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억스리 2012. 6. 7. 10:08

‘시대를 넘어 민족의 고전으로’
1998년 8월 초판 인쇄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07년 44쇄 발행에 이른다. 1968년에서 1988년에 이르는 긴 시간을 옥중서간으로 묶으며 보낸 그의 삶이 이제는 ‘시대를 넘어 민족의 고전’이 되었다.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하여 1963년에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숙명여대 정경대 경제학과 강사를 거처 1966년에는 육군사관학교 겅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된 간첩사건에 휘말려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

이른바 1968년에 있었던 통일혁명당 사건이다. 이는 남한의 몇몇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단체를 조직하고 활동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20년간 남한산성에 위치한 육군교도소에 투옥되었다가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된다. 이듬해인 1989부터 현재까지 성공회대학교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동양철학’을 강의하는 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스한국
사람이 그리운 계절에 읽는 <엽서> 한 장
한국사에서 이제는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시간은 끝났다. 더 이상 민중이 궐기하지 않으며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세상 한 세월 살다보면 ‘어떻게 하면 가장 사람답게 사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울 때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권한다.

조용하면서 단아하고 들레지 않으면서 잔잔한 그의 옥중서간은 일상에서 ‘사색’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의 삶의 편린이 고스란히 담긴 ‘사색집’을 통해 경황없이 살아온 현대인의 정수리에 일침을 가하는 시간이 되며, 또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자기성찰의 거울이 된다.

그의 벗으로 발문을 적은 이영윤 씨 역시 “사람이 그리운 시절에 그 앞에 잠시 멈출 수 있는 인간의 초상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이다”고 한다. 이제는 서서히 사라져간 그리운 것들 중 여러 사람의 손을 걷히며 조용히 읽히는 이 책은 대학 세내기 1학년이 읽는 필독서에서 민중의 고전으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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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여름보다 겨울이 낫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여름이 좋지만, 감옥살이 하는 사람에게는 이마저도 고통이다. 그러한 이유는 여름에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기 때문이다. 신영복 교수가 쓴 1985년 8월에 ‘계수님께’ 보낸 사연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게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5℃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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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경작되는 것’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는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 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事後)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가장 선한 것은 무릇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Das beste sollte das liebste sein.).’


이러한 그의 사색이 담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겨울의 싸늘한 냉기 속에서 자신의 숨결로 몸을 데우며 봄을 기다리는 그의 심장을 느낄 수 있다. 천장과 벽에 얼음이 하얗게 성에 져서, 시선을 바꿀 때마다 반짝인다는 그. 마치 천공(天空)의 성좌(星座) 같다고 토로한다. 다만 10와트 백열등 부근 반경 20센티미터의 달무리만 제외하고 온 방이 하얗게 얼어 있는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3호실’에서 냉철한 예지의 날을 세우는 그의 젊은 날을 만날 수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베개, 2007, 9800원

안현희 기자 ahh@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