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1) - 명저를 이제야 읽었다는 후회가 가슴을 치다

억스리 2014. 4. 18. 11:38

[출처] http://blog.naver.com/hong8706/40210493279



저의 취미 중 하나가 '헌책방' 나들이입니다. 알*딘 헌책방이 참 좋긴 하지만, 여기에는 베스트셀러 위주죠. 즉, 최근 나온 잘 팔리는 책들 위주이지 예전에 나온 괜찮은 책을 찾기는 힘들거든요. 그래서 요즘 신촌에 있는 헌책방 '숨어 있는 책'을 자주 갑니다. 한 두 시간정도 열심히 뒤지다보면 책 10여권 건지는데, 책값은 다해봐야 5만원 정도? 정말 싸죠. ㅎ 그래서 저는 거의 매주말마다 갑니다. 

 

그리고 오늘 소해하는 책,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도 그곳에서 발견했네요. 이 책이 좋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많이 들었지만, 이 책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죠. 그만큼 책에 대한 입소문에 불구하고, 안 팔렸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암튼.. 이 책은 굉장합니다. 

 

일단 맘에 드는 부분부터 인용해보겠습니다(책 30~31 페이지 부분).

 

인간이 가진 지식의 총량을 책으로 기술한다면 몇 백만권 이상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문명 이전의 인간에게 전혀 필요 없는 지식입니다. 문명 이전의 인간이 이 지식에 대해 듣는다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 가운데 대부분은 문명이 만들어 낸 지식이며, 문명의 유지 발전을 위해 필요한 지식입니다.

 

지식이 문명을 낳고 문명은 다시 지식을 확대하고 확대된 지식은 더욱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는 형태로, 지식과 문명의 상호 확대 재생산 과정이 수천 년 진행되면서 지금 같은 거대한 지식의 피라미드를 축적하였던 것입니다. (중략) 이 정도로 지식의 총체가 거대해졌기 때문에 인간 사회 전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지식은 아주 미미한 부분일 뿐이고 지식의 대부분은 특정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중략)

 

지식을 나누어가짐으로써 인류 문명사회가 지금까지 유지·발전 되었다고 하지만, 지식의 총량이 많아질 수록 나누어가질 지식의 폭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지식의 총량이 많아질수록 나누어 갖게 될 지식의 폭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문명이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인간의 상대적인 무지는 더욱 심해질 것이며, 이는 매우 중대한 사태라 할 수 있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잘 설명한 분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 책 발간 이후 시작된 인터넷 시대로 인해 지식의 축적 속도는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습니다. 따라서 책을 열심히 읽지 않으면, 점점 더 상대적인 무지는 심해질 뿐이며.. 결국 도태될 것입니다. 물론 도태되는 사람이 증가할 수록 사회는 양극화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책 읽기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을 막아줍니다(책 34~35 페이지 부분).

 

정보 처리의 세계에 오토메이션(automation)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떤 내용이 입력되었을 때 자동적으로 특정한 출력이 이뤄지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단계가 낮은 수준의 '오토메이션'의 예로 자동판매기의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버튼을 누르면 특정 상품이 나오는 그런 구조입니다.

 

인간의 정신, 행동이라는 것은, 대략적으로 이 오토메이션 부분과 자동화되지 않은 '의식적인 행동 부분'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양적으로 볼 때 인간의 일상적인 행동 대부분은 자동화된 행동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젓가락 잡는 법을 처음 배울 때에는, 손가락 하나 하나를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열심히 배웁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면 젓가락 잡는 법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젓가락을 사용해 식사를 합니다. (중략)

 

그리고 이렇게 자동화된 부분은 주로 소뇌 안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소뇌라는 기관은 아주 작지만, 소뇌를 제외한 뇌세포의 수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무척 정밀한 조직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배우고 그것을 완전히 습득하여, 의식하지 않더라도 행동이 가능해지는 단계의 수준에 이르면, 그 때까지의 절차가 모두 소뇌에 저장되는 것입니다. (중략)

 

그런데 지적 욕구가 낮은 사람은 자신의 오토메이션 현상에 만족하여 곧 학습에 대한 의욕을 상실합니다. 새로운 것은 이제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으며, 자신이 지금까지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전체적인 지식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오토메이션에만 의지한다? 이것은 점점 자신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짓입니다. 물론, 사회에서의 성공은 지식의 양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운도 중요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집안배경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운도 그렇게 '대박'이 아니며, 집안도 좋지 않은 사람이 지식을 쌓는데 게으르다면? 

 

그의 사회적 지위는 내리면 내렸지, 오를 가능성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일단 소설은 피하라는 게 이 책의 저자(다케바나)의 지적입니다(책 44 페이지 부분).

 

월급 대부분을 책 사는 데 쓰면서, 학창 시절에 문학서적이나 교양서적을 열심히 읽었던 것처럼 엄청난 양의 논픽션 서적을 탐독하였습니다. 이처럼 논픽션 서적을 탐독하면서 문학가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살아 있는 현실과 비교할 때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알게되었고, 학창 시절에 왜 그렇게 쓸데 없는 책을 읽는데 열중했는지 도리어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주간지(문예춘추) 기자였을 때 논픽션 서적 탐독 못지 않게 재미있었던 일은 취재 활동 그 자체였습니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건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그 사건을 내눈으로 직접 보고, 생생하게 사건을 겪고 있는 사람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눌 때면, 활자된 논픽션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물며 빈약한 상상력의 산물인 픽션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전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예. 저도 그렇습니다. 

 

대학시절까지 제가 읽은 소설책의 양은 족히 천권은 훨씬 넘을 것입니다.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통속적인 책부터 까라마조프의 형제까지.. 뭐 미친 것처럼 읽었죠.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에 있는 책을 거의 다 읽었고, 대학에 와서도 서점에서 하루 종일 책읽다 아르바이트 하러 가곤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다 소설 읽기를 그만뒀습니다. 일단 재일 문제는 재미있는 소설 책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겠죠. 끝을 봤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허무해졌다고 해야할까? 뭐.. 그런 것 있잖습니까? 패턴의 반복인 것 같고, 예전 소설들은 고리타분하고.. 요즘 세상이랑 안 맞는 거 너무 많고. ㅎ

 

그래서 소설책 안 읽은지 20년 넘어 갑니다. 그렇게 소설에 미쳐있던 제가 말입니다. 얼마 전 접했던 조*래님의 신작도 1권 반도 못 읽고 접었습니다. 무라*미 하*키의 신작도 역시 50페이지도 못나가고 접었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좋아했던 두분 작가님의 신작이 그렇더라는 것입니다. 

 

오늘에서야 제가 소설 안 읽는 이유를 알았네요. 예. 세상이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거든요. 더 다이나믹하죠. 

 

어떤 소설이 소련의 수용소군도를 예상했고, 어떤 소설이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을 미리 묘사했을까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공부하면 할 수록,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점점 더 알게 되니.. 결국 소설책을 읽기보다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과 심리학에 점점 흥미를 가지게 되어.. 결국 대학원을 경제학과로 진학하게 되었죠.

 

물론 취미로 역사책 많이 읽고 있고, 또 간간히 만화도 봅니다. 그러나 여전히 소설은 읽히지 않네요. ㅎ 저랑 다치바나씨만 이상한 사람일까요?  다음 편에서는 어떻게 전문적인 서적을 읽어야 하는가? 이 부분에 대한 다치바나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인생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