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다윈의 시대 /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
EBS에서 <신과 다윈의 시대>라는 다큐멘터리를 하고 그 이후 나온 책이라고 한다. '신과 다윈의 전쟁'이라는 표현으로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지독한 공방전’을 설명하는데, 우리나라 책으로는 드물게 도킨스까지 포함한 많은 인터뷰가 실렸고 이 공방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는 느낌이다.
“다윈은 생명과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인간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생명체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진화론은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진화의 최종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인터뷰에는 진화론의 저명한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지적설계론의 뎀스키 같은 사람도 나오는데, 자신의 3개 결정 항목으로 구성된 설명필터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 세 가지 항목을 통하여 생명체의 기원이 설계된 것인지 우연한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답은 지적설계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지적한 것처럼, 뎀스키는 늘 이 말장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세 가지 항목? 첫번째 단계는 ‘설계를 자연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즉 진화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을 골라내고, 그 다음 두번째 단계에서 ‘우연’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것을 다시 골라내면, 3 단계에서 ‘설계’라고 인정할 것만 남는단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 예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늘 1번 단계에서 막힌다. 도대체 진화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생물의 어떤 설계를 밝혀냈나? 몇 개? 몇 개가 1단계를 통과했고 또 그 중에서 몇 개가 2번 단계를 통과했는가? 타자기로 알파벳 늘어놓기 외에 도대체 뎀스키는 어떤 구체적인 예를 제시했는가? 단 하나도 없다. 이 책에서는 아쉽지만 거기까지 파고들지는 못한다.
= 진화이론이 만든 NASA의 우주 안테나 - 지적설계론의 허구성 =
기독교 분석철학자인 앨빈 플랜팅가는 도킨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며,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러한 진화가 신에 의해서 유도되었다고 한다.
“데닛 교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은 유도되지 않은 진화가 과학적인 이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과학적인 이론에 포함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유도되지 않은 진화란 곧 ‘신이란 존재는 없다.’라고 하는 것인데요, 어떻게 과학이 신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과학적인 질문이 아니죠.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럴까? 내 생각에 이것은 ‘신의 정의’를 어떻게 두느냐는 문제이다. ‘유도되지 않은 물리학 이론’이나 ‘유도되지 않는 화학 이론’은? 신이 유도하지 않는 태양계의 운행과 별의 탄생과 진화, 성운의 움직임 등은? 그렇다면 물리학과 화학에서도 ‘신이란 존재는 없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문제는 그게 아니라 ‘행성과 항성, 위성, 혜성 등을 운행하는 신’을 염두에 둘 것인지, ‘생명체의 변화를 유도하는 신’을 염두에 둘 것인지의 문제가 아닐까? 굳이 신은 ‘반드시’ 생명체의 진화를 유도해야만 하는 이유는? 저 광대한 우주의 역사와 운행에서는 ‘신’을 찾지 않으면서. 나는 조금 의문스럽다.
지적설계론의 주장이 나온다.
‘“지금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도, 그것들이 내 옆에서 차곡차곡 백만 년, 천만 년 동안 쌓이면 언젠가는 나에게 도움이 될 거야.”라는 믿음으로 불필요한 정보들을 쌓아 놓고, 그로 인해 생명체가 진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있을 수 없다. 지겹도록 무지한 지적설계론의 한계이다. 문제는 원래 그러한 진화론이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진화론에서 먼 미래를 내다보고 정보를 쌓아둔다고 했는가? 가짜 진화론을 만들어놓고 그걸 비난하는 전형적인 반과학주의자들의 태도이다.
“자연선택은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 없는 ‘눈먼 시계공’인데, 어떻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선택해서 남겨두고 저장할 수 있는가!”
똑같이 한심한 지적설계론의 주장이다. 눈먼 시계공은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 없고 현재만 판단한다는 게 진화론의 주장이다. 도대체 어느 진화론에서 눈먼 시계공이 미래를 내다보며 뭔가를 선택해서 남겨둔다고 했는가?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이렇게 한심한 지적설계론의 주장을 그냥 소개만 하지 틀렸다는 건 지적하지 않았다. 과학자 입장에서 개인적으로는 엉터리 과학과 진짜 과학을 균형을 맞춰 소개하려는 것 자체가 균형이 맞지 않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진화론에 대한 우리나라의 현대종교의 입장도 소개되는데 놀라운 점은 여론조사 결과이다. 진화론을 믿는 정도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전체 평균: 62.2%
종교 없음: 69.9%
불교: 68%
천주교: 83%
개신교: 39.6 %
진화론을 믿는 천주교 신자의 비율이 83%로 가장 높다.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라면 진화론을 믿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말은 착각이라는 게 드러난다. 개신교에서 진화론을 믿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진화론이 확증된 과학이 아닌 가설이자 신념 체계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증거가 없는 진화론이 그저 믿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이유로 마치 하나의 종교의 교리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진화론과 함께 모든 과학이론은 확증된 것이다. 앞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을 완벽한 진리로 확증되지 않았다? 그런 과학이론은 없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틀렸다는 게 확증되었다. 대부분의 물리현상을 설명하는데 충분하기는 하지만 모든 경우에 맞는 건 아니고,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상대성이론도 완벽한 건 아니고 그래서 지금도 물리학자들이 열심히 연구를 한다. 빅뱅이론이 나오고 인플레이션 우주론이 나오고, 그리고도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고 초끈이론과 M-이론이라는 것들도 나온다. 진화론만을 무슨 덜 확증된 믿음직스럽지 못한 가설 취급을 하는 것은 완벽한 착각이다. 과학적인 증거가 너무 많고 너무 어려워서 자기들이 이해 못한다고 무조건 틀렸다고 하면 곤란하다. 전형적인 예를 보자. 개신교를 대표해 인터뷰한 김상복 목사라는 분이 생각하는 진화론은 이렇다.
“진화론은 그저 우주가 저절로 생겨나고, 어느 날 갑자기 생명체가 생기고, 생명체가 또 암컷과 수컷이 되고……. 이런 식으로 신 없이 계속 되는 기적들을 믿거든요. 그러니까 진화론은 과학이 아닌 또 하나의 믿음입니다.”
천문학과 이론물리학 등을 억누르고 언제 진화론에서 우주가 저절로 생긴다는 이론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고, 이 목사님께 누가 진화론에 대한 조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엉망이다.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라면 왜 끝도 없이 매달, 매주 엄청난 진화론 과학논문들이 쏟아지는지 이상하지도 않나?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연구들이 일어지고 얼마나 증거가 찾아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니까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가능한 것이다.
1997년 영국왕립학회가 과학의 대중화에 이바지한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마이클 패러데이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국의 저명한 유전학자인 스티브 존슨을 인터뷰한 부분에서는 약간 오류가 있는 듯 하다. 숫자 단위 번역이 틀렸다고 생각된다.
“DNA를 만들어내는 유전과 변이, 그리고 3억 5천만 년이라는 시간은 진화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는 35억 년이 넘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코란이나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봤을 때 4억 년 전의 진화론은 근거가 없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럴 때마다 오히려 자신이 믿는 종교에 나쁜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주장을 내리기 전에 조금 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완전히 동감하는 부분. 그런데 ‘4억 년 전의 진화론’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아마도 겨우 몇 천 년에 불과한 코란이나 성경의 너무나도 짧은 역사에는 40억 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진화론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근거가 없다거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진화론은 최초 생명체의 발생에 관해서는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지만, 지난 3억 5천만 년 동안의 생명체 진화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생명체의 발달이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소리입니다.”
원래는 35억 년 동안의 생명체 진화라고 이야기했을 듯.
“수억 년 전에 지구에서 우연히 한 번, 생명체가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 뿐이지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수억 년 전이 아니라 수십억 년 전.
진화론이라는 훌륭한 과학에 대해서 기독교 안의 개신교에 속한 비합리성이 강조된 일부 근본주의 종파와 같은 근본주의 성격의 이슬람교와 유대교 사이비과학 숭상자들이 어이없게도 '가설에 불과하다.', '진화론의 증거가 없다.', '진화론은 종교이다.'라는 등의 억지 주장을 펼친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일종의 '입문서'로서 잘 정리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공방에 대해 사전지식을 가진 분들에게는 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또 과학자 입장에서는 사이비과학(창조론)을 어떻게든 과학(진화론)과 균형을 맞추려 애쓴 부분이 오히려 불만스럽다. 입문서에서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분들은 얼핏 이 공방은 아직 판단을 내릴 때가 아닌, 과학적으로 또는 합리적을 어떤 결론을 내리기 힘든 문제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또한 합리적'으로 이건 확실하게 진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공방이다.
= 알맹이가 없는 지적설계론 =
http://blog.naver.com/iiai/103659589
= 유신론적 진화론인 바이오로고스와 지적설계론의 자폭 =
상당히 질이 낮은 한국 창조론 입장에서 좀 당황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 몇 개 있는데, 지적설계론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도 못하고 여전히 겨우 6000년 전 우주와 지구 탄생을 주장하는 한국 창조론의 주류인 '창조과학'은 언급도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적설계론은 그나마 학위를 가진 인터뷰할 몇몇 자칭 전문가들이라도 있지만 창조과학은 거의 없다. 그리고 책 제목을 보면 이건 사실 '신과 다윈'을 동격으로 두어 버렸다는 느낌? 다윈이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가장 위대한 현대 과학자의 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게까지 표현해도 되려나?
= 네이처 특집 - 다윈 200 =
그런데 이건 사실 창조론이 자초했다. 마치 다윈을 무너뜨리면 진화론이 무너지기라도 할 거라는 착각, (그래서 심지어는 다윈이 죽으면서 진화론을 버렸다는 거짓말까지 퍼뜨렸다.) 그리고 진화론이 무너지면 마치 신이 증명이라도 될 거라는 착각으로 수십 년 동안 진화론을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의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 관련 글 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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