다.
여러 사회제도 중에서도 군사제도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사비를 털어 고용한 병사들, 일가와 땅을 지켜주던 많은 인원들이 국가의 부름에 왔다 갔다 해야 한다는 걸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 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군사제도가 정비됐다함은 곧 다른 사회제도가 완성됐음을 의미했다. 누가 토지를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그 가솔은 몇 명이며, 얼마나 군사로 착출이 가능한지 계산된다. 요즘으로 따지면 호구조사에, 토지소유는 물론 개인재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시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당시 삼국은 이러한 대대적 개혁으로 사회와 나라가 한층 발전하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다시 한 번 종교를 비롯해 성문화된 법과 제도를 정착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 그대로 역사적 사건임을 배웠다.
두 번째로는 바로 패자와 그를 둘러싼 기록이다. 승리자가 역사를 남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죽은 자는 항상 말이 없거니와 승자는 자신들의 승리를 더욱 더 부각시키려는 특성을 보인다. 자연스레 후대의 기록 또한 그 당시 형성된 사회적 분위기와 논리로 패자들을 평가하며 그 사건을 해석한다. 특히 연개소문 일가와 의자왕에 대한 여러 가지 왜곡된기록이 나타났다. 연개소문 사망 후 몇몇 기록에서 그의 세 명의 아들들이 서로 왕위를 차지하려고 다툼을 벌이다가 자멸하는데 일조했다고 했다. 물론 그 세 명의 아들들의 거듭되는 반목은 고구려 멸망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삼국사기를 비롯한 역사서에서는 마치 그들이 아버지의 유언에도 따르지 않는 인물로 묘사를 했고, 그 과정이나 실질적인 원인 분석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연개소문이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개혁을 단행하는 와중에 사분오열 갈등이 발생했다는 식으로 모든 죄를 연개소문의 일가에 뒤집어 씌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연개소문 일가는 굳건한 기반을 바탕으로 군사를 모으고, 이를 유지하여 전쟁을 수행하기보다는 사적인 위치를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이후에 고려시대에서 이를 두고 마치 독재정권은 전쟁에 유리하고,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로 해석이 진행됐다. 원인 중 하나라 해도 그 사실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편협한 논리로 정당함을 세우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의자왕의 경우에서도 이 버려야 할 태도는 계속 됐다. 여색을 탐하고, 충신들을 멀리하며 감언이설만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한 순간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에 의자왕이 유배 보낸 충신과 옆에 있는 간신의 말을 하나하나 따져서 수렴해야 했을까? 때로는 과격한 언행을 일삼고, 신하를 유배보내긴 했지만 무조건 충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논리는 확실히 어거지다. 의자왕의 성격보다 애초에 백제가 갖고 있던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 더 큰 원인이 백제 멸망에 더 치명적이었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해석하기란 무척 어렵다. 사회에서 일정한 논리가 형성됐을 때, 사실과는 다름에도 그걸 깨고 나오려면 적잖은 노력이 필요하다. 정당성(합법성)이 결여된 세력이 자기들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역사에 기록된 성공과 일치하기에 이를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억지주장은 불과 30~40년전에도 횡행했다.
아직까지도 사회 일부에서는 과거에 보습을 보인 사실(객관성)을 그들만의 진실로 만들로 포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를 올바르게, 합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면 이러한 오류 구덩이에서 사실을 끄집어 내어 현재를 직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저 멋모르고 읽어봤던 ‘전쟁과 역사’이었지만 여러가지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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